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당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수야 없주!”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당오름 중턱, 김 선생님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소주 한 병과 과자를 꺼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음력 8월 초하루. 나는 그때서야 어릴 적 어머니께서 매달 초하루마다 치성을 드리기 위해 양초며 쌀을 가지고 가셨던 민속신앙을 어렴풋하게 떠올렸다.
당오름 자락에 자리 잡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본향당. 김선생님은 신전 앞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숙인다. 고요한 본향당 뜰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까악’ 울기 시작했다. 아마 김선생님은 동영상 촬영을 위해 본향당 할망께 무사를 기원했을지도 모른다.
마을의 수호신 본향당 1만 8천신들이 살고 있는 신들의 고향 제주. 제주도에는 어느 마을이나 당신(堂神)을 모시는 당이 있다. 당신(堂神)은 마을의 조상을 의미한다.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모시게 된 당신은 마을 공동체를 예방하는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제주인들은 인간의 생활 속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신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왔다.
본향당 뜰에 들어서자, 붉은 현무암이 제단을 에워싸고 당오름 자락에 무성한 소나무가 한적함을 더해 주었다. 김선생님이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을 때 나는 사진을 찍어 댔다. ‘착칵' '착칵’. 적막과 고요를 깨는 셔터 소리. 하지만 왠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아마 그것은 ‘할망당에서 잘못하면 동티가 난다’는 속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민속신앙을 접한 것은 까마득한 옛날 어머님의 등 뒤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내게 민속신앙은 동화 같은 얘기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신당에서 굿을 하고 치성을 드리는 것일까?
소설 같은 송당 본향당의 좌정기 송당 본향당 좌정기는 한편의 소설 같다. 강남천국 백주가 송당 마을 소천국과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그 화두가 열린다. 백주가 소천국에 농사짓기를 권유했음이 당시 여성 지위의 편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특히 소천국이 밭갈 던 소를 모조리 잡아먹고, 백주가 소도둑으로 오인하여 이혼한 이야기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하다. 이렇듯 제주 신당의 좌정기는 우리의 삶 자체가 아닌가 싶다.
당오름 자락에 당신이 된 백주당, 그리고 지금은 패당했지만 알 송당 고부니몰 당신으로 좌정 소천국.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마을 사람들은 당오름 자락에 좌정한 백주 당신이 마을의 모든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고 믿고 있음이다. 즉, 마을 사람들은 본향당 여신이 마을의 안녕과 평안, 생업의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따라서 2월 13일 영등굿을 하고, 7월 17일 마불림제와 10월 13일 시만곡대제를 올리는 민속신앙의 정서가 아직도 뿌리 내리고 있다.
신과의 동락 통해 삶을 재충전하려는 의지
| 신당의 원조 본향당 송당 본향당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199-1번지에 있으며 ,민속자료 제 9-1호로 지정 돼있다. 송당 본향당은 마을 주민의 생산, 물고, 호적, 장적을 관장한다. 당신은 금백조. 전하는 당신 본풀이에 의하면 “웃선당 금백주, 셋손당 세명주, 알손당 소로소천국이 좌정해 있으며, 이 당에서 아들애기 열여덟, 딸애기 스물여덟, 손자애기 삼백스물여덟이 가지가지 송이송이 벌어졌다”고 한다. 제일은 1월 13일 신과세제, 2월 13일 영등손막이, 7월 13일 마불림제, 10월 13일 시만곡대제이다. 당굿은 1986년에 제주도 무형문화제로 지정됐고, 당은 2005년 제주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송당 본향당 표지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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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3개의 기단 위에 서 있는 나무도 백주를 모신 제단을 향해 경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모든 만물이 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듯 나 또한 본향당 뜰에서 숨도 내쉬지 못할 정도로 숙연해졌다. 제단의 틈새마다 인간의 나약함을 말해주듯 누군가가 꽂아놓은 타다 남은 향이 본향당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 신과의 동락을 통해 삶을 재충전하려는 문화원형의 뿌리가 아닐까. 섬사람들에게 민속신앙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세상이 변해도 왜 신화는 퇴색하지 않는 걸까? 그것은 사람들의 믿음 때문이다. 송당 본향당이 마을 토주관으로 삼백스물여덟 손자애기가 송이송이 벌어졌다고. 인간과 신이 만나는 곳, 그 신성함이 아직도 살아있는 곳. 인적 없는 당오름 자락에서는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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