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말 드라마의 소재는 여전히 ‘가족’이다.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의 모습을 줄곧 주말드라마에서 고수하고 있다. 물론 최근 들어 그러한 모습이 종적을 많이 감추고 있지만 여전히 주말 저녁에는 홈드라마 성격의 가족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듯,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에서 유독 아주 건전한 온실 속 화초를 보는 듯한 드라마가 있다. 많은 논란으로 비난이 거셌던 MBC주말드라마 <문희>의 후속작 <깍두기>이다. 전작의 비난을 만회하고자 한 것처럼 <깍두기> 속에 극중 가족은 모범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한 <깍두기>아직 초반이어서 그런지 <깍두기>에 나오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극중 인물들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탓에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빠른 전개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조금은 답답할 수도 있다.
더욱이 대가족 구만(김성겸)의 일가가 극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가족보다 높은데, 그의 가족 모습을 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족의 모습은 이것이다’라고 가르쳐 주는 것처럼 모범 답안이다.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할머니(나문희)와 아웅다웅하는 할아버지,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는 아버지 정한모(김세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귀여운 막내 아들 정동민(서준영), 매일 사고치는 둘째 아들 정동식(김흥수)을 몰래 감싸주는데 바쁜 어머니 백금희(고두심)과 자랑스러운 큰 아들 정동진(김승수)까지.
아주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대가족인 만큼 아침도 복닥거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장손이 이혼한 뒤로 그의 아내를 찾는데 여념이 없고, 손녀 애교에 “똥강아지”라 부르며 반색하고, 어머니는 꼬박꼬박 대가족의 식사를 챙기느라 바쁘다.
그리고 이웃 동네 승용(서인석)의 가족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처가인 승용과 아내 최지숙(김자옥)은 함께 요리하고, 화가 나면 남편인 승용이 계란에 그림을 그려 풀어준다. 또한 '백조' 딸인 이민도(이민정)과 어머니는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잘난 며느리 박재영(박정숙) 때문에 속을 끓이기도 한다. 그리고 사별한 둘째 며느리 유은호(유호정)와는 모녀처럼
지낸다.
이처럼 끊임없이 매일이 사건이 터지지만 그것은 무겁게 그려지기 보다는 보통 일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로 그려지며, 그들의 일상을 비추면서 모범적인 가족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너무나도 모범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줘 어쩐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교무실에서 졸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피로회복제를 사오고, 삼대가 모여 팔씨름을 하며, 저녁 식사 후에는 온 가족이 모여 과일을 먹으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모습.
물론 그러한 훈훈한 모습이 요즘 각박한 세상에 사라지고 있어 반가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헌데 마치 도덕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가족의 모습을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훈계하는 듯해서 불편하다.
또한 흔히 등장하는 고부간의 갈등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도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더욱이 송수남(최란)의 가족의 모습은 핵가족을 대표하고 있는데, 부정적인 면을 보이고 있어 과거 가부장적인 대가족제도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일상 속에 건져낸 사람의 향기그래서 이들의 훈훈한 일상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답을 알고 있어도 청개구리 마냥 오답을 기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비추며 덤덤하게 그려내는 부분은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그러한 부분이 다소 <깍두기>를 계속해서 볼 수 있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복닥거리는 가족들 틈바구니 속에 일상에 치중하면서도 각 구성원 개개인의 모습에 많은 공을 들인다는 점이다.
가령 묵묵히 가사 일에 전념하며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 내조에 최선을 다하며, 자식들 뒷바라지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지만 그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어두운 방안에 앉아있거나 주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웃기도 하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그저 평범한 가족의 한 일원이지만 무언가 개인의 사연이 숨어있음을 암시하며 지속적으
로 개개인의 삶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러한 모습은 아버지에 버림받은 시야(박신혜)에게 더욱더 치중한다.
가족이라는 것을 가지고 싶은 아주 소박한 꿈을 가진 시야가 상상 속에서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옷과 가발을 태우고 불 앞에 앉아서 홀로 먼 곳을 응시하며 쓸쓸해 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장면도 가족과 개인의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전체적으로 훈훈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사연 혹은 가족을 구성하지 못한 사람이 가족을 그리는 모습, 핵가족으로 정지된 듯한 가족이 온기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범답안지 같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줘 우리가 잃어가는 가족애를 다시 한 번 되살려보고 싶은 모양이다. 더불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깍두기들의 인생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치유하고 보듬어주는 모습이 <깍두기>만의 매력 포인트로 작용된다.
한 마디로 드라마를 정의내리자면 동진(김승수)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사람의 향기’를 닮은 드라마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함은 바로 사람의 향기가 아닐까?
그래서 <깍두기>는 현실의 모습을 배제하고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한 드라마지만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것 같은 드라마다. 앞으로 어떠한 전개로 우리의 쓸쓸한 가슴을 채워줄지 기대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