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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에 찬물을 끼얹은 듯 때아닌 태풍이 휘몰아쳤다. 논밭에 있는 누런 벼들이 폭탄을 맞은 듯 쓰러져 있다. 뒷동산에 있는 황토 빛 밤알들도 우수수 떨어져 있다. 아직 물차 오르지 않은 은행들도 노란 피를 튀기듯 길바닥에 흥건하다. 복숭아나무도 제 몸 하나 바로 가누지 못하고 있건만 오직 밭에 나뒹굴고 있는 열매들에게 눈길이 쏠려 있다. 결실을 맛봐야 할 계절이 왜 이토록 쓰리고 아프던가?


그렇지만 물 논 속에서 한 움큼 나락이라도 건져 올리듯 쓰라림 속에서도 뭔가 건져 올릴 교훈이 있지 아니할까? 이 땅에 행하는 모든 일들이 자업자득이듯 인간 스스로 환경 재앙을 불러온 꼴이라 여기는 그런 깨우침. 껴입을 옷조차 남아 있지 않은 가녀린 사람보다 아직은 벗어 놓을 옷가지라도 남아 있는 나 자신이 그 피해 대상이 되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일들. 오히려 그런 마음들이 삶을 살갑고 따뜻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가을 희망은 그래서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아주 가까이 그 자리에 다가서 있다. 비 바람이 꺾어놓고 간 가지가지마다 그 자리에서 새움이 터오게 마련이다. 폭풍이 몰아친 들녘 그 자리 자리마다 가을 나무가 다시 세워지기는 마찬가지다. 절망 속에서 의미를 캐낼 줄 아는 그곳에서부터 희망은 시작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깊은 혜안이 비로소 희망을 불러 온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나도 한때 사람 사이에 뒤틀린 일로 무척이나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그분도 오해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서로 불편한 관계로 전락했다. 마치 큰 나무를 심고 많은 열매를 거둬들이기 위해 밑거름을 주는 단계였는데, 그것이 그만 뒤틀려 버렸다. 어쩌면 서로 자신이 맡은 역할분담 차원이나 서로 자신이 보는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더 정확하게 꼬집는다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지 못한 관계의 부족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리 큰일도 아니건만 왜 그땐 자존심을 세우기에 서로 바빴는지 모르겠다. 서로가 반 보씩만 양보하고 배려했더라면 좀 더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됐을 텐데. 나이도 한참 어리고 그 일에 초짜였던 내가 능숙한 그분에게 좀 더 맞추려고 했더라면 더 알찬 열매들을 거둬들였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자니 그저 아쉬움만 가득하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열매보다는 동기와 과정이 순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지금껏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분과 관계 맺고 살아온 지난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문뜩 반성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굳이 이철환님이 쓴 <반성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가 그분에게 써야 할 한 장의 편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길고 긴 문장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지 아니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저 내 속에 담긴 순수한 마음을 그 글 속에 담는 것이면 족할 것이다. 그것이면 내 마음을 전달하는데 충분할 거라 나는 믿는다.


그러면 그때 비로소 나와 그분 사이에 얽힌 관계도 스르르 풀리고 회복될 것이다. 논 속에 잠겨 있는 벼들을 건져 올리듯, 황폐한 가을 들녘 하늘 위에 떠 있는 새하얀 뭉게구름을 펼쳐 보듯이.


더 늦기 전에, 어서 빨리 펜을 잡아야겠다. 흰 종이 위에 내 마음을 담아 한자 한 자 또박또박 써야겠다. 그 생각을 하자니 참담한 가을 들녘 하늘에 새하얀 희망의 구름이 피어오르듯, 벌써부터 내 속에 새로운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태그:#반성문, #새 희망, #황폐한 가을 들녘, #흰 종이 위에 내 마음, #새 하얀 뭉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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