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어머나 이일을 어쩌면 좋아. 녹두전을 빠뜨리고 차례를 지냈잖아. 내가 정말 못살아”주방으로 가 본 난 화들짝 놀랠 수밖에 없었다. 추석차례를 끝내고 주방에 와보니 녹두부침개는 손도 안 된 채 얌전히 있는 것이 아닌가. 호들갑을 떠는 내 소리에 남편과 아들이 무슨 일인가? 하면서 주방으로 왔다.
손도 건드리지 않은 녹두부침개를 보더니 어이가 없는지 “조상님들도 다 아시겠지. 괜찮아”하며 나를 달래준다. “그렇지 아시겠지” 나도 허공에 대고 헛소리를 해본다. 이렇게 이번 추석차례는 해놓은 녹두부침개도 빼먹고 차례를 지내고 말았다. ‘그래 첫 차례니깐 조상님들도 이해해 주실 거야’하며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 본다.
이번 추석명절차례부터는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그 이유는 큰댁이 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이민 간 큰댁에서 차례를 지낸다고는 하지만 그곳은 외국. 가족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집에서도 기제사와 명절차례를 지내기로 만장일치로 합의를 본 것이다. 하여 난, 추석 일주일 전부터 추석명절준비로 시장을 보러 다녔다.
왠지 신이 나고 재미가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딸은 “엄마는 이 일을 즐기는 것 같다” 할 정도였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게 좋지. 안 그래?” 그동안은 큰댁에서 형님이 봐놓은 장으로 음식 만들기를 거들기만 했었기에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깨너머로 배운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일단 필요한 품목을 쭉 적어 놓고 보고 또 봤다. 밤, 대추, 약식, 청주, 산자, 옥춘등 상하지 않는 것은 미리 사두었다.
그리고 추석을 4일 남겨놓고 두 가지 김치를 담군 후, 채소 ,과일, 고기 등 본격적인 차례 상을 보기시작 했다.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 채소 값이 비싸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다. 21일 대형마트에서 채소 값을 봤다. 시금치가격은 1580원. ‘비싸긴 비싸구나.’하며 다른 채소는 볼 것도 없이 돌아섰다. 재래시장은 그 가격보다는 더 쌀 거란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광명재래시장에 갔다. 시금치가격은 2000원, 쪽파 큰 거 한단은 4500원이나 했다. ‘어떻게 마트보다 시금치 가격이 더 비싸네. 내일이면 조금 내리겠지.’ 하곤 다른 채소들만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23일) 광명재래시장을 다시 찾았다. 그날은 마지막 장보는 날이었다. 우와! 그날 시금치 가격은 3500원이나 했다. 쪽파가 9000원이 되었다. 나중에 올케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올케는 동네 마트에서 4500원이나 주었다고 한다.
채소는 명절이 가까워 올수록 비싸진다는 것을 알았다. 시금치 한 단 해봐야 누구 코에 부치겠나. 생각 끝에 취나물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취나물을 넉넉히 사가지고 의기양양해서 집에 왔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나물을 무치려고 하니 취나물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다시 시장에 가서 취나물을 두 번째 사서 초록의 나물을 무쳤다.
초록의 나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도라지는 조상이고, 고사리는 부모, 시금치, 취나물등 초록은 나 자신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빼놓을 수가 없었다. 또 초록의 나물이 있으면 상이 산뜻하기도 하다.23일 오후부터 천천히 느긋한 마음으로 음식장만을 하기 시작 했다. 동태 전, 두부 전, 녹두부침개등 5가지의 전을 부쳤다. 24일은 5가지나물을 무치고 탕국과 조기를 굽고 산적등을 준비했다.
남편도 옆에서 밤도 까고, 병풍도 손질하고, 돗자리도 찾아놓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일을 도와주었다. 추석날 집으로 찾아올 동생내외와 딸네 식구들을 위한 찌개와 게장, 갈비등 음식도 따로 장만을 해야 했다. 첫 번 차례준비라 많이 부족했다. 녹두도 갈아 놓은 것을 샀고, 떡도 떡집에서 샀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말린 고사리와 나물들을 사는 것을 예사로 봤었다. 하지만 이젠 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날 아침, 남편과 아들은 지방을 쓰고 책을 보면서 차례상을 차렸다. 추석날 저녁 동생내외, 딸 식구, 우리집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이틀 동안 장만한 음식을 차려냈다. 시장한 탓인지 맛있게 먹는 모습이 피로가 모두 날라 가는 듯했다.
올케는 “형님 이 김치, 찌개 정말 맛있어요. 형님이 그동안 숨겨놓은 음식솜씨가 나오네요.”하며 칭찬을 해준다. “숨겨놓은 솜씨가 어디 있어. 어쩌다 맛있게 됐나보다” 올케는 “음식도 안하면 자신이 없어져요. 형님은 앞으로 점점 더 음식솜씨가 늘겠네요.”한다. 사위는 내가 그동안 담군 김치중에 제일 맛있다고 한다. 그러니 내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명절음식은 해 왔다. 하지만 차례를 지내고 그 음식으로 가족들과 먹는 만찬은 더욱 뜻이 깊게 느껴졌고 즐거웠다. 다음 명절부터는 미리 미리 준비를 해서 차례를 좀더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직접 차례를 주관해보니 그동안 차례를 준비한 모든 주부들의 노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녹두부침개 사건만 빼면 나름대로 차례를 무사히 지낼 수 있어서 마음은 홀가분했다. 남편과 아들도 정신이 없어서인가 녹두부침개가 빠진 것을 몰랐다고 했다. 아마 다음 차례 상에는 녹두부침개부터 올려 놓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추석 차례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족의 특별한 추석풍경 응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