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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가위를 앞두고


한가위를 앞두고 헌책방 나들이를 생각합니다. 적어도 명절만큼은 저를 낳아 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해야 맞겠지만, 어버이한테 느끼는 고마움 못지않게, 제 마음 밭을 일구고 이끌어 준 책을 살뜰히 베풀어 준 헌책방 일꾼들한테 느끼는 고마움이 크기 때문에, 인사를 드리러 다니고 싶어요.


제 몸뚱이를 빚어낸 분은 어버이이며, 제 몸뚱이를 사람답게 빚어낸 분은 헌책방 일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헌책방 일꾼들한테 찾아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곳에는 가야겠구나 싶어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섭니다.


먼저 집 앞에 있는 '아벨서점'을 찾아가서 선물 하나 드리고 인사 꾸벅하고 나옵니다. '아벨서점' 아주머니들은 명절날 하루만 쉬고 다른 날은 문을 연다고 하시네요.


동인천역으로 걸어갑니다. 저잣거리 옆쪽 골목길을 걷습니다. 선선한 날 바람쐬러 나온 어르신들이 보이고, 꼬마 여럿이 손바닥 쉼터에서 그네타기를 하며 놉니다. 명절 맞이를 한다며 저잣거리 사람들은 늦게까지 가게를 지킬 듯합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명절 같은 날은 더 바삐 일하며 몸이 고달프겠네요. 명절날 다 팔지 못한 물건들은 나중에 어떻게 하시려나.


전철을 탑니다. 동인천역에서 타면 용산역까지는 앉아서 갑니다. 앉아서 가는 만큼, 챙겨 온 책을 하나 꺼내어 읽습니다. 용산까지 가는 동안 반 권쯤 읽을 수 있겠군요. 여느 때보다 사람이 적은 전철입니다. 참 한갓집니다. 사람들이 가득가득 들어찬 전철은 끔찍한 지옥철이지만, 널널 하니 느긋한 전철은 시원하고 따뜻한 탈 거리입니다.


더구나 인천부터 용산까지는 땅 위에서만 다니기 때문에, 창 바깥 구경 재미가 쏠쏠합니다. 요즈막에는 가림막을 많이 세워서 기찻길 옆 사람들 집이며 살림살이 건너다보기가 어려워졌지만, 드문드문 가림막 사이나 너머로 보이는 집을 하나씩 바라보면서 '저 집들은 내가 꼬맹이였을 때에도 본 그 집이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1982년,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전철을 타 본 일이 떠오릅니다. 그에 앞서도 타 보았겠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네요. 예전에 전철을 탈 때는 역무원이 누르개로 톡톡 눌러서 두꺼운 도화지로 된 표에 구멍을 냈습니다. 이 표를 잃지 않으려고 내릴 때까지 손에 꼭 쥐느라 표가 땀으로 젖곤 했습니다.

 


<2> 헌책방 아저씨


“음료수 드세요. 몸에 좋은 제주 감귤이에요.”
“음료수 사러 다녀오셨어요?”
“예, 음료수가 다 떨어져서.”

 

'뿌리서점' 아저씨가 어느새 가게에 다녀오셨군요. 샛장수가 가지고 오는 책을 살피며 사들이느라, 책손들이 고른 책값 셈하랴, 지하에 있는 책을 꺼내 바깥으로 내놓느라, 숨돌릴 틈 없이 바쁜 가운데에도 모든 책손한테 자판기 커피나 페트병 주스를 한 잔씩 대접합니다. 자판기 커피가 다 떨어지거나 고장이 나면 페트병 주스를 하나씩 손수 따라서 대접합니다.


벌써 서른 해 넘게 이어온 대접. 그동안 '뿌리' 아저씨가 대접한 차 값을 돈으로 헤아리면, '뿌리' 아저씨가 늘 읊는 그 말씀, "헌책방 빌딩을 지어야지요"가 말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루어졌을지 모릅니다.


모든 책손들한테 "민족의 이름으로! 천 원 빼드립니다!" 하면서 당신이 매겨 놓은 책값에서 천 원을 빼고 이천 원을 빼서 에누리를 하셨음에도, 다시 한 번 에누리를 하시느라 '덜 벌어들인 책값'을 돈으로 짚어 보면, 그 "헌책방 빌딩"을 여러 채 지으셨겠지요.


문득, "헌책방 빌딩" 짓겠다는 꿈을 말씀하시는 '뿌리' 아저씨는, 이곳을 찾는 분들 마음에 시멘트나 철근이나 벽돌보다 훨씬 튼튼하고 야무진 "헌책방 사랑 마음"을 사람들 마음자리 한 편에 곱다시 지어 주셨을지 모르겠다는 생각.


한참 책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밤 열 시가 넘습니다. 길을 나선 때가 제법 늦기도 했지만. '뿌리' 아주머니가 넌지시 묻습니다.

 

"책, 더 보다가 갈꺼지?"
"네? 아, 저희도 곧 집에 가야지요."
"그래? 아저씨 식사하러 들어가셔야 되거든."
"저녁을 이제서야 드셔요?"
"일하다 보면 그렇지."

'뿌리서점' 찾아온 지 열 해쯤 넘은 책손은, 또는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넘은 책손은, '뿌리' 아저씨가 늘 밥 때를 놓치고 늦게 수저를 드는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느 만큼 책을 골랐으니 셈하고 집에 가야지' 하면서 두리번두리번 아저씨 어디에 계신가 찾다가 안 보이면, '아하, 밥 드시러 가셨나 보네' 하고는 조용히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뭐, 서서 기다리기보다는 골마루나 한 번 더 둘러볼까?' 하면서 두 번 세 번 같은 골마루를 다시 드나들면서 네 번 다섯 번 살폈던 책시렁을 여섯 번 일곱 번 다시 살핍니다.


바야흐로 열 번쯤 책시렁을 다시 살폈을 즈음, 스무 해 넘도록 '뿌리서점'을 들락거리며 수천 번이나 수만 번쯤 살폈을 책시렁 한 편에 '당신이 오래도록 찾고 바라던 책'이 코앞에 꽂혀 있음을 알게 됩니다. '허허, 오늘도 열 번쯤은 둘러보았는데 왜 못 보았을까?' 하면서 슬며시 웃습니다.

'뿌리서점'을 찾아온 지 얼마 안 되는 책손은, 또는 이제 한두 번 찾아온 책손은, '뿌리' 아저씨가 책값 셈도 안 해 주고 밥 먹으러 집에 들어가는 일을 못마땅해합니다. '바빠 죽겠는데,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고. 그러면서 '기다렸으니 책값 좀 빼 줘요' 하고 덧붙입니다. '그동안 많이 왔잖아요. 앞으로도 자주 올게요' 하는 말까지 덧달면서 책값 에누리를 바랍니다.


마음 여린 '뿌리' 아저씨는, "그러면 안 되는데, 이 책은 그렇게 싸게 팔면 안 되는데" 하면서 고개를 왼편으로 살짝 돌리며 입맛을 찹찹 다시면서, "하는 수 없지. 임자를 만났으니 가져가셔야지" 하면서 슬픈 낯빛입니다.


책값을 거의 반타작으로 에누리해 놓은 책손은 '제 기억으로는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다'고 느끼는데(1992년부터 여태까지 살펴본 바로는), 그렇게 헐값으로 책 값어치를 떨어뜨려 놓고도 '더 깎을 수 있었는데 못 깎아서 아쉽다'는 얼굴빛. 언제 한 번 아저씨한테 여쭤 보았습니다.


"그때 그렇게 책값 깎던 손님 요즘에도 오나요?"
"오긴 뭘, 다시 안 오지."


때때로 나이 일흔 넘은 할아버지 책손이 보다 못해서 한 마디 퉁.


"거, 그렇게 잘해 주는데 더 깎으면 어떡하나. 그 좋은 책을 가져가면서 그만한 값은 치러 주어야지."

 

<3> 책 살피기


스미야 미키오(隅谷三喜男)의 <한국의 경제>(한울, 1983)라는 책이 보입니다. 197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책이고, 우리네 경제 모습도 1970년대 자료까지만 살피며 쓴 책입니다.


어느덧 스무 해가 훌쩍 지나간 책이니, 일본에서는 요즘 판으로 새로 나왔을지 모르겠군요. 새로운 자료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1983년에 나온 이 책을 읽으면 1970년대까지 우리네 경제 형편이 어떠했는가 읽어낼 수 있어도 좋기 때문에 고릅니다.


"개발도상국은 민족주의적 체면 때문에 빈민촌과 같은 사회의 치부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종종 그것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려고 한다 … 빈민촌은 공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그 실태를 조사하려 들지 않는다." (55∼56쪽)


이 같은 대목은, 지난날부터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줍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우리 정부에는 '헌책방 통계'가 없습니다. 아니, 헌책방이라는 곳 통계를 낼 생각조차 않습니다. 새책방 통계나마 제대로 있을까요?

 


... 당연한 현상이지만 경영규모가 작은 농가나 농업 노동자일수록, 또 그 가족일수록 궁핍한 생활에 희망을 잃고 도시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들의 교육수준은 일반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공장노동에는 부적당하므로 공업에 취업할 기회는 극히 적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겨우 비바람을 피하기에 족할 뿐인 판자집과 도시의 최하급 잡업니다...  〈54쪽〉


야노욱흐/김희수 옮김 <카프카와의 대화>(신양사, 1969)라는 작은 책이 보입니다. 낯선 출판사에서 낸 낯선 글쓴이 이름. 그렇지만 <카프카와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된 책을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집어듭니다.


... 카프카 박사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앞에서 소심적어 할 필욘 없읍니다. 나도 꽤 많은 전기요금을 물고 있읍니다.” 그는 웃었다. 그래서 나의 소심적음은 사라졌다. “이분이 신비에 찬 빈대 ‘삼사’의 시인이로구나” 하고, 나는 소박하면서도 예의바른 사람을 눈앞에 보게 됨에 놀라서 혼자 말을 했다. “당신의 시에는 아직 잡음이 많습니다” 하고 프란쯔 카프카는 아버지가 우리 둘만 사무실에 남겨 놓고 나갔을 때에, 말했다.

 

“그것은 청년에게 부수되는 현상으로, 생활력의 과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잡음도 아름답기는 합니다. 그것이 비록 예술과는 공통되는 점이 없다 하더라도. 그 반면에 그 잡음은 표현을 방해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평론가는 아닙니다. 나는 급속히 입장을 바꾸었다가 다시 내 자신으로 돌아와서 그 거리를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읍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는 평론가가 아닙니다. 이미 재판을 받은 자일 뿐이며 방관자에 불과합니다.” ... (14쪽)


이야기 짜임을 보니, 구스타프 야노욱흐(Gustav Janouch)라는 사람이 1920년에 처음으로 카프라라는 사람을 만날 때부터 이이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찬찬히 이어집니다. 엮은이는 카프카와 만날 때마다 나눈 이야기를 잘 적바림해 놓았다가 책 하나로 엮었군요. 자기한테 고마운 스승이 있다면, 그분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알뜰살뜰 그러모아 놓은 뒤 책 하나로 엮어내도 괜찮겠습니다.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야노욱흐’란 사람은 참 좋은 아버지를 두었구나 싶군요. 야노욱흐라는 사람 아버지는 당신 아들이 열여섯이었을 때 당신 아들이 써 놓은 시를 우연하게 읽게 되었고, 이 시꾸러미를 당신이 일하던 곳에 있던 ‘카프카’ 박사한테 가져가서 한번 살펴봐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카프카 박사는 기꺼이 ‘어린 문학소년’ 작품을 죽 읽은 뒤 야노욱흐 아버지한테 당신 아들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야노욱흐라는 사람은 ‘카프카’라는 이름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뒤늦게 그이가 어떤 사람인가를 깨닫고는 틈틈이 찾아가서 문학이며 사회를 보는 눈을 추스르게 되었고, 자기 나름대로 훌륭한 문학을 일구어 나갑니다.

 

야노욱흐라는 사람은 아버지가 알아보기 앞서, 카프카 박사가 알아보기 앞서, 밑바탕이 제대로 되어 있었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시를 찬찬히 읽어내려간 뒤, 자기 문학을 좀더 북돋워 줄 만한 훌륭한 분한테 소개해 주며 아들한테 힘과 용기를 키워 준 아버지가 부럽습니다.

 

가브리엘 G.마르께스/박문호 옮김 <백 년 동안의 고독>(대명사, 1982)을 고릅니다. 일본 가톨릭 아동국 엮음/이선구 옮김 <이런 사람이 되기를>(성바오로출판사, 1972)도 고릅니다. 아이를 기르는 여느 어머니들이 쓴 글을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이 여느 아이들을 기르면서 느낀 이야기라. 그래, 그렇구나.


... 또 만일 부모가, 사람이란 완전하지 못하므로 부족한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고치도록 노력하는 겸손한 생활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는, 아이도 따라서 저만 잘났다고 거만한 틀이 잡혀서 독불장군식 인간이 되어 버릴는지도 모릅니다...  (120쪽)

 


야나기 무네요시/송건호 옮김 <한민족과 그 예술>(탐구당, 1976)이 보입니다. 어, 송건호 선생이 옮긴 야나기 무네요시 책? 이런 책이 있었나? 몇 해 앞서 송건호 선생이 돌아가실 때 본 ‘해적이’에는 나오지 않았던 ‘송건호 번역’이군요. 1976년이라, 그러면 송건호 선생이 <동아일보>를 그만둔 뒤인가요? 그렇다면, 송건호 선생은 당신 집안살림을 꾸려나가고자 번역일도 하셨다는 뜻일까요? 어쩌면, 이 책 말고도 또다른 번역책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 <한민족과 그 예술>은 ‘탐구당 출판사 편집부 보관자료’로 있던 책입니다. 새판으로 찍으려고 곳곳에 편집 지시사항을 적어 놓았군요. 어쩌다가 출판사 편집부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자료가 이렇게 흘러나와서 헌책방 책시렁 한 편에 놓이게 되었는지.


<4> 사진으로 찍어 주기 때문에


<Papua New Guinea>(Jacaranda, 1968)라는 낡은 사진책을 봅니다. 안쪽에 “The sounds of New Guinea”라는 이름이 붙은 도너츠판이 한 장 들어 있습니다. 파푸뉴기니아에 사는 새들 소리를 담은 판으로 보입니다.

 

<China’s Tibet>(China Intercontinental press, 2000)이라는 두툼한 사진책을 봅니다. 중국 정부에서 엮었군요. 썩 내키지 않지만, 골라듭니다. 저로서는 티벳에 갈 수 없고(비행기삯이 있어야지요), 티벳에 가 본다고 한들 그곳 보통사람 삶을 깊숙하게 들여다볼 만한 겨를이 없겠지요. 티벳을 군대힘으로 짓밟은 중국이 펴낸 책이지만, 이렇게 사진책으로나마 엮어내 주었기 때문에, 아쉬움과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제가 몸소 가 볼 수 없는 곳 모습을 마음으로 그리며 눈에 담아 봅니다.

 

책이란 그럴까요? 우리들 모두가 몸소 할 수 없는 일, 몸소 겪을 수 없는 일, 몸소 가 볼 수 없어서 몸소 살필 수 없는 일을 차곡차곡 담아내는 그릇일까요?

 

이렁저렁 고른 책이 퍽 묵직합니다. 들고 가자면 가방이 꽤 힘들어하겠군. 다리도 힘들어하겠네. 느즈막한 때에도 책을 구경하러 찾아온 손님들한테 차 대접을 하고 계신 '뿌리' 아저씨한테 책을 들고 갑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용산 '뿌리서점' / (02) 797-4459


태그:#헌책방, #뿌리서점, #서울,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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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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