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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멀리까지 용케도 왔군.”

 

사구조다의 말에 김억만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구조다의 몰골을 보니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넌 여기까지 왜 온 건가?”

 

사구조다의 물음에 김억만은 청안이 했던 말을 다시 되뇌었다.

 

“왜 왔냐고? 필연이란 없어.”

“뭐라고?”

 

사구조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아무런 이유 없이 여기까지 고생하여 왔을 수도 있겠군. 그런데 넌 저 여자와 내가 왜 여기까지 와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던가?”

 

필연 따위는 없다는 청안이야 그렇지만 청안에게 집착하는 사구조다의 태도에 김억만도 궁금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청안은......”

“청안이라는 건 네가 붙인 저 여자의 이름인가?”

 

사구조다의 태도는 다분히 상대를 도발하는 것이었지만 김억만은 그에 말려들지 않으려 침착함을 유지했다.

 

“청안은 자신의 고향으로 온 거네. 넌 그런 청안을 쫓아 온 것이고.”

 

사구조다는 김억만의 말에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하하하!”

 

결국 김억만은 평정심을 잃고 크게 소리 질렀다.

 

“그럼 뭐란 말인가? 어디 말을 해보거라!”

 

사구조다는 거짓말 같이 웃음을 뚝 끊은 후 김억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봐...... 우리는 널 따라 온 거야.”

“뭐?”

 

김억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지금 와 있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이젠 정신을 차리고 알 때도 되지 않았나?”

 

김억만은 사구조다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모르겠어? 우리는 지금 저승과 이승의 갈림길에 와 있는 거야! 내 옆으로 나선놈들의 총탄이 지나가고 쓰러지던 왈가족 여인을 기억하나? 그리고 넌 뭘 했지?”

 

김억만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때 김억만은 머리에 총탄을 맞고 거칠게 숨을 내쉬는 박사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김억만이 바라보는 박사길의 얼굴은 점점 바뀌더니 김억만 자신의 얼굴로 바뀌었다.

 

“아니야.”

 

김억만은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돼.”

 

사구조다는 김억만에게 손을 내밀었다.

 

“넌 너무나 먼 길을 와버렸네. 저 여자가 말한 필연이라는 게 뭔지 아나?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필연이었지.”

 

“그래도 필연이란 없어.”

 

이번에는 청안이 김억만에게 손을 내밀었다. 

 

“넌 죽었지만 죽었다는 걸 몰랐었지. 넌 살아도 죽은 것 같고 죽어도 산 것 같지 않았어?”

 

김억만은 나란히 내밀어진 두 손길을 바라보다가 품속에 지닌 호랑이 꼬리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호수에 힘껏 내 던져 버렸다.

 

“이렇게 죽어버리면 누가 날 기억해줄까?”

 

김억만은 호수위에 떠 있는 호랑이 꼬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가죽에서 떨어져 나간 저 호랑이 꼬리처럼 난 이곳을 죽어도 산 것처럼 떠돌아다니고 싶어.”

 

청안이 쓸쓸히 김억만의 말에 이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점점 기억은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삶이 시작되겠지.”

 

그 순간 김억만은 벌떡 깨어났으며 배군관과 동료 포수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크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그날, 조선군의 진영에서는 전투가 벌어진지 사흘 후에야 여덟 번째 전사자가 기록되었다.

 

덧붙이는 글 |
1.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나선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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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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