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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별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최근 미국의 주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미국사회에 주요한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 항공사 중 하나인 사우쓰웨스트 항공사(Southwest Airlines: 이하 SWA)의 ‘미니스커트 운임(’mini-skirt‘ fares)’ 세일이 그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가면 항공요금을 할인해 준다는 건가?” “이거 아무리 마케팅 기법이라고 해도 너무 여성을 상품화하는 게 아니야?” 하는 분이 있을지도….

 

이와 관련한 얘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이 스토리의 주인공을 먼저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은 바로 샌디에이고 대학에 다니는 23살의 금발 여학생 카일라 에버트(Kyla Ebbert)이다.

 

미국 주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재구성하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버트는 지난 7월 초, 애리조나에 있는 의사와 약속 때문에 샌디에이고에서부터 애리조나의 투싼(Tucson)까지 가는 SWA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갔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비행기를 타면 안된다?

 

에버트의 옷차림을 본 승무원이 탑승을 거절했기 때문. 승무원들은 “당신의 복장은 너무 도발적”이라면서 “SWA는 패밀리형 항공기이기 때문에 너무 노출된 복장은 안된다”고 했다.

 

에버트의 얘기에 따르면, 승무원들은 주변 선물가게에서 옷을 사서 입고 올 것을 제안했고 자신은 거절했다고. 결국 에버트는 비행기 맨 앞좌석에서 담요로 몸을 가리는 선에서 타협하여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자신이 매우 굴욕적인 대우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후 모녀는 지난 9월 7일 미국의 4대 네트워크 방송 중 하나인 NBC의 ‘투데이쇼’에 ‘당시의 복장’을 입고 출연한다. 여기서 에버트는 당시 SWA 승무원들의 부당한 대우로 자신이 "매우 굴욕감과 창피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함께 출연한 어머니인 미첼 에버트 또한 "그녀의 차림새는 괜찮다"며 "그녀는 샌디에이고에 있는 여느 여대생과 다를 바 없다"며 거들고 나섰다.

 

자신의 복장이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강변하던 에버트는 그날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길에 다시 SWA 비행기를 탔는데, 그 비행기 승무원은 자신의 복장에 대해 매우 칭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로그램 말미에 에버트는 SWA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공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힌다.

 

한편 SWA는 이와 관련한 논평을 통해 “타협선으로, 우리는 그녀에게 보다 적게 노출할 것을 요청했으며, 그녀는 이 제안을 따르고 여행했다”면서 “1년에 대략 9600만명의 고객을 나르는 항공사로서, 이러한 상황은 매우 드문 경우”라고 밝혔다.

 

에버트, TV쇼 출연해 항공사에게 사과 요구

 

자 여기까지가 이 스토리의 전반부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도대체 이 여학생은 어떤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이런 수모를 당한 것일까?  

 

사진처럼 당시 에버트는 흰색 타이트 피팅(tight-fitting) 셔츠, 녹색의 크로프트 스웨터(cropped sweater), 백색의 데님 미니스커트 치마를 입고 있었다.

 

NBC(투데이쇼)는 이를 보도하면서 인터넷판에 “(에버트의) 이 복장이 너무 노출이 심한가”라는 네티즌 투표(poll)를 진행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결과 “너무 노출이 심하다”는 견해를 밝힌 네티즌들은 20%에 불과했고, 52%는 “별문제가 안된다”고 답변한 반면, 나머지 29%는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만일 내 딸이라면 더 가리라고 얘기하고 싶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이후 에버트는 ‘The Dr. Phil Show’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투데이 쇼가 방영된 지 정확히 일주일 후인 지난  9월 14일(금), SWA의 부회장인 게리 켈리(Gary Kelly)가 직접 나서서 전격적으로 에버트양에게 공개사과한다.

 

다음은 사과문 전문.

 

"From a Company who really loves PR, touche to you Kyla! Some have said we've gone from wearing our famous hot pants to having hot flashes at Southwest, but nothing could be further from the truth. As we both know, this story has great legs, but the true issue here is that you are a valued Customer, and you did not get an adequate apology. Kyla, we could have handled this better, and on behalf of Southwest Airlines, I am truly sorry. We hope you continue to fly Southwest Airlines. Our Company is based on freedom even if our actions may have not appeared that way. It was never our intention to treat you unfairly and again, we apologize."

 

“진실로 PR를 사랑하는 회사로부터, 당신 Kyla에게 손들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핫팬츠(주 : SWA 승무원들의 유명한 유니폼. 파격적인 승무원들의 유니폼이 초기에 회사를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됨)로 출발해서 핫 플래쉬(주 : 중년 여성들의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 즉 회사가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뜻)에 까지 이르렀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에서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다.

 

우리가 서로  알고 있는 대로 이건 '멋진 다리'(mini skirt로 드러난 다리와 항공사의 구간이라는 두 가지 뜻을 함축적으로 포함)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고객이며 충분한 사과를 받지 못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 일을 좀 더 잘 처리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SWA를 대표해 Kyla 양께 사과하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 항공사를 애용해 주시길 희망한다.

 

설령 우리의 행동이 그렇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우리 회사는 자유에 기반을 둔 회사이다. 당신을 불공평하게 대우한 것은 결코 우리의 진실된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히며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이와 함께 SWA은 에버트에게 2장의 왕복 자유항공권을 제공하고, 10일 동안 유효한 $49에서 $109짜리의 항공권 할인 세일, 이른바 ‘미니스커트 운임’("mini-skirt" fares) 세일을 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것이 이른바 SWA의 ‘미니스커트 운임’ 세일의 전말이다.

 

정말 '미국스러운(?) 스토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은 누가 승리했다고 보는가? 에버트 양인가, SWA인가?

 

SWA, 실추된 항공사 이미지를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

 

얼핏 보면 에버트의 작은 권리찾기가 이겼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니 서로 '윈윈한 게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아무래도 SWA가 판정승한 것 같다.
 
SWA는 이번 에버트 사건으로 실추된 항공사의 이미지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할인세일 마케팅 홍보에 역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71년 겨우 비행기 3대로 택사스 공항에서 처음 이륙했던 SWA는, 현재 미국 전역 50개가 넘는 도시에 취항하는 미국의 4대 항공사로 도약했다. 78년 규제 완화 이후 항공사들의 무한 경쟁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항공사들이 쓰러지고(120여개의 항공사가 파산), 90년대 들어오면서는 Eastern 등 대형항공사들마저 쓰러지고 있었는데, SWA 만큼은 계속 경이적인  성장률을 올렸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73년 이래로 흑자경영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그 비결은 ‘저비용 리더십’이라는 분석이다. 무탑승권 제도의 도입, 불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낮은 운임으로 보상하는 정책 등을 도입해서 성공시켰다. 그래서 SWA는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그 정점에 회사 일을 직원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만드는 경영자,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 켈러허(Herbert D. Kelleher) 회장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로 뽑히는 켈러허 회장은 학벌 보다 팀워크와 조직문화를 중시하고 탁월한 유머감각으로 유명하다(위의 사과성명과 '미니스커트' 세일이란 명명에도 이런 유머가 녹아 있다).

 

이 스토리를 보면서 한국의 대표적 중저가 항공인 ‘제주항공’이 떠오른다. 제주항공은 이러한 탁월한 리더십과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1년에 대략 9600만명의 고객을 나르는 항공사" SWA의 경영기법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벤치마킹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말부터 필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에 객원연구원으로 와 있다. 이곳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면서 가능한 여러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그래서 꼭지 제목을 ‘샌프란시스코 통신’이 아니라 ‘USA 엿보기’라 정했다. 미국에서의 첫 통신을 무슨 주제로 잡고 쓸까 고민하던 차에, 북가주 아름다운재단의 최용오 상임이사에게 이 스토리를 듣게 됐다. 당초에는 제1신으로 미국의 국립공원과 관련된 정책을 소개하려 했으나, 오히려 소프트한 주제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이 기사를 송고한다.


이기사는 제주의소리(jejusori.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싸우쓰웨스트 항공#카일라 에버트#켈러허 회장#미니스커트 페어 세일#S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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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부탄과 코스타리카를 다녀 온 후 행복(국민총행복)과 행복한 나라 공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행복연구가. 현재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부설 국민총행복정책연구소장(전 상임이사)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 시민행복위원회 공동위원장,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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