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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라고 하면 흔히 고리타분한 옛날의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고, 어려운 설명들로 꽉 차 있는 복잡한 공간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실상 박물관을 자세히 들여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각 지역의 박물관은 그 지역의 역사나 어떠한 테마를 보여주는 역사와의 매개체로써, 혹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유물들. 그건 단순히 박물관 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박물관 외에는 외부전시라고 하여, 실내에는 들여놓기 힘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 가치가 큰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았다. 마침 '한국의 칼'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하고 있었고, 한국의 무기에 관심이 많은 나에겐 때마침 좋은 기회인 셈이었다.


'과연 어떠한 유물이 펼쳐질까'란 기대감에 박물관 관내로 들어가기 전,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옆에 무엇인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왠지 곱게 정돈된 것처럼 보이는 석탑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석탑으로 가까이 가서 자세히 바라보니 비를 맞아서인지 그 모습이 청초해 보였다. 바로 정도사 터 5층석탑이란 이름을 가진, 고려시대의 석탑이었다. 상륜부는 사라졌고, 제일 위층의 옥개석이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상층기단은 특이하게 한쪽은 근래에 들어서 다시 보수하거나 교체한 듯이 다른 돌과 달리 한 돌만 흰빛을 내고 있었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은 이 탑은 사실 보물 357호의 ‘귀하신 몸’이시다. 본디 칠곡군의 정도사 터에 있다가, 일제강점기 시절 경복궁으로 이전하고, 1994년에 국립대구박물관에 온 사연 많은 석탑이다.


상층기단의 한 면에는 명문이 음각 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최근에 새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는 것은, 그 명문의 보존을 위하여 일부러 그쪽만 다른 돌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명문엔 고려 현종 22년인 태평 11년, 즉 1031년에 국가의 안녕을 빌고자 세웠다고 한다.


이렇게 국립대구박물관은 정면에 정도사 터 5층석탑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기실 국립대구박물관의 외부전시는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국립대구박물관의 산책로 곳곳에 유물이 숨어있다.


비가 와서인지 모든 세상이 물을 머금은 듯하다. 산책로도 물을 먹어서인지 촉촉함이 먼저 반겨주었다. 비 때문에 잠에서 깬 듯 지저귀는 소리가 살짝 들린다. 해님도 언제 비가 왔었느냐는 듯이 게으른 빛을 쪼이며 물기를 털어낸다. 자연이 꿈틀대는 가운데, 박물관 한쪽에 마련된 산책로를 걸어간다.

 

 

산책로를 조금 올라가니 무엇인가가 보인다. 지붕이 얹혀 있어서 무엇인가를 보호하는 것 같은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바로 가마터였다. 이곳은 바로 토기가마 전시장이라 불린다.


이곳에 있는 가마터는 경산 옥산동에서 발굴된 것이다. 옥산동 7호가마란 이름을 갖고 있는 이 가마는 삼국시대의 것으로서, 산의 경사면에 따라 만들어진 반지하식 굴가마이며 토기를 굽는 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가마는 토기를 구울 때 불을 지피는 연소실, 그리고 토기를 굽는 곳인 소성실, 아궁이면서 연기가 빠져나가는 공간인 연도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이 가마는 연도부가 훼손되었다는 게 단점이지만, 다행히 연소실과 소성실이 잘 남아 있어, 그 당시 굴가마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토기가마 전시실을 지나 계속 올라가면 유적공원이라는 곳이 있다고 하였다. 표지판을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니 옆에 오솔길이 하나 나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왠지 시간만 더 있다면 그 오솔길을 따라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가지는 않고 지그시 오솔길을 바라보니 작은 동물 하나가 쪼르르 다가왔다. 바로 청솔모였다. '이런 도심 한가운데에 청솔모가?'라는 의문과 함께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이곳은 진짜 도심 속 공원이 된 것이리라.


오솔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도심 속의 오솔길은 시골에서의 오솔길보다 더 반갑다. 수많은 오솔길들을 보고 지냈지만, 이때만큼은 참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날 맑은 가을철에 다시 찾아와 잎이 떨어진 이 오솔길 사이로 걸어나가는 기분은 또 어떨까?


오솔길 옆에 난 길로 좀 더 내려갔다. 유적공원으로 가고자 해서였다. 유적공원에 도착해서 보니 몇몇 유구가 보였다. 그 중에서 첫눈에 들어온 것은 고인돌이었다.


이 고인돌은 칠곡 복성리에 있었던 20개의 고인돌 중 하나이다. 남방식 고인돌인 이 유구는 거북이 등 껍질같이 울퉁불퉁한 상석을 올려놓고, 이를 4개의 돌로 받치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었다.

 

 

위의 사진은 돌널무덤의 모습이다. 돌널무덤이란 돌로 관을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하며, 주로 청동기시대에 쓰였던 무덤 중 하나이다. 이 돌널무덤은 재미있게도 무덤의 범위를 주변에 긴 네모꼴로 넓게 돌을 깔아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고인돌에 더러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다. 일종의 묘역을 표시한다고 인식된다.


이곳에 갔을 무렵에 난 평소엔 발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이런 돌널무덤을 실측하고 있었기에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고인돌을 보면 겉에서 보이는 그 무겁고 큰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라는 점에서 경외감을 느끼나, 그 속에 있는 돌널무덤을 보면서 조상들의 섬세한 모습을 다시 한번 상기하기도 한다.

 

 

이런 고인돌 옆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생긴 게 있다. 이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주거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으로, 그 속에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은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둥근 모습으로서 벽을 돌로 쌓아 만든 것이다.


바닥에서 목탄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바닥에 깐 나무 판재나 멍석 등의 흔적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는 사실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데, 중국의 유적에서도 더러 보이며,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에서 확인된 바가 있다고 한다.


국립대구박물관의 외부전시는 다른 박물관에 비해 산책로가 발달해 있다. 그리고 그 산책로에는 문화재를 전시해 놓아, 우리에게 문화재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 놓고 있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이런 박물관에 들어가 문화재를 감상하기 전, 한번 그 주위를 산책해 보고 역사를 직접 느껴보는 것도 어떨까?

덧붙이는 글 | 2007년 8월 8일 국립대구박물관에 답사갔다온 것에 대해 쓴 글입니다.


태그:#국립대구박물관, #정도사터 5층석탑, #경산 옥산동 가마터, #칠곡 복성리 고인돌군, #상동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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