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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 올라가기 전에 점심 먼저 먹을 거에요.”
“뭘 먹어요?”

“중국식입니다.”
“어휴, 먹기 싫어요.”

 

만주 여행길에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식사였다. 저녁 호텔식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지만 답사 길에 먹는 점심은 거의 중국식이어서 적응이 쉽지 않았다. 기름기 많은 고기는 물론이고 독특한 향이 첨가된 야채 또한 입에 맞지 않았다.

 

“중국에 왔으면 중국 음식도 먹어봐야지요.”
“못 먹겠어요.”
“중국이 영어로 뭔지 알아요?”
“차이나요.”
“맞아요. 중국 음식은 한국 음식과 차이가 나요. 그걸 이해하고 먹어야지요,”

 

조선족 가이드는 아이들을 설득하려 애썼다. 그래도 아이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어릴 때 가난한 시절을 보낸 어른들은 그런대로 음식을 먹었지만 아이들은 원형 식탁 앞에 앉아있기만 할 뿐 선뜻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인솔 교사들이 돌아다니며 먹어보자고 달래면 겨우 젓가락 들고 먹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다행히 고추장 챙겨온 아이가 있어 조금씩 나누어 밥에 넣고 비벼 먹었다. 고추장에 비빈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아이들 얼굴에서 배시시 웃음꽃이 피어났다.

 

오녀산성 정상을 향하여

 

“아이들 올려 보내고 뒤에 남아 있을까.”
“인솔 교사가 그럼 안 되지.”
“올라가다 주저앉는 거보다 낫지 않을까.”

 

오녀산성 오르기도 전에 걱정하는 건 아이들만은 아니었다. 999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부담에 인솔 교사들 중에서도 등산에 자신이 없는 이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렇다고 태평하게 뒷전에 앉아 쉴 수도 없는 교사들은 걱정을 뒤로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몇 계단 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힘들다 푸념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벌써 힘들어하면 안 돼. 갈 길은 아직 멀어.”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해요?”
“삼십 분.”
“으아,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그럼 여기서 쉬다 그냥 내려갈까?”

 

 

하지만 주저앉아 쉬겠다는 아이는 없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해외 답사여서 힘들어도 꼭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은 아이들 모두 하고 있었다. 오르다 힘들면 멈춰 서서 가쁜 숨 몰아쉬고 땀도 닦았다. 친구끼리 어깨를 기대고 서서 사진도 찍었다. 멀찌감치 올라오는 친구들 향해 힘내라고 격려도 해주었다. 그러다 가마 타고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듯 쳐다보기도 했다.

 

다행히 산성 올라가는 길 양쪽으로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어 햇빛을 가려주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내 뒤를 따라오며 재잘거렸다. 계단을 만들어 놓아 더 힘이 든다는 녀석, 999개의 계단을 언제 다 올라가느냐고 묻는 녀석, 목말라 죽겠다며 물을 마시는 녀석, 주몽은 이 길을 걸어 올랐을까 말 타고 올랐을까 궁금하다는 녀석, 힘들다 푸념하면서도 아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저기 정상이 보인다.”
“벌써요.”
“그래, 저기 계단 끝으로 하늘이 보이잖아.”

 

 

정상이 보인다는 말에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만큼 정상이 가까운 건 아니었다. 경사가 워낙 급할 뿐 아니라 오르는 길에 힘이 많이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이들 표정은 밝았다.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알고 가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아이들은 체험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고구려 사람들이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되새기다

 

드디어 오녀산성 정상에 도착했다. 옹성 구조로 되어있는 서문 입구였다. 아이들과 함께 성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설명을 해주었다. 성문 좌우로 ㄷ자 형태의 성벽을 쌓아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공격하기 쉽도록 만든 옹성 구조, 성문 기둥을 세운 흔적, 궁궐 터, 점장대 등을 설명해주었다 .

 

 

“주몽은 왜 이렇게 험한 곳에 도읍을 정했을까요?”
“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서요.”
“그렇지요. 단군도 처음 도읍을 정한 곳이 태백산 꼭대기였지요. 주몽이 오녀산성에 도읍을 정한 것이나 단군이 태백산 위에 도읍을 정한 이유는 적군의 침입을 막아내기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왜 산성의 이름을 오녀산성이라 했을까요?”
“다섯 선녀가 살았던 곳이래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다섯 선녀가 살았던 곳이라 해서 오녀산성이라 불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고 아이들에게 얘기해주었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에 다섯 부족이 연맹해서 고구려를 세웠다. 따라서 첫 도읍지 오녀산성은 다섯 부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연한 전설보다는 구체적 상황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게 옛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올라오느라 힘들었지요.”
“죽을 뻔 했어요.”
“걸어와도 힘든 이곳에 성을 쌓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더구나 이곳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했던 사람들의 고생도 말이 아니었겠지요? 옛 유적지를 찾을 때는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느껴보는 게 중요해요.”

 

설명을 듣던 아이들 중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땀 흘리며 올라온 산성에서 고구려 사람들이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면 오늘 답사는 성공한 것이다. 

 

설명을 마친 후 포기하지 않고 올라온 아이들을 칭찬해주었다. 나는 우리의 힘이 고추장에 밥 비벼먹은 데서 나온 거 같다고 얘기했다. 아이들도 맞장구치며 환하게 웃었다.

 

덧붙이는 글 |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다녀온 만주 고구려 유적 답사입니다. 다음에는 집안 일대 답사로 이어집니다.


태그:#오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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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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