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평화운동'을 짚어보는 첫번째 기획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에 이어 2회는 '여성평화기행' 시스투어 편입니다. 다음은 <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작가 편으로 이어집니다. [편집자말] |
남자 빼고 여자들끼리 떠나는 여행상품이 히트칠 수 있을까?
성형 수술 싼 나라로 가서 '야매' 수술을 하고 오는 여행은 아니다. 돈 많은 옆 나라 일부 여성들이 하듯, 구릿빛 피부를 소비하기 위해 떠나는 여성 여행도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여행이 소비가 아니라 관계라는 걸 이 여자들은 알고 있다.
9월 9일 홍대 인근,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한 카페에서 네 명의 여자를 만났다. 이정은(30), 한천지영(31), 이세린, 아리(별칭)이다. 평화여성운동 두 번째 취재로 만난 언니네트워크의 시스투어 팀이다. 이정은씨는 말한다.
"여성주의 문화권에서도 여행이 중요한 생활 스타일이란 걸 알았어요. (여성)운동하는 여자들이고 사치스런 사람들이 아닌데, 여행이 중요하다면 그건 왜일까. 여성주의자들이 여행을 간다면 어떤 식일까. 6명 정도가 모여 기획하면서 다른 나라 사례들도 참고했는데, 외국은 여성 전용 여행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장애여성' '레즈비언' '40대 여성' 이런 식으로 세분화하기도 하고요." '여자들끼리 떠나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탈리아 배낭여행, 국내 등산 등을 겪으며 시스투어는 여행의 장소와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4년 필리핀 보라카이를 다녀왔고, 2006년 2월에는 '베트남 여성 평화기행'을, 2007년 7월에는 일본의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한천지영씨가 설명한다.
"여행지를 선정하는 데 있어, 아시아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데 중심을 뒀습니다. '싸게 갈 수 있는 여행지'로 아시아를 소비되고 있잖아요. 전쟁·식민지의 역사가 오버랩되기도 하고, 한국과의 국제 결혼이 많은 지역인데. 그 '아시아 여성'들과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접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시아 여성, 아시아로 떠난다 시스투어는 이런 식으로 '여성 평화 기행'을 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갈 때는, 전쟁청산을 꾸준히 하는 시민단체 '나와 우리'를 통하여 도움을 받았다('나와 우리'는 매년 베트남 평화 여행을 떠난다). 양민학살지역을 돌아보고, '굿윌'(사회주의 단체로 현지의 불법단체)과 만나기도 하며, 전쟁박물관·여성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정은씨는 말한다.
"베트남에 갈 때 그런 고민이 많았어요. 어떻게 여행을 갈지 기획단계부터 성원들과 세미나, 강사초청 강연, 자료 준비를 통해 고민을 했었죠. <미친시간>이라는 리마리오의 영화(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하고, '아시아 여성이 아시아로 여행을 간다'는 것에 대한 간담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원하는 사람은 참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가서 즐기는 느슨한 준비였지만요." 베트남은 여성들이 총을 들고 싸웠던 '혁명 용사'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보급투쟁·간호·아이들을 많이 낳아 전사로 기르고 훈장을 받던 여성들이 지금은 할머니들이 됐다. 체질적으로 주체적이고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때문에 '순종적인 피해자'라는 인상이 흔들리며 베트남 여성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왔다. '총을 들고 싸웠던 여성들'이 이중 부담을 졌던 것은 아닐까 혼란스럽기도 했다. '코리안 드림'을 가진 베트남 여성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도 어려운 문제였다. 한천지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리 머리로 재거나 계산하지 말고 가자. 일단 가서 베트남 전쟁을 겪었고, 그 영향 아래 있던 여성들을 만나고 오자. 그렇게 갔어요. 갔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쟁) 가해자의 나라 여성들이 피해자의 나라에 가서, 남성들 대신 뉘우치고 온다는 묘한 감정이었죠. '난 가해자의 나라 출신이야'보다는, 한 손으로 아이를 낳아 젖을 먹이고 한 손으로는 총을 들었던 베트남 여성들, 가장이 없어진 자리를 대신 메웠던 여성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편이었습니다. (군사화된 나라의) 여성으로서의 연대감이 들었죠." 이에 비해 올 여름에 다녀온 오키나와는 좀더 한국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미군기지 지역인 오키나와에서는 '여성들이 기지 생활에서 받는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집창촌이 형성되어 있는 것도 똑같다.
여성으로서 당한 피해가 한국과 비슷했으며, 그 피해가 이른바 '운동사회' 내에서도 쉬쉬하고 '여성의 목소리로' 공론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우리와 비슷했다. '군대와 기지들을 허락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임'이라는 일본 여성 단체와 만나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필리핀 보라카이에는 미군이 사람을 죽였던 지역, 대포가 있었던 자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바다에 추락한 항공기가 보이기도 했다. 보라카이에서 여성 정보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여성운동이 '잘사는 나라 여자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고스란히 깨는 경험이었다. 필리핀의 여성운동은 활성화되어 있다. 이들은 여성주의 음악으로 CD를 구워 시스투어 팀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여성 대 여성으로 만난다
'여성 평화 기행'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천지영씨는 말한다.
"한국 대 오키나와, 한국 대 베트남, 이게 아니라 여성 대 여성으로 만날 때, 다른 이야기를 풍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해 당사자가 아니라, 전쟁 안의 약자였으며 소수자였다는 것. 국가의 테두리를 떠나 전선이 다르게 그어질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현지에서도 여성가이드를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오키나와 숙소에 묵을 때 보안담당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여성이었다. 연세가 있으신 가이드가 봉고 승합차를 운전하며 이들을 안내했다. 베트남의 경우에는, 가이드가 여성이었다. 국가 대 국가로 만났을 때 얼마나 양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문제들이 많다. 여성과 여성으로 만날 때, 이를 넘나드는 다른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흘러나올 수 있었다.
물론 여성들끼리의 여행은 때로 성폭력과 차별에 부딪친다. 보라카이의 호텔에서는 베란다를 넘어 들어오려는 남성과 마주치기도 했다. 등산을 할 때면 때때로 중년 남성 등산객들이 '혀를 끌끌 차며 유달리 과잉 보호'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십 대 레즈비언 커플과 사십 대 중년 여성이 '여성들의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새로운 경험이 되기도 했다.
여성의 인권이 향상되면서 여성의 역할은 달라지고 있다. 여성이 늘 피해자이거나, 혹은 '평화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상징으로 읽힐 필요는 없다. 사실 '평화의 어머니'는 '전사의 어머니'의 다른 면이며, (남성적) 권력의 논리다. '여성이 곧 평화'라는 등식에는 성원들이 모두 고개를 젓는다. 한천지영씨는 말한다.
"아직까지는 여성이 소수자였지요. 때문에 한국 여성들의 경우 자신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에는 익숙합니다. 하지만 내가 기득권이 될 때 그에 대해 성찰하는 태도는 아직 미숙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경을 넘고 편견을 넘어 자유롭게 떠나는 이들의 여행은 규모도 행선지도 미정이다. '코스를 개발해 알리는 여행'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시스투어 살롱을 참고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