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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리역에서 출발한 레일바이크는 이십리 길을 달려 아우라지까지 간다. 인생의 길에서 만나는 여행은 자신을 비움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 레일바이크 구절리역에서 출발한 레일바이크는 이십리 길을 달려 아우라지까지 간다. 인생의 길에서 만나는 여행은 자신을 비움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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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비켜간 산촌 마을, 구름 사이로 가을빛이 스며든다. 지친 초록이 옷을 갈아입는 요즘 풀벌레들의 사랑노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코끝으로 스치는 바람엔 먼 길 떠난 이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 있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택배 차량도 몇 차례씩 시골 길을 오르내린다. 수상한 시절. 바야흐로 명절 밑이다. 잘 포장된 도시의 것들이 시골까지 나들이를 하는 시간, 시골에선 도시로 향할 것들이 익어가고 있다.

탁한 마음 비워낼 곳 '구절리'와 '아우라지'

머무는 이들보다 떠나는 이들이 많은 추석 명절. 돌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손길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길게는 열흘까지 쉴 수 있는 추석 연휴. 떠나는 걸음이나 기다리는 마음이나 마음만은 풍성하다.

강원도의 귀향은 고속도로에서 시작된다. 예전보다 길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막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명색이 '고속도로'이지만 이럴 땐 어머니 품 속 찾는 아들의 성급한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한다.

대책없이 막히는 길. 이럴 땐 돌아가야 한다. 38번 국도나 42번 국도를 이용하면 한갓진 여행이 될 수 있다. 국도를 따라오면 만나는 곳이 강원도 정선. 정선엔 탁한 마음 비울 수 있는 구절리와 아우라지가 있다.

정선으로의 여행은 겨울을 준비하는 여행이라기보다 가을을 견디기 위한 준비를 하는 여행길이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구절리. 애잔한 이름만큼이나 가을을 준비하기엔 더 없이 좋은 여행지다.

구절양장에서 이름을 따온 구절리는 숨어 있던 마을이었다. 석탄이 생산되면서 마을은 세상에 모습을 보였고, 한때는 팔도 사나이들이 '막장인생'을 살던 곳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구절리는 버려진 마을이 되었다.

정선선의 종착역이었던 구절리역이 폐쇄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후 구절리는 드라마나 문학작품에서 종종 모습을 나타냈다. 화면에 담긴 구절리의 모습은 인생의 종착지로 그려졌다.

터널은 또 다른 세상이다. 레일바이크를 타면 이런 터널을 세 개나 통과 한다.
▲ 폐선 위를 달리는 레일바이크 터널은 또 다른 세상이다. 레일바이크를 타면 이런 터널을 세 개나 통과 한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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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름의 속도에 맞춰 페달을 밟다보면 어느 새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 송천과 함께 달리는 레일바이크 물 흐름의 속도에 맞춰 페달을 밟다보면 어느 새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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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세월이 50분만에 말끔히 씻겨져

버려졌던 마을을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한 것은 버려진 구절리역과 녹슨 철길이었다. 사람들은 버려진 마을에 네 바퀴 자전거를 들여왔다. 이른바 레일바이크다. 철로 위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는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이동하는 수단이다.

바퀴가 네 개나 되니 넘어질 염려가 없다. 굽이가 나타나도 알아서 길잡이를 하니 핸들을 잡을 필요가 없다. 휴대폰을 받고 건다 해도 단속하는 이가 없다. 이럴 땐 습관처럼 속도를 다스려주는 신호등이 그리워진다.

구절리는 자유세상이다. 가족과 함께라도 좋고 연인과 함께라면 더욱 좋다. 혼자라고 쓸쓸할까.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보다 좋은 곳도 없다. 송천을 옆에 끼고 달리는 레일바이크는 내리막길이라 힘도 들지 않는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이어지는 이십 리 길은 구절리라는 지명처럼 풍광도 아름답다. 세 개의 터널과 세 개의 다리를 건너는 일은 보너스다. 오싹함이 느껴지는 터널에서는 사랑하는 이들의 몸이 절로 가까워진다.

구절리역을 출발한 레일바이크는 50분 정도면 아우라지역에 도착한다. 지천명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50년의 고단한 세월이 50분만에 말끔히 씻겨진다.

젊다고 페달을 빨리 밟을 일도 아니다. 가능한 한 천천히 움직이면서 가을빛을 받아들여야 한다. 서둘러 가다 보면 내려다보이는 풍경들이 눈에서 사라진다.

아우라지역에 이르면 천년기념물인 어름치 형상의 카페가 있다. 아우라지는 어름치의 고장이기도 하다.
▲ 어름치 아우라지역에 이르면 천년기념물인 어름치 형상의 카페가 있다. 아우라지는 어름치의 고장이기도 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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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아라리 가락이 흐르는 아우라지. 구절리구간이 폐선 되면서 정선선 열차의 종착역이 되었다.
▲ 아우라지역 정선아라리 가락이 흐르는 아우라지. 구절리구간이 폐선 되면서 정선선 열차의 종착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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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마음 채우는 '아우라지'에선 말을 하지 않는다

구절리의 레일바이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코스다. 코스만 긴 게 아니라 볼 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다. 레일바이크의 종착역인 아우라지는 강원도 무형문화제 1호인 정선아라리의 발상지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아우라지는 구절리에서 내려오는 송천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에서 출발한 골지천이 만나는 곳이다. 두 물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가 되었다. 레일바이크에서 내리면 풍경열차를 이용해 구절리로 가지만 아우라지 만큼은 꼭 둘러봐야 후회가 없다.

아우라지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아우라지 처녀의 애절한 눈물을 볼 수 있다면 누구나 가객이 된다. 발에 채는 자갈돌 부딪히는 소리 또한 자연이 만들어낸 음악이다.

어느 마을에나 흔하게 있을 법한 곳이지만 아우라지는 애절한 사연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아우라지에서는 되도록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좋다.

아우라지에서는 정선아라리 가락 흥얼거리며 두 물이 하나로 몸을 섞는 순간을 말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긴 이별이 끝나는 곳에서 아우라지에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 하나 찾는다. 그것이 사랑이든, 통일이든, 만남이든, 소중한 우리네 삶이다.

재충전이 필요한 우리네 삶에서 비운 마음을 채우는 것은 언제나 말 없음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잠시라도 물소리에 몸 맡기고 긴 호흡으로 빈 마음을 채워야 한다.

가을을 버티려면 그 정도의 내공은 필수적이다. 내공을 쌓는 일에 소홀하면 아무리 강단 있는 사람도 가슴 시린 가을을 견디기 어렵다.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아우라지. 정선아라리 발상지이다. 도암댐으로 인해 송천물은 탁함을 확인할 수 있다.
▲ 아우라지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아우라지. 정선아라리 발상지이다. 도암댐으로 인해 송천물은 탁함을 확인할 수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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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레일바이크>
구절리 → 아우라지 2인승 1만8000원
구절리 → 아우라지 4인승 2만6000원

운행시간 : 하절기 (09:00 ~ 17:00 ※ 1일 5회 운행) 동절기 (09:00 ~ 15:00 ※ 1일 4회 운행)
정선풍경열차 : 아우라지역 → 구절리역 운행

* 성수기 및 주말은 이용객이 많은 관계로 이용에 다소 불편이 초래될 수 있으니 인터넷 예약 및 전화문의 부탁드립니다. 우천시에도 정상 운행합니다.

<교통안내>

자가운전: 정선 - 42번국도 - 여량
대중교통: 시내버스 -정선읍 - 북면 여량리 /요금:900원/ 운행횟수:10회/차편 06:10-17:35
마을버스: 여량 -구절리 /운행횟수 6회/ 요금:1000원/ 차편 08:20-19:30

문의 : 코레일투어서비스 : 563-8787,1066



태그:#레일바이크, #구절리, #정선아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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