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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이미 고향들녘을 거닐고 있습니다.
 
가방 대신 엇비슷하게 책보를 둘러메고 넘어 다니던 고갯마루와 오솔길이 없어졌고, 비가 와 물이라도 불어나면 둥둥 바짓가랑이를 걷고 건너야 했던 작은 개울도 없어졌지만 시들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추억이 있어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좋기만 한 곳이 고향입니다.

 

가재를 잡던 도랑, 미꾸라지를 잡던 둠벙, 메뚜기를 잡던 논둑도 거반 없어지고, 많이 달라졌지만 기억을 더듬으면 가재도 잡을 수 있고 메뚜기도 잡을 수 있는 들녘이 아직도 거기에 있습니다. 키다리 코스모스는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리고, 새벽바람이라도 불면 가슴에 품었던 알밤을 후두둑 쏟아내던 밤나무 숲도 아직은 거기에 있습니다. 

 

구불구불했던 논두렁이 반듯반듯하게 달라졌지만 아버지가 땀방울로 적셔가던 다랑이 논에선 황금빛 나락이 알알이 영글어 가고, 누렇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한 감나무에선 달콤한 향이 배어나옵니다. 껍질을 깎아 나뭇가지에 꼬여 가지런하게 말리고 있는 곶감거리는 퐁퐁 분가루를 날리며 쫀득쫀득 말라갑니다.     

 


동구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속삭임처럼 바스락거리는 억새풀이 천지고, 떨어지지 못해 곱게 말라버린 산수유열매나 보석처럼 가을 들녘을 장식해 가고 있는 이런저런 열매들도 얼마든지 널린 곳이 고향들녘입니다. 

 

많이 각박해 졌다고는 하나 주렁주렁 달려있는 대추 한 움큼을 따 먹어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 인심 정도는 아직 남아있고, 동네 전체가 일가이거나 친척이 되니 아무 집엘 들어가도 낯설지 않은 집성촌 마을이니 만나기만 하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반갑게 안부를 전하고 묻는 곳이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떠나다보니 아기들이 내는 웃음소리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가을걷이로 분주하고, 마당 가득 펼쳐 넌 가을고추가 더 없이 붉게만 보이는 곳도 고향입니다.

 


'밀린 임금을 받아 효도를 하고 싶다'는 어느 노동자의 현실이 절규로 메아리치고, 예기치 않은 수마에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암담한 수재민들도 많이 있지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념의 갈증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옹달샘이 거기이기에 고향들을 찾아갑니다.

 

지루할 수도 있고, 힘이 들 수도 있지만 시들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게 고향에 대한 향수며 그리움이기에 일찌감치 서두르다보니 마음은 이미 고향들녘을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초가에 얹힌 박 덩이와 누가 더 둥근가를 내기하듯 동녘하늘에 덩~ 하고 떠오를 한가위 달을 고대하며 촘촘한 걸음으로 고향들녘을 마음으로나마 거닐어 봅니다.

 

달라는 사람도 없을 거고, 갚지 않아도 될 고향들녘이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가불을 해 가슴으로나마 성큼성큼 걸어봅니다.


태그:#고향들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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