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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이후로 미술 시간, 음악 시간은 고역이었다. 예술적 재능은 천부적이라 했는데 부모님께서 나에게 예술적인 재능은 전혀 물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이런 재능은 물려주지 못했다. 물론 그림과 예술품을 읽는 재능도 별로 없다. 고흐, 피카소, 바흐, 모짜르트, 김정희, 안평대군, 한석봉의 그림과 음악, 서예를 아무리 보고도 왜 그 작품이 위대한 예술품인지 잘 몰라 예술작품들을 설명한 책들을 한 번씩 사본다. 하지만 그들의 설명도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너무 어렵다. 이런 와중에 '돌베게'에서 나온 강경숙 외 17명이 지은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를 만났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에는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40점을 소개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미술품과 비교한다. '회화'는 김홍도, 정선, 윤두서, 김정희, 조속, 안견과 고구려 고분 벽화, 민화, 궁중장병화, 불화 등이다. '공예'는 도기, 청자, 백자 등 도자 공예품, 목공예, 금속 공예, 문양전 등이다. '불교조각'은 석조불, 금동불, 철불, 소조불, 마애불, 목각탱, 목불 등이다. '건축'은 궁궐건축, 사원 건축, 서원건축, 사원건축, 조경문화, 석탑, 석교 등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 미술사에 최고의 작품을 선정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학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수 있지만 이 책에 선별된 작품을 폄하할 수 없다. 40개 작품 중에서 몇 작품을 소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논란이 되면서 고구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고구려 역사와 문화에 문외하다. 민족주의에 바탕한 감정주의는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소재한 고구려 벽화 '무용총 수렵도'를 통하여 고구려를 알아보자.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는 무용총 벽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5세기 전반경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무용총의 <수렵도>는, 당시까지도 고구려에서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여겨지던 벽화 형식으로 드러난 고구려식 회화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무용총 벽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얼굴 선이 깔끔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고구려인 특유의 얼굴을 지녔으며, 왼쪽 여밈과 가장자리 선을 특징으로 하는 고유의 옷차림을 했다. 자연스러우면서 강하게 뻗어나가는 필선, 제한된 표현 대상을 중심으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방식."(본문 29쪽 인용)

 

군사력만 강했다고 생각한 우리 의식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수렵도>에 대한 평가다. 고구려는 예술 세계에서도 중국에 뒤쳐지지 않았다. 그들만의 색체와 필력, 예술성을 바탕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 내세를 믿었고, 그것을 벽화에 담았다. 고구려는 벽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 전반을 담았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으로 들어가보자. 위대한 미술품은 어쩌면 인민을 담는 것이 아닐까?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민 그 자체를 담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인민의 일상적 삶을 담은 것을 '풍속화'라 한다. 풍속화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삶이 우주와 종말을 다할 때까지 존속하는 유일한 그림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를 대가다. 그가 그린 작품 중 <빨래터> <타작> <서당> <기와이기>는 우리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다. 정병모 경주대학교 교수가 설명한 <빨래터와 <타작>을 감상해보자.

 

"<빨래터>를 보면, 점잖은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바위 뒤에 숨어 빨래하는 아낙들을 훔쳐보고 있다. 까닥하면 망신당하기 십상인 그림 속 양반처럼, 김홍도 역시 천박하다고 비난받을 만한 주제를 자신의 작품 속으로 과감하게 끌어들였다. <타작>에서는 벼 낟알을 털기에 여념이 없는 일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된 노동을 감내하고 있지만, 이를 감독하는 마름은 술에 취해 아여 비스듬히 누워버렸다. 상류 계층인 마름과 하류 계층인 일꾼들의 불공평한 관계를 유머스럽게 풍자했다."(본문97쪽)

 

<빨래터> 풍경은 천박함을 통하여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표현한다. 양반과 인민이 다르지 않다. 본능에서 신분차이는 없다. 김홍도는 인간의 본능을 그리면서 계급과 신분제를 비판한 것은 아닐까? 섣부른 생각이지만 나는 <빨래터>를 그렇게 읽고,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 본능은 천박하지 않으며, 인민과 양반은 본능 안에서 서로가 하나임을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물론 훔쳐보는 양반이 자신의 허벅다리를 드러내고 빨래하는 아낙보다 어쩌면 신분에서는 상위이지만 본능을 드러내는 입장에서는 하위임을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작>은 양반의 천박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놀고 먹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천박하고, 일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노동 자체는 고귀하다. 노동을 천박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의식이 더 천박한 것임을 <타작>은 말하고 있다. 노동은 가치 있다. 노동이 억압으로 작용하지 않고, 노동 자체를 기뻐하고, 귀하에 여기다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은 이렇게 많은 작품을 통하여 우리를 예술세계로 인도한다. 예술세계는 사람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다. 사람과 밀접하지 않는 예술품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사람과 함께 하는, 특히 인민과 함께 하는 예술품인 민속화는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안휘준 정양모 외 ㅣ 돌베게 


태그:#한국 예술품, #한국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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