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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불면, 나는 외로워진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가을바람이 불면, 나는 외로워진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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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게 한다. 지나간 많은 일들과 그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지나간 감정까지도.

중학교 동창생들 모습을 보며 '세월'을 느꼈다. 세월이 비켜간 듯 변하지 않은 친구도 있고 어렸을 적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친구도 있다.

명함을 보니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흔적들이 보인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큰 회사 간부급 직원이 된 녀석도 있고, 어울리지 않게 직업군인이 된 녀석도 있다. 직업 군인이 된 녀석은 조용한 성격 탓에 학창시절 눈에 잘 띄지 않던 친구였다.

[중년인 나] 옛날 이야기 안주에 동창회 술자리는 3차까지

지난 9월 24일, 추석명절 하루 전날에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는 시골 초등학교(충남 예산 구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24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청년도, 그렇다고 중년도 아닌 사람들이 걸어올 때 일순 긴장했다. 얼굴도 이름도 도무지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내가 먼저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어야겠다'라고 다짐하면서 운동장 한편에 서 있었다. 변하기야 했겠지만 그렇다고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기억력 좋은 친구 녀석 소개를 받고 나서야 '동창생'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면서 옛날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짝사랑하던 여학생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고, 괴팍했던 선생님 이야기가 술안주로 오르기도 했다. 정치 이야기가 등장하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지기도 했다. 나이도 같고 고향도 같은데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는 저마다 달랐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놓고 저세상으로 떠날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는 동창생 이야기에 모두 한동안 숙연해졌다. '이제 겨우 마흔인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말없이 소주잔만 홀짝거렸다.

소주 한잔만 하기로 했던 술자리는 3차까지 이어졌다.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한 동창생 녀석의 성화를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헤어지면서 나눈 인사말은 "살아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라는 것이다.

[노년의 부모님] 한평 두평 마련한 땅...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머니는 땅을 팔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신다.
▲ 노년 어머니는 땅을 팔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신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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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팔순인 아버지는 논밭을 팔아치울 궁리를 하고 계셨다. 성묘가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불쑥 "땅을 팔아야겠다"는 말을 꺼내셨다. 농사일이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올해까지는 그럭저럭 노구(老軀)를 이끌고 농사를 지으셨지만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농사를 짓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동안 농사짓던 땅과 집을 모두 팔아 읍내에 나가서 살 계획을 하고 계셨다.

그러나 어머니 생각은 달랐다. 절대로 땅을 팔 수 없다는 것이다 계셨다. 땅을 팔고 늘그막에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변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 말씀 모두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팔십 노구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도 힘든 일이고, 그렇다고 농부에게 생명과 같은 땅을 판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또 팔십 년간 살던 고향을 버리고 읍내로 나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도회지에 가서 함께 살자고 하고 싶었지만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모님 모시고 살만한 변변한 집 한 채 없는 형편이기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는 말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남겼다.

솔직한 심정은 땅을 모두 팔아서 그 돈으로 남은 여생 편하게 사셨으면 하는 것이다.

한 평 두 평 땅을 장만한 것은 부모님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다. 그 땅을 장만하는 동안 어머니 손바닥은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졌고 아버지 허리는 구부정해졌다. 이제 당신들을 위해서 그 땅(돈)을 아낌없이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년인 조카들] 작년까지만 해도 절 값 받더니, 이젠 내 아들에게 용돈을

세살 호연이와  숙녀가 된 조카. 조카는 24년 전 2살이었다.
▲ 청년 세살 호연이와 숙녀가 된 조카. 조카는 24년 전 2살이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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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하던 24년 전 네 살배기 꼬마였던 조카 녀석은 어느새 청년이 되어 세 살배기 내 아들에게 용돈을 준다. 장하고 기특한 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게 절값을 받던 녀석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조카도 이제 어엿한 스물다섯 숙녀가 되었다.

할머니·할아버지 용돈도 두 녀석 모두 따로 준비한 모양이다. 하얀 봉투를 내미는 것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어렸을 적에는 스무 살이 궁금했고 스무 살 때는 서른 살 나이가 궁금했다. 그 이후에는 마흔 살이 궁금했다. 나와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마흔이 되어 궁금증이 풀리고 나니 허무하다. 너무 쉽게 풀린 탓일까?

가을이다. 시월이 되었으니 날짜 상으로도 완전히 가을이다. 쌀쌀한 기운이 살갗에 느껴질 때쯤이면 이유 없는 외로움이 찾아온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을바람만 불면 이유 없이 외로웠다. 이 외로움도 마흔쯤 되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심해진다. 이제는 평생 지고 다녀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안다.

24년 만에 동창생들을 만나게 된 것은 가을이 만들어낸 일이다. 가을 바람이, 마흔살 가을에 느끼는 쓸쓸함이 우리를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했을 것이다. 이제 마흔살이 되었으니 가을의 외로움을 마음껏 여유롭게 즐겨 보리라 다짐해 본다.

부모님은 늙었고 나와 친구들은 청년도 중년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다. 그리고 조카 녀석들은 청년이 되었고 나의 2세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이것이 마흔 살 나의 가을이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열살 하영이 세살 호연이.
▲ 소년소녀들 무럭무럭 자라나는 열살 하영이 세살 호연이.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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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가을, #세월, #동창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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