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마디로 이 만화를 보면서 나는 울었고, 웃었고, 노인에 대한 지식을 어려운 말로 잔뜩 늘어놓는 노인복지학 책에 대해, 그리고 잘났다고 '노인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고 돌아다니는 내게 마구 화가 났다. 그러면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다음에 '노인의 이해' 강의를 맡게 되면 사람들한테 이 만화부터 한 번 보라고 해야지!"

 

지난 9월 유경 시민기자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의 한 대목이다. 유경 기자는 사회복지사로 '어르신사랑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문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가 만화를 보고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대체 어떤 만화이기에?

 

호기심에 만화가 올려져 있는 사이트를 찾아 클릭했다. 그리고… 나 역시 울었고, 웃었다. 사무실에서 보는 동안 주위 동료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아니 그전에, 나 스스로, 나이 마흔 중반에 만화를 보며 훌쩍이다니 이게 뭔 조화인가 싶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됐다. 거기 달린 수만 개의 댓글 대부분이 나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짬짬이 보는데 이거 원 눈물나려는 거 참느라고 죽겠네요" "흐르는 눈물 때문에 얼굴이 따가워 죽겠습니다" "부모님 생각에 새벽에 미친 듯이 울었네요" "얼마나 울었는지 다 읽고 난 후에는 티슈가 옆에 엄청 쌓여 있어요" ….

 

웹툰 1세대로 인터넷만화의 최고봉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미디어다음에 연재됐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이하 <그대>)가 바로 그 작품이다. 작가는 '강풀'로 더 잘 알려진 강도영(33)씨. 그는 인터넷만화의 새 지평을 연 '웹툰 1세대'로, 2003년 10월 연재를 시작한 <순정만화>부터 <아파트(미스터리심리썰렁물)> <바보> <타이밍> <26년>, 그리고 <그대>까지 발표하는 작품마다 네티즌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인터넷만화의 최고봉을 이루고 있다.

 

<그대>를 제외한 그의 모든 작품이 책으로 묶여 나왔으며, <그대> 역시 곧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또 6편의 장편 모두가 영화ㆍ드라마ㆍ연극ㆍ뮤지컬로 제작되거나 제작될 계획이다. 특히 첫 장편 <순정만화>는 모바일게임으로도 서비스되고 있으며, <바보>와 함께 '무빙카툰'으로 다듬어져 위성DMB의 전파를 타기도 했다. 가히 '문화계의 블루칩'으로 꼽힐 만하다.

 

앞서 인용한 기사의 제목은 "아, 나는 강풀을 만나고 싶다"였다. 나도 그랬다. 강풀을 만나고 싶었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꺼져 있었다. 메일을 보내고, 1주일 넘게 거의 매일 전화를 걸었다. 마침내 추석을 며칠 앞두고 연결이 됐다. "해외여행에서 막 돌아온 참"이라고 했다. 추석 이후로 약속을 잡았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한 빌라, 그의 보금자리를 찾았을 때 그는 피곤해 보였다. 핏발 선 눈에 목소리도 잠겨 있었다.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광고작업 하느라 밤을 새우고, 또 오전에는 수업(그는 지난해부터 모교인 상지대에서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을 위해 원주를 다녀왔다고 했다.

 

'날을 잘못 잡았나' 싶었지만, 염치 불구하고 가져온 질문의 보따리를 풀었다. 인터뷰는 지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3, 4평 남짓한 공간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 책상 위에는 타블렛PC와 프린터, 작은 오디오 컴포넌트가 놓여 있었다. 인물 동작을 연구할 때 참고하는 듯, 관절이 꺾이는 목각인형도 눈에 띄었다. 벽에는 그의 부모님이 직접 썼다는 <그대>에 나오는 편지가 붙여져 있었다. 인터뷰 동안 '고돌이'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가 들락거리며 우리의 대화를 엿듣는 듯했다.

 

'연락하기 힘들었다'고 했더니, <그대> 연재를 마치고 지난해 결혼한 아내와 함께 몰디브로 열흘간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 연재가 끝나면 항상 여행을 하나요?
"약간 강박관념 같은 게 있나 봐요. 해외를 나가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비행기도 작년에 처음 타봤어요. 작업이 5, 6개월 가니까 작업 기간 동안 너무 힘들어요. 저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 아내도 같이 고생하니까요. 뭐하나 끝낼 때는 어디든 꼭 가자 생각하고 있어요. 한창 작업할 때 이거 끝나면 어디 간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요."

 

한 분이라도 돌아가시면 강풀님 가만 안두겠어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만화의 대사를 빌려 쓰면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인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우유를 배달하는 할아버지와 파지를 수집하는 할머니의 사랑, 주차장 관리원 할아버지의 치매 걸린 아내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들 간의 우정이 시종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지난 4월 8일 '예고편'으로 연재를 시작해 9월 10일 '후기'로 연재를 마감했다. 본 내용은 모두 30화. 누적 페이지뷰가 2500만을 넘었다. 마지막 회에 달린 댓글 수는 약 3900개. 미디어다음 담당자 얘기에 따르면 "매주 화, 금요일 새 연재분을 올리는 날에는 평소보다 웹툰 코너의 트래픽이 2-3배 증가했다"고 한다.

 

강풀은 '후기'에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내 할머니 최금분 할머니께 바칩니다'라고 밝혔다. <그대>를 연재하게 된 계기도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께서 셋째 아들인데 그동안 형편이 안 좋아 할머니를 못 모셨거든요. 1년에 명절 때만 뵈니까 할머니 정을 모르고 살았죠. 그러다 3, 4년 전부터 할머니를 모시기 시작했는데, 물론 저는 따로 나와 근처에서 살았지만, 친할머니에 대한 것을 모르다가 알게 되니까 좋더라구요. 할머니와 얘기하면 재미없고 그럴 줄 알았는데 소녀 같으시더라구요."

 

- 할머니께선 <그대>를 보셨나요?
"글을 모르시니까 보시진 못하죠. 그림은 보시겠죠. 어머니께서 설명해주셨나 봐요. (할머니께서) 어디 가면 제 자랑을 많이 하고 다니세요, 창피하게(웃음). 관절염 때문에 병원 가셔서도 손자 자랑하시고, 그게 낙이신 것 같아요. 나름으로 효도하고 있는 거 같아요."

 

- 서른 초반의 나이로 어떻게 그렇듯 노인의 심정을 잘 그려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글을 쓰다가 막힌 적이 있어요. 나이가 많으면 (저희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죠. 노인들이라고 해서 사랑에 대한 감정이든 우리랑 다를 게 없거든요. 노인을 이해하려고 드는 건 아니더라구요. 굳이 이해할 필요 없이, 내가 그분이라면, (그런 생각으로 그냥)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았죠."

 

- 개인적으론 할아버지께서 글을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그림으로 쓴 연애편지를 건넨 장면이 특히 인상에 남는데요.
"저희 할머니 연세가 아흔셋이신데 글을 모르세요. 글 모르시는, 문맹이신 할머니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구요. 그럼 어떻게 연애편지를 쓸까, 그림 그리시겠지. 할머니 가까이 모시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 주차관리인 할아버지 부부의 죽음을 꼭 그렇게 비극적으로 처리했어야 하나요?
"저는 비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극적인 요소 때문에 그런 거겠죠. 비극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분들이 선택한 사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부분 그릴 때는 저도 좀 울적해지더라구요. 나 진짜 못된 놈 아니야, 그런 생각도 들고."

 

- 돌아가시게 하지 말라는 협박성(?) 댓글도 많이 올라온 걸 봤는데요?(한 네티즌은 '아, 진짜 누구 한 분이라도 돌아가시기만 해봐…으씨! 강풀님 가만 안두겠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실제로 그런 뉴스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올해 초 겨울에 (콘티를) 쓰고 있을 때 유난히 그런 뉴스가 많이 나왔어요. 슬픈 현실이지만 만화에서 한번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 죽음을 아름답게 미화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가시는 분도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고… 기왕이면 좀 예쁘게 하고 싶었죠."

 

- 독자댓글을 보면 만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 많은데 혹시 작업할 때나 자신의 만화를 보며 운 적은 없나요?
"그런 적은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감정은 갖고 있지만 글을 쓰면서 자꾸 퇴고를 하잖아요.  관찰자 입장이 되는 것 같아요. 약간 떨어져서 봐야 맞거든요. 내가 내 그림에 매몰되면 안되겠더라구요. 이번 만화로 울려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유난히 그런 댓글들이 많이 올라왔더라구요. 제 생각엔 다들 노인들에 대한 애틋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특히 나이 많은 분들이 메일을 많이 보내주셨는데 되게 감사했어요.  만화에서 약간 멀어지시는 분들이 보고 좋아하셨다고 하니까 되게 많이 힘이 되더라구요."

 

<그대>는 드라마제작사인 케이드림에서 영화(영화사 '공감'과 공동제작)와 드라마로 만들 계획이다. 또 트롯뮤지컬로 무대에 올릴 준비도 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광주'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강풀의 장편만화 가운데 가장 많은 화제와 인기를 불러 모은 작품은 지난해 연재한 <26년>이다.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팩션(faction)'으로 전두환씨 암살기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화려한 휴가'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청년이 26년이 지난 뒤, 항쟁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부모를 잃은 자녀들을 모아 함께 암살을 모의한다는 이야기다. 누적 페이지뷰 7000만 회를 기록했고, 지난해 독자만화대상 온라인만화상을 수상했다. 지난 5월 5ㆍ18 27주년을 맞아 3권의 책으로 묶어 펴냈다.

 

- '5월 광주'를 다른 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두환씨 암살모의'라는, 어찌 보면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설정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처음 만화를 시작한 것도 학교에서 '데모질'하다가 그런 거고. 그렇기에 계속 5ㆍ18에 대한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 아저씨 '29만원' 헛소리할 때부터 계속 생각했던 거예요. 저보다 어린 친구는 5ㆍ18과 8ㆍ15도 헷갈리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그게 그 친구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5ㆍ18 광주' 하면 지난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걸 현재의 이야기로 하고 싶었어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그리고 뭔가 만화적인 창작을 많이 할 수 있는 거로 그린 거예요."

 

- 비록 팩션의 형식을 띠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인데 부담을 느끼진 않았나요?
"부담이 많이 됐죠. 원래 제목은 '23년'이었거든요. 3년을 미뤘어요. 25년이 됐을 때 저녁뉴스를 보고 그날이 5ㆍ18인 줄 알았어요. 한창 마감할 때였는데 좀 침울하더라구요. 이번에 안 하면 평생 안 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는 총각 때였거든요. 결혼하면 더 겁이 많아질 거 같았어요(웃음). 그때 하기를 정말 잘한 거 같아요.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고 어떻게 보면 좀 치기도 있고 하지만 잘했다고 생각해요."

 

<26년> 댓글 가운데는 '광주시민으로서 감사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눈에 많이 띈다. 그는 광주시민들로부터 "메일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연재 전에는 광주에 수차례 내려가 당시 시민군이었던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했지만 정작 지난 5월 <26년>이 책자로 나온 이후로는 광주를 찾지 못했다.

 

"책 나왔을 때 광주 가서 인사드릴 수도 있었는데 안 갔어요. 좀 그렇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괜찮을 거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이상하더라구요. 뭐 하는 짓인가… (상업적으로 비칠까 봐 그랬나요?) 상업적으로 보이는 건 둘째 치고 뭔가 좀 쪽 팔리더라구요."

 

조용한 전두환씨?

 

광주시민을 비롯한 독자들의 열띤 반응과는 달리 전두환씨 측에선 의외로(?) 조용했다. "좀 얍실하지만" 만화 속에선 직접 전두환씨를 지칭하지 않았다. 연재 전 변호사들을 만나 법적인 자문도 구했다. 하지만 "사실은 (반응이)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테니까". 오히려 그는 문제 삼아주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슈가 되면 사람들이 좀 관심을 갖고, 왜 저러는 건데 (할 테고), 그러다 보면 결국은 다 알게 될 거 아니에요." 항의전화는 몇 통 받았다.

 

"초반에 2, 3회 나갔는데, 세 군데서 전화가 오더라구요. 굉장히 격앙된 목소리로 뭐 하는 놈이냐, 어린놈이 뭐 아느냐는 듯이…그래서 네,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죠. 심지어는 전화해 어디어디로 나오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만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됐거든요(웃음), 했죠. 그리고 5개월 동안 작업실 전화를 아예 뽑아놓고, 핸드폰도 아는 전화번호만 받았어요. 그 이후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심지어는 친구들도 연락이 안 됐었으니까요."

 

- 영화 <화려한 휴가>를 봤나요? 봤다면 <26년> 작가로서 어떻게 평가하나요?
"개봉날짜를 못 기다려서 시사회 표를 구해서 봤었거든요. 상업적으로 대중적으로 이 얘기를 끌어내준 감독님과 영화사에 진짜 감사드려요. 아쉬운 점은 있었죠. 예를 들어서 약간 대립의 관계처럼 느껴졌어요. 광주는 분명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약간 돌아가지 않았나 싶어요. 광주(학살)가 꼭 정신 나간 한 장군의 소행같이 느껴지는 점이 좀 아쉬웠죠. 그래도 700만이 넘게 봤다고 하더라구요. 최소한 몰랐던 사람들이 1명이라도 더 알게 됐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참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26년>도 스크린으로 옮겨질 계획이다. <괴물>을 만든 청어람에서 제작하고,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고, 올겨울 촬영에 들어가 내년 개봉 예정이다. 혹시 감독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마침 어제 같이 술을 마셨다"고 했다.

 

"일단 넘기고 나면 뭐라고 안 그래요. 만화 <26년>은 내 거지만, 영화 <26년>은 감독님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의견을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믿고 기다리는 편이에요. 시나리오 나온 것을 봤는데, 홍보하는 거 같지만, 마음에 들더라구요. (영화는) 오히려 (좀 더) 대중적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거든요. 그렇긴 하데 돌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암살 대상을 뿌옇게 한다든가, 희끗 지나가게 한다든가(웃음) 이렇게 안 하고, 기왕하는 거, 어차피 우리는 창작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좋더라구요."

 

"이야기의 원천은 관심, 호기심, 공상"

 

미디어다음 만화서비스 담당자의 얘기에 따르면 강풀 만화는 현재까지 약 3억 페이지뷰를 기록하고 있다. 댓글 수도 40만 개에 이른다. 지금도 계속 방문하고 댓글을 올리니 기록의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다. <타이밍>과 <26년> 연재 때는 네티즌들의 폭주로 이미지서버가 다운되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후론 마지막 회가 올라오기 2주 전쯤 개발팀에 의뢰해 미리 서버를 증설해놓을 정도다. 강풀 만화가 이처럼 네티즌의 사랑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제가 만화를 그리는 힘은 저 자신이 정말 대중적이기 때문이거든요. 저는 어려운 걸 못 봐요.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예술영화를 보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정말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만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영웅본색>이니까요. 저는 항상 내가 재밌으면 남도 재밌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할 때 그거 하나 믿으면 되더라구요. 제가 진짜 흔한 대중 중의 한 명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 같아요."

 

자신의 홈페이지인 '강풀닷컴'에서 그는 '그리고 싶은 만화'에 대해 '무조건 재미있는 만화'라고 밝혀놓았다.

 

그의 만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네티즌만이 아니다. 충무로와 대학로, 그리고 방송가에서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여러 곳에서 제의가 온다. 요즘은 아예 연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준비 중인 작품의 시놉시스를 보여 달라는 곳도 있다. 한 영화전문기자는 "지금 충무로의 제작자들은 강풀의 차기작이 보리차 끓이는 법에 대한 실험 만화라도 지갑을 열어젖힐 것이다"(<씨네21> 2006. 9. 20)고까지 썼다.

 

그는 "독자들로부터 검증받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스토리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작품이든 단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플롯의 명확함, 뚜렷한 역할과 사연을 갖고 있는 캐릭터의 생생함, 그들을 엮어 풀어내는 인연과 사건의 치밀함,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 이야기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관심이죠. 호기심이 많아서, 저 사람 왜 저러지, 저건 왜 저럴까, 그런 게 좀 많구요. 공상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책 읽는 걸 좀 좋아했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했고."

 

- 작품 가운데 영화사 등에서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작품은?
"<26년>이었어요. 정말 의외였어요. 누가 해 이걸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들 오시더라구요. 정확히 13군데서 왔었어요. 다른 만화는 많아야 여섯, 일곱 군데 정도였거든요."

 

그는 <26년>의 영화제작사로 청어람을 선택했다. 그 까닭은?

 

"청어람이 <괴물>을 만들었잖아요. 저력이 있다는 건 확인됐고. 그래도 좀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용배 대표님 만났는데 '이건 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시더라구요. 그 자신감이 너무 좋더라구요. 다른 분들은 '맡겨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는데 그분은 화법이…(웃음). 지금까지 진행 상황을 봤을 때 잘 선택한 거 같아요."

 

- <26년>의 판권료가 3억원 정도라는 '설'도 돌았는데요?
"그건 정말 설이구요. 그렇게 받았으면 지금 전세 안 살죠(웃음). 많이 받긴 받았어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면, 영화화하면 대박 났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진 않구요. 어느 정도 대우받은 거죠."

 

"'미드'를 보면 약 올라요"

 

- 작품 가운데 처음 영화로 선보인 <아파트>는 관객 14만 명을 동원했을 뿐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원작자로서 부담을 느끼진 않았나요?
"전혀 없을 수는 없는 거구요. (하지만 영화는) 만화랑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감독님 말씀대로 80% 이상 다른 거거든요. 아쉬운 건 분명히 있죠.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만화 <아파트>는 내 거지만, 영화 <아파트>는 감독님 거니까. 거의 콘셉트만 빌려가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얘기들이 많이 빠져서 아쉽기는 한데 제가 선택한 거니까 괜찮습니다."

 

그가 영화광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연재 중에도 1주일에 한번쯤은 꼭 극장에 간다"고 했다. 만화로 푼 영화이야기를 묶어 <영화야 놀자>(2007, 문학세계사)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머리말에서 "그렇게 닳고 마르도록 봤던 영화들은 창작의 샘이 되어 만화가인 나를 굳건히 받치고 있다"고 밝혔다.

 

- 만화의 컷 처리나 전개를 보면 영화적 기법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는 인상도 드는데요?
"은연중에 좀 많이 나오는 거 같아요. 영화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 혹시 처음부터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건 아닌가요?
"그런 질문을 되게 많이 받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26년> 전에는 안 그랬어요. <26년>은 영화화되기를 바랐어요. 주인공 아저씨가 짜증 날 정도로…. 그 다음부터는 영화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영화사들이 먼저 오거든요."

 

- 마음에 드는 영화를 만화로 그려볼 생각은 없나요?
"전혀 없어요. 남이 이미 해놓은 건 관심이 없어요."

 

- 그럼 영화감독을 직접 해볼 생각은 없나요?
"저랑 안 맞는 거 같아요. 영화판에 몇 번 놀러 갔는데, 진짜 아름답더라구요.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장면 찍으려고 움직이는 거 보니까. 공동작업인데 제 성격엔 그건 못할 거 같아요. 혼자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성격상으로도 안 될 거 같아요."

 

덧붙여 그는 최근 <24시간> <덱스터> 등 '미드(미국드라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보면 약 올라요, 너무 잘 만들어서. 돈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결국은 내용(콘텐츠)이 좋더라구요. 나중에 한번 드라마로 승부를 걸어볼까 하는 묘한 승부욕 같은 것도 생기더라구요. 되게 자극이 많이 돼요."

 

"나는 내 이야기 속에서는 신(神)"

 

그는 <26년> 후기에서 "만화는 발로 그리는 것"(허영만), "만화는 엉덩이로 그리는 것"(이두호 ) 등 선배 만화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역시 선배들(그의 표현대로라면 "선생님들")이 걸어간 길을 따르고 있다.

 

먼저 '발' 이야기. 그의 배경 그림은 현실처럼 생생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발품을 팔아 작품 배경으로 어울리는 곳을 찾아 직접 디카로 찍어 작품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제가 그림이 좀 안되기 때문에(웃음), 뭔가 좀 있어야 잘 되고. 그리고 스토리가 막힐 때도 그 비슷한 동네에 가면 나올 때가 있어요. 아, 저 골목에서 주인공이 뛰어나오겠지, 이런 생각하다 보면 이야기가 잘 될 때가 있어요. 만화에서 나왔던 배경 중에서 창작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다 사진 찍고, 돌아다니고, 준비기간 때도 나름 바빠요."

 

다음은 '엉덩이'. 그가 작업 때 앉는 검은 레저의자는 양 쪽 귀퉁이가 다 헤져 너덜거렸다.

 

"앉아서 10시간 넘은 적도 많아요. 그런 적도 있었어요. 한참 작업하다 보니 5시예요. 이게 새벽 5시인지 저녁 5시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알고 보니 (시계바늘이) 한 바퀴를 돌았더라구요. 그때는 이러다 죽는 거야, 죽으면 안돼,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죠."

 

만화가 가운데 그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그는 <누들누드>의 "양영순 형"을 비롯해 만화가 봉사모임인 '럽툰'(lovetoon.co.kr) 동료들과 친하게 지낸다며 만화가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만화가들이 불쌍한 게 만화 시작하고 나면 옛날 친구들이 다 떨어져 나가요. '야, 술 먹자' 그러면, '야, 새벽 2시야' 그러니. 사이클이 너무 다르거든요. 만화가들끼리는 새벽 4시에 전화해서 '야, 밥 먹으러 갈래', 이게 전혀 어색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만화가 친구들이 많아요."

 

그는 스토리를 완결한 뒤 그림 작업에 들어가는 작업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 그런 원칙이 어그러진 적은 한 번도 없나요?
"중간 중간에 에피소드들이 바뀌는 경우는 많이 있어요. 하다가 더 좋은 생각이 나면 그것으로 해야죠. 그러나 결말이 바뀐 적은 한 번도 없는 거 같아요. 죽일 놈을 살리거나, 둘이 헤어져야 하는데 만나게 한다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만화를 그릴 때, 스토리를 쓸 때, 제 마인드가 거만함이에요. 나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요. 내 이야기 속에서 난 신(神)이에요. 그리고 독자들에게 조금씩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다 써놓고 들어가야만 그게 가능하거든요. 스토리가 다 안 나오면 불안해서 아마 연재를 못할 거예요."

 

강풀은 그림이 서툴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 지쳐 보이던 그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 조금 아픈 곳을 건드려도 될 듯싶었다.

 

- 등장인물들을 보면 악한을 찾기 힘듭니다. 다들 천사처럼 착하기만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장편을 여섯 편 했는데 나쁜 놈은 딱 한 명 나왔죠. <26년>의 그 아저씨!(웃음) (등장인물들이) 너무 착한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좀 착하면 어때요. 저는 성선설을 믿어요. 아무리 나쁜 놈이고 비뚤어진 놈이라도 길가다가 아이가 넘어져 있으면 일으켜 주는 게 사람 마음이거든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전 착한 사람들 나오는 만화 계속 그리고 싶어요. 그런 만화 하나쯤 있어서 보는 사람 따뜻해지면 좋죠."

 

그의 아버지는 목회활동을 하고 있고, 그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작업실 전면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고, 유리창에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라는 성경 구절이 쓰여 있었다. "아버지 직업 때문"은 아니지만 "종교의 영향은 있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또 강풀의 그림(실력)에 대해 서툴다는 비판 또는 오해도 있다. 그 자신이 그 같은 지적을 어느 정도 부추겨 온 것도 사실이다.

 

- 지난 인터뷰 기사들을 훑어보니 '난 그림은 잘 그리지 못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많던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진짜로 그 얘기 안 하려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질문을 하세요. 그럼 '저 그림 잘 그려요', 그건 아니거든요, 제가 보기에도. 예전엔 그림 못 그린다는 얘기 많이 했거든요. 처음에 그러고 일절 안하려고 했는데, (계속) 물어보세요. 왠지 내가 스스로 나한테 좀 페널티를 줘가지고 '나는 원래 뭐 그림 못 그리니까 감안하고 보세요', 이런 얘기 같아 안하려고 하는데 계속 물어보시더라구요. 그럼 또 내가 생각하기에 분명히 이건 좀 아닌데, '이젠 됐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도 그렇고…. 그런데 지금 솔직히 말씀드리면 서서히 만족해가고 있어요. 내 이야기에 내 그림이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요, 만화가 선배님들이 그런 얘기 많이 해주시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 그림에 대한 아쉬움은 많이 줄었어요."

 

- 인터넷만화의 경우 단행본 오프라인만화와 다른 기법적인 고민도 많을 텐데요?
"오프라인만화는 컷, 칸으로 연결되잖아요. 연출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게 페이지를 넘기기 위한 도구일 수 있거든요. 웹은 그런 게 없더라구요. 한없이 늘일 수도 있고. 높은 하늘을 그리고 싶으면 하늘을 쫙 늘여서 (표현)할 수도 있으니까. 오프라인만화를 몰라서 하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웹툰은) 형식이나 표현에서 되게 자유스러운 거 같아요. 즐거워요."

 

<그대>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곳에서 전개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병렬로 보여주는 장면도 스크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특히, <26년>에서 총구를 떠난 총알이 빗줄기를 뚫고 건물 사이를 헤치며 길게 날아가는 장면은 스크롤 만화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제일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바보>의 승룡이

 

그는 또 오프라인만화에 비해 인터넷만화의 장점으로 "훨씬 더 많은 독자들"을 들었다.

 

"인터넷만화는 클릭만 하면 볼 수 있잖아요. 안타까운 생각도 들죠. 이렇게 그려서 다 공짜로 보게 하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 아직까지는 제 만화를 많이 봐준다는 게 기분이 되게 좋아요. 하루에 몇백만이 봤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되게 좋더라구요. 또 독자들과 교감이 빨리 일어나서 좋더라구요. 작가 스스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어요."

 

- 댓글은 많이 읽어보나요?
"많이 읽어보는 편입니다. 만화 올리고 10, 20분 있으면 몇백 개 달려요. 읽어보면 기분 좋잖아요. 대부분 좋다고 말씀해주시니까."

 

- 강풀닷컴에 소개한 내용을 보니 '싫어하는 것'으로 '악플 말고 욕플'을 꼽았던데요?
"이제는 그래도 이 바닥에선 고참이거든요. (전체) 만화판에선 정말 아직도 신인이지만 인터넷만화에선 꽤 오래된 편이기 때문에 악플인지 욕플인지 알아요. 밑도 끝도 없는 욕은 그냥 무시하죠. 처음엔 저 아이피를 쫓아가서 그냥! 이런 생각도 많이 했는데…. 인신공격을 넘어서 가족까지 들먹이는 글들이 많았거든요. 그럴 땐 정말 인간적으로 화가 나는데,  오래 하다보니까 이젠 '안됐다 뭐' 이런 생각이 들고, 편해졌어요."

 

우문(愚問)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장편 6편 가운데 특별히 애착이 느껴지는 작품은 무엇인지 물었다. 예상했듯이 "다 그렇습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정치적인 대답이죠?"라고 덧붙이며 '하하' 웃었다.

 

- 그럼 제일 힘들었던 작품은?
"제일 힘들었던 건 역시 <26년>이에요. <26년>은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곤했구요, 육체적으로도 죽겠더라구요. 이전 제 그림의 인물들은 하등신이구 그러잖아요. <26년>은 팩션이고, 현실의 얘기이니까, 사람을 처음 8등신으로 그려봤어요. 저는 만화가인데도 손이 많이 느려요. 작업량이 감당을 못하겠더라구요."

 

그리고 제일 애착 가는 작품은 못 꼽겠지만, 제일 애착 가는 캐릭터는 <바보>의 '승룡'이라고 했다.

 

"아까 운 적이 있냐고 질문하셨는데, 딱 한번 있었어요. 승룡이 죽기 전 방 청소하는 거 그리다가 괜히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게 왠 바보짓이야. (만화) 주인공 합치면 40명 넘을 텐데, 이상하게 승룡이한테 되게 애착이 가요."

 

대자보 만화가에서 직업 만화가로

 

그는 나이 스물아홉에 만화가로는 늦깎이 데뷔했다. 학교(상지대 국어국문학과) 다닐 때 습작은 많이 했지만 "직업이 만화가 될 줄은 솔직히 몰랐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총학생회에서 선전일, 홍보일 하다가, 그나마 그림을 그리니까, 그럼 대자보로 그려야지 했는데, 반응이 좋은 거예요. 저는 또 '잘한다 잘한다' 그러면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성격이거든요. 졸업할 때까지 내내 대자보 만화만 그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만화에 점점 애착이 가더라구요. 그래서 만화가가 된 거죠."

 

또 학교 때 풀색 옷을 자주 입고 다녀 얻은 '강풀'이란 별명도 그대로 이어 썼다. 하지만 '강풀'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 그 역시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졸업하고 이력서를 4백장 넘게 썼다. 만화잡지뿐만 아니라 구청신문, 벼룩시장, 심지어 동파이프신문 등 만평이 필요한 곳이라면 모두 이력서를 보냈다. 그런데 별 반응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별 반응이 없는 게 아니고 아예 반응이 없었죠. 정말 거만하게 썼거든요. 저는 그게 자신감의 표현이었는데, 보시는 분의 입장에선 웃기지도 않는 거였겠죠. 그래서 다시 6개월 동안은 만화파일을 들고 돌아다녔어요. 있지도 않은 경력을 거짓말해 어디 연재했다고 뻥 치고. 그것도 별로 반응이 없어서 이번엔 이력서를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아는 형을 귀찮게 해서 CD로 만들었죠. 그런데 CD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게 좀 멍청한 짓이더라구요. 홈페이지만 있으면 바로 되는데…."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이 그린 만화를 올렸고, 그것이 네티즌들의 '펌질'을 통해 퍼져나가며 인기를 끌었고, 그 덕택에 미디어다음에 정식으로 <순정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순정만화>가 '대박'을 터뜨렸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스타작가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자신의 만화의 뿌리인 대자보 정신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연재 도중에도 간간이 시사만화를 그려왔다. 미군장갑차 사건 때 '효순이 미선이'를 그렸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카툰릴레이에 참여했고, 지난해에도 한미FTA 반대 만화를 인터넷에 올렸다.

 

- 그런 시사만화는 본인 스스로 생각해서 그리는 건가요?
"우러나서 하는 거구요. 시키면 또 하려다가도 안 해요. 가끔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하구 있구요. 요 근래는 많이 못했죠. 연재하다가 이거 정말 해야 한다 싶으면 할 때가 있어요. 조만간 또 하지 않을까 싶어요."

 

- 탄핵 반대 만화를 그렸던 것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후회 안 하구요. 지금도 뭐 별로 변한 건 없지만 그 당시엔 정말 절대악이었거든요. 전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만화릴레이를 했잖아요. 어떻게 해서든지 선거 때까지는 끌고 가려고, 안되면 내가 매일 연재를 해서라도 하려고 했는데 정말 많은 만화가 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셨어요. 내가 신인만화가인데 누구 시킬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70여명이 왔어요. 하루에 하나씩 올리려다가 (많아서) 2개씩 올렸었거든요.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나 봐요."

 

그런데 "그때 이후로 짐이 많이 따라다녔다"고 했다. "예를 들어서 독도문제 같은 거에 왜 가만있느냐. 노무현 정부 똑바로 못하는데 왜 가만있느냐… 뭐, 그래서 어쩌라구요(웃음)."

 

강풀이 만화를 사랑하는 까닭, 우리가 강풀 만화를 사랑하는 까닭

 

그는 매년 2편의 장편을 연재해왔다. 5개월 연재하고, 2개월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다음 연재는 내년 1월이나 2월에 시작할 계획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한 편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로 선보이지 않은 작품이다. 그는 "영화사에서 말하지 말라고 했다"며 말을 아꼈다.

 

"그전에도 이런 제의가 몇 번 있었는데, 다 안 했었거든요. 이번엔 아까운 아이템이고, 괜찮은 거 같아서… 그리고 만화로 잘 못하겠더라구요, 너무 대작인 거 같구요. 영화랑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으로 해보는 겁니다."

 

내년 연재 예정 작품을 묻자 그 역시 "비밀"이라며 웃었다. 그리고는 "요즘 고민 중"이라며 그 고민의 일단을 살짝 털어놓았다.

 

"호러물이나 블록버스터 대작을 (할까 생각했는데), 조선시대 얘기거든요. 그런데 요즘 조선시대 얘기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더라구요. 조선시대 관련 드라마가 8개래요. 다하니까 하기 싫어지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고민 중이에요, 뭘 할지."

 

그는 지난해부터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상지대에서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오전 수업을 위해 원주에 다녀왔다. 무엇을 가르치냐고 물었더니 "스토리 작법 같은 거나…"라고 말을 꺼냈다가 "그냥 놀아요"라며 웃었다.

 

- 많은 만화지망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만화 그리는 친구들이 너무 준비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데뷔할 거야 하면서 골방이나 화실에서 열심히 그림 실력을 닦기보다는, 기술은 좀 덜됐더라도 일단 시작을 했으면 좋겠어요. 살다 보면 너무 늦은 거 아니야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저는 스물아홉에 시작했잖아요. 굉장히 늦게 시작한 거거든요. 나이가 마흔이 되건 오십이 되건, 뭘 해야겠다 생각할 때 그때 시작하면 늦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늘 해야 할까 하고 망설이고 미루면 그게 늦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뭘 해야겠다 생각하면 그냥 막 해버렸으면 좋겠어요."

 

- 자신은 혹시 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거나 미뤄둔 게 있나요?
"미뤄둔 건 없습니다. 하고 싶은 건 다하고 살고 있구요. 미뤄뒀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써놨거든요. 여덟 개 정도 다음 거 준비하고 있는데. 제가 몸뚱이가 하나니까 차근차근 해나가야죠. 뭘 꼭 해야 하겠다는 것은, 아내의 잔소리 때문에 살 빼야 하겠다는, 그런 거 외에는. 만화 그릴 수 있게 돼 전 되게 행복해요.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해도 이렇게 밖에 못할 거 같구요."

 

- 그럼 남은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정말 재밌는 만화를 계속 그리는 게 꿈이에요. 나중에 사람들이 내 만화 재미없어하면 그때는 바로 때려치울 거예요. 사람들의 반응이 없는 그런 만화 그리는 건 정말, 어휴, 끔찍하거든요. 지금처럼,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그런 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어요. 그 기간을 최대한 늘이도록 열심히 글도 보고, 그림 공부도 하고, 만화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노력하는 거죠."

 

그는 <타이밍> 후기에 만화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했다.

 

"만화를 시작하고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하루도 없다. 겨우 겨우 쥐어짜내야만 독자들에게 겨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화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죽어라 내 만화 그리기가 계속 되는 것은 아마도 내가 그만큼 만화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만화가 '강풀'이라는 이름을 걸고 독자들에게 '만화'로 말을 거는 즐거움.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당신들은 어때요…?' 내 이러니 어찌 만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고백은 또한, 나를 포함해 네티즌들이 강풀의 만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까닭이기도 할 듯싶다. 그런데 새 연재를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너무 길다.


태그:#강풀, #강도영,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만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