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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의 2단계 ‘로드맵’을 그릴 6자회담 본회의가 우여곡절 끝에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된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10월2~4일)을 눈앞에 두고 열리는 이번 회의는 북핵문제 해결의 순항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계획대로 로드맵이 합의되면 노무현 대통령은 핵문제에 대한 부담을 덜고 남북관계 자체에 초점을 맞춰 정상회담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순조롭게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정상회담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회의는 오는 30일까지로 예정돼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일정을 연장해 협상을 계속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남북정상회담 기간과 겹치게 되는데, 두 회담이 동시에 진행될지도 관심이다. 

 

이번 6자회담의 전망은 당초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지난 7월 중순 수석대표회의 이후 한번씩 가동된 5개 실무그룹회의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이견을 좁혀왔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관계가 급진전되면서 강력한 추동력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당초 예정됐던 회담 일정이 1주일 연기되는 과정에서 분위기는 다소 변했다. 어디에 ‘복병’이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지난주 돌연 회담을 연기한 이유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 이유로 거론된 ‘북한-시리아 핵 거래설’은 계속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번 회의는 ‘2.13 합의’에 따른 비핵화 초기단계 조치의 이행이 완료됨에 따라 다음 단계의 이행계획을 규정한 새로운 합의문서를 채택하는 것이 목표다. 초기단계 조치는 북한이 영변 등지의 핵시설들을 ‘폐쇄’(shutdown)하면 나머지 5개국이 중유 5만t을 제공하는 비교적 단순한 ‘거래’였으나, 2단계의 내용은 보다 복잡하다.

 

우선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는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들의 불능화(disablement)’와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이다. 이의 상응조치로 나머지 5개국은 ‘중유 95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 또 ‘2.13 합의’에 명시돼있진 않지만 미국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문제에 대해 진전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달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의 합의에 따라 2단계 이행조치의 시한은 올해 말로 정해졌다.

 

원만히 합의가 도출되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문’에 이어 북핵문제 해결을 향한 또 하나의 역사적 합의문서가 나오게 된다. ‘불능화’ 단계로의 이행은 비핵화를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확인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현실감을 띄고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낙관과 비관의 분위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열리는 이번 회담의 3대 쟁점을 짚어본다.

 

① 핵시설 불능화 방법론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 방법론은 이번 6자회담의 핵심 의제이다.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핵연료가공공장이 주요 불능화 대상이다.

 

미국은 8월 16~17일 한반도비핵화 실무그룹회의(중국 선양)→ 9월 1~2일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스위스 제네바)→ 9월 11~15일 ‘불능화 기술팀’ 방북의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과 불능화 방법론에 원칙적 합의를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원자로의 불능화 방법으로는 제어봉을 노심에 고정시키는 방식이 가장 유력하다. 제어봉이 고정되면 이를 제거하기 전까지는 노심을 가동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일정기간 원자로를 못쓰게 된다는 것이다.

 

제어봉을 고정시키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준에 따라 3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제어봉을 끌어올리는 와이어를 절단해 제어봉을 노심 안에서 뽑아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몇 개월 안에 원상복구가 가능하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 보다 좀더 오랜 기간 복구가 불가능한 방법으로는 노심 안에 특정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방법이 있다. 탄화붕소 분말을 노심에 넣으면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방해함으로써 원자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분말은 제거하기도 어려워 전문가들 사이에서 효율적인 불능화 방법으로 거론돼왔다.

 

화학물질 주입보다 더 영구적인 것으로는 노심에 제어봉을 넣은 상태에서 콘크리트를 부어 고정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는 원상복구를 시키려면 노심을 아예 새로 제작해야 할 정도로 영구적인 불능화가 된다.

 

문제는 복구에 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법일수록 안전성 등의 문제 때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이미 ‘연내’라는 목표가 정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복잡한 방법론은 피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들은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② 핵프로그램 목록 신고

 

‘불능화’와 함께 북한의 2단계 의무사항인 ‘핵프로그램 목록신고’는 지금까지 추출한 플루토늄의 양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해 얼마나 성실히 신고하느냐가 초점이다. 만약 미국 등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과 북한의 신고내용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한다면 2단계 이행계획의 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북한이 이미 제조한 핵무기를 신고대상에 포함시킬지도 관심이다. 특히 대북 강경파들이 이 부분에 집착하고 있으나, 정작 회담 관계자들은 큰 의미가 없다는 반응이다. 플루토늄에 대한 신고만 성실히 이뤄지면 완성된 핵무기 숫자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폐기’ 단계에서 논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 논의에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불능화 방법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도 하지만, 신고 주체가 북한이기 때문에 ‘맡겨달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일단 연말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25일 베이징 공항에 도착, 신고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건 그 단계에 가서 할 이야기이지, 지금 서두를 문제가 아니다”며 논의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③ 미국의 대북 제재해제 어떤 단계 밟나.

 

미국에 의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대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는 북한이 사활을 걸고 있는 사안이다. 북한은 이것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 의지를 보여주는 징표라며 끈질기게 가시적 진전을 요구해왔다.

 

지난 1~2일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서는 김계관 부상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고 발표하고, 미국이 이를 부인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도 북한이 이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젠 어느 정도 납득하는 것 같다. 적어도 협상에 관여하고 있는 미국 정부관리들 사이에서는 전향적 자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일본인 납북자 문제와 연계시키지 않을 방침을 시사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가 이번 6자회담에 참석하기 전 도쿄에 들러 베이징에 들어온 것이 이러한 방침 변화에 대한 일본의 양해를 구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움직임으로 볼 때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보다 전향적인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는 아직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미국 내에서 이에 반대하는 여론이 아직 만만치 않다. 미 하원의 공화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지금까지 행정부의 ‘결단’만으로 가능했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법에 근거해서 하도록 변경하는 입법화를 최근 추진하고 있다.

 

힐 차관보 등 대북 협상파들이 이런 내부의 반대 움직임을 돌파할 수 있느냐는 결국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달려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태그:#남북정상회담 , #김계관, #핵시설 불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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