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일관성이 아주 중요할 것 같다. 자신이 예전에 썼던 글을 모두 기억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니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나 소신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호불호와 이해에 따른 글을 쓰다 보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그야말로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서의 글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같이 오랜 기간 칼럼을 쓴 책임 있는 언론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논리를 담은 주장을 편다면 그 글의 신뢰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의 글에도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다. 이를테면 '숭미반북(崇美反北)'의 무의식 세계가 그것이다.
'평양발 노무현 쇼'라는 9월 21일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을 보면 "'콩가루 집안'을 두고서는 밖에서 '큰일'을 할 수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행을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염려스러워한다고 한다. "한국의 대표로서 당당히 할 말은 하고 거절할 것은 거절할 배짱은 있을 것인가"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평양 가서 북핵 완전 폐기 위해 싸우라고?그는 "남북한 정상이 평화를 말하려면 당연히 북핵 완전폐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북한에 대해서 '핵에 관한 모든 것(무기, 프로그램, 원자로)을 완전히 폐기하는 명실상부한 비핵화'를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주장한다.
☞ 9월 21일자 김대중 칼럼 '평양발 노무현 쇼'그리고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며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의 뜻을 간곡하게 얘기하는 것도 굳이 싸움에 속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더 나아가 "세계무대에서는 다른 나라 지도자와 잘도 싸우는 사람이 왜 김정일 앞에서는 그렇게 얌전해지려고 하는가?"며 싸움을 독려하기까지 한다. 듣다 보니 꼭 남의 나라 일 같다.
이전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대중 고문과 똑같은 주장을 한 데 대해 비판한 적이 있으므로 그 주장의 내용 자체에 대한 반박은 일단 제쳐 두자. 문제는 김대중 고문의 '그때그때 다른' 외교에 대한 '일구이언(一口二言)'이다. 김대중 고문이 쓴 다른 칼럼의 내용을 한번 보자.
"외교는 참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국가간의 이해가 요철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절대적 주권을 가진 상대방과 작업을 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대등한 국력을 가진 나라들 간의 외교도 어려운데 여러 형편으로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은 나라와의 외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외교업무가 국가 기능의 우선 순위에서 맨 앞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실 세계의 역사는 외교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외교에서는 할 말을 해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안 할 말을 해야 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외교에서 필요한 덕목은 용기나 사상이나 무력이 아니라 분별과 인내와 협상력이다. 때로는 굴종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비굴하리만치 사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중략)자신의 소신일지라도 그것을 말하는 시간과 장소, 또는 여건과 분위기를 감안하는 것이 외교의 상식이고 예의일 것이다.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할 말을 다 해버리면 회담은 무엇 때문에 하는가. 그저 각자 자기 성명을 발표하면 그만이지 그 비싼 비용과 귀중한 시간을 내서 얼굴을 맞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언행으로 인해 서로 어색해하거나 얼굴을 붉힐 계제라면 그런 정상외교는 하지 않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롭다.(중략)정상외교의 ABC를 무시한 노 대통령의 용기 있는(?) 종횡무진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외교는 인내이고 협상력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상 외교의 바탕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다."어떤가?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에게 적절한 충고가 될 만한 내용이 아닌가? 이 글은 2004년 11월 18일 <조선일보>의 '김대중 칼럼'으로, 제목은 ''할말은 한다'는 용기?'로서 노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의 상대방에게 '너무 용기있게 말해서' 신뢰와 호감을 잃지 않도록 충고하고 있다.
☞ 2004년 11월 18일자 김대중칼럼 ''할말은 한다'는 용기?'물론 여기서 상대방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아니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다. 그를 깜짝 놀라게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북핵이 북한정권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이른바 LA 연설이었다.
김대중 고문의 말대로 10월 초에 있을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행 외교'도 '절대적 주권을 가진 상대방과 작업을 해야 하는 게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언행으로 서로 어색해하거나 얼굴을 붉힐 계제'를 만들어서도 안 될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호감'일 것이다. 특히 남북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인내와 협상력이 정상외교의 ABC라는 김대중 고문그런데 미국에는 '굴종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비굴하리만큼 사정을 해야 하는 경우'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북한에 대해서는 할 말을 하라고 노 대통령을 윽박지르며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내와 협상력이라는 정상외교의 ABC를 안다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닌 것이다.
아마 김대중 고문은 예전에 자신이 썼던 칼럼의 내용은 까맣게 잊고 있을 것이다. 이런 모순된 글들은 그의 의식 속에 오로지 미국에는 굴종하고 북한은 제압해야 한다는 논리와 노 대통령이 하는 일은 심정적으로 공격하고 보는 비논리가 어우러진 결과인 것이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이 밉더라도 우리 민족의 중대사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훼방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미 그동안 숱하게 지적되었지만, 김대중 고문은 이미 언론인으로만 보기 어렵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논리를 변화시켜 언론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반언반정인(半言半政人·몸은 언론계에, 마음은 정치계)이라 할 만하다.
김대중 고문, 그동안 글을 너무 지나치게 많이 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