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빠 오늘 정상까지 갈 거야!”
“산에 가을꽃이 많이 피었더라.”

 

민주(13)가 산에 가는 이유는 아빠의 강제성 띠는 권유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에게도 그 대책은 있다. “동백쉼터”까지 가는 것이다. 정상(497m)은 아니지만 산 절반 이상을 오르는 셈이 된다. 결코 만만치 않는 코스다.

 

같은 산을 오르면서 코스가 다르기 때문에 헤어졌다 다시 “동백쉼터”에서 만나야 하는 이별이 따르는 산행이다. “비만과의 전쟁”이라는 말에 다 들 공감 할 것이다. 요즈음 어른 아이 모두에게 비만은 고민거리다. 그래서 민주를 협박과 꼬드김으로 정상까지 데리고 가려는 게 아빠의 욕심이었다.

 

 민주는 정상까지 간다고 하는데 오늘은 불평이 없이 순수하게 따라 나선다.  꽃을 좋아한 녀석은 “가을 꽃”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산길을 오르는 입구에는 밤송이들이 달려있다. 푸른 가시로 덮였던 송이는 속살이 꽉 찬 알밤 때문에 송이가 벌어지고 있다. 밤나무는 태풍이라도 지나간 듯 어수선하다. 밤송이에 욕심이 생긴 산행객들 때문에 벌써 이 가지 저 가지가 부러지고 손이 닿기 어려운 나무 위쪽에만 몇 송이 달려있다.
 
10여 분을 오르자 벌써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민주 얼굴에는 힘들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바람이 분다. 시원하기보다는 서늘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오솔길에 잘 익은 도토리가 여기저기 하나 둘씩 보인다. 얼른 하나 주었다. 갈색의 윤이 난다. 겨울을 지내는 다람쥐 등 산 짐승들에게 더 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더 주어갈까 생각하다 손에 주운 도토리를 그대로 숲으로 던졌다. “먹잇감이 되지 않고 땅속에 묻힌 도토리는 씨앗이 되어 싹을 띄우겠지.” 민주는 웃으며 이마에 땀을 닦는다. 

길 따라 핀 가을꽃들이 예쁘다. 꽃과는 어울리지 않은 돼지나물 꽃, 노란 고들빼기 꽃이 예쁘다. 국화과에 속하는 구절초가 눈에 많이 띈다. 전국 산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는 잎 구절초, 넓은 잎 구절초는 가을 산을 찾는 산행인들에게 작은 기쁨을 준다.

우리가 꽃을 볼 수 있는 데는 길로부터 숲이 가리지 않는 곳까지다. 그 이상을 보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위험을 줄 수도 있는 욕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국화꽃잎에서는 싱그러운 냄새가 난다. 하얀 꽃잎은 청순함 그 자체다.

 

"숲을 헤치고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야생화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욕심만 빼고 나면 산길 따라 자연이 만들어 준 꽃만 보아도 마음은 흡족하다.

청미래 덩굴에 달린 불그스레한 열매가 곱다. 잘 익은 사과 같다.  어렸을 적 명감이라고 불렀다. 빨갛게 익을 열매를 따서 먹곤 하였다. 약간 단맛이 나지만 속은 하얀 솜처럼 퍼석퍼석하다. 민주는 가을꽃을 보면서 오르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산행이 힘들지 않은 모양이다.

 

“아빠 진달래꽃이다.”

 

철쭉꽃봉오리가 곧 터뜨리려는 듯 부풀어 있다. 계절의 혼란에 빠져 너무 성급한 마음에 꽃봉오리를 맺은 모양이다. "지난 5월에 너를 보고 내년에 만나기를 기약하고 헤어졌는데 올해가 가기도 전에 또 한 번 보다니."  싫지는 않다. 그런데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처럼 지금 빨리 피고 내년에 오는 봄을 잊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조금 더 가자 활짝 핀 철쭉꽃을 볼 수가 있다. 5월 보았던 분명 그 철쭉꽃이다. 가을꽃을 보다 봄꽃세상으로 빠져 드는 느낌이 든다.  곧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리라는 것을 모르는 철쭉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짧게 피었다 지겠지만 연분홍 꽃잎에서 올 봄에 느꼈던 가슴 설레게 했던 그 정취를 또 한번 느낀다.
  

철쭉꽃 구경이라도 하듯 범나비 한 마리가 날아든다. 녀석이 날개를 폈을 때는 범나비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날개를 접고 움직이지 않으니까 마치 습기가 빠져나간 매마른 단풍 낙엽 같다.

억새풀이 저만치에서 누구에게 손짓하는지 하얀 꽃잎을 높이 세워 가을바람에 하늘거린다. 산에 가자는 말에 무섭게 짜증을 부리던 민주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가을의 매력에 빠진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에 송고했습니다.


태그:#가을산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