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월) 오후 2시, 서울 잠실 롯데호텔 3층 크리스탈 볼룸은 얼핏 보아도 65세가 넘는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800명 선착순 참석이라고 밝혔던 주최측에서는 밀려드는 어르신들을 위해 추가로 의자를 배치하느라 분주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서울문화사, 2003), <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궁리, 2005) 등의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히노하라 박사는 96세라는 고령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꼿꼿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2시간 동안 꼬박 서서 강연을 했으며 목소리 또한 노인 특유의 메마르고 갈라진 소리가 아닌 비교적 듣기 좋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노인 정의 75세 이상으로 바꿔야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한 히노하라 박사는 이어서 새로운 노인, 곧 신(新)노인의 정의를 내렸다. 이제는 노인을 65세 이상이 아닌 75세 이상으로 정의해야 한다며 '일본 신노인회'는 75세 이상은 시니어회원, 60세 이상은 주니어 회원, 20세 이상 60세 미만은 서포트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이후 자신이 직접 보여주고 있는 장수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죽 들려주었고, 중간중간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 그리고 그것이 '신노인회'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이어졌다.
히노하라 박사의 강연과 활동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신노인회'의 4가지 슬로건-사랑할 것, 창조할 것, 인내할 것, 어린이에게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히노하라 박사는 특히 마지막 '어린이에게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전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하며, 역사 왜곡 등의 문제 역시 민간 차원에서라도 노인 세대가 후세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2시간의 강연이 모두 끝난 후 주최측에서는 히노하라 박사에게 감사패와 함께 대통령이 100세 노인에게 선물한다는 문경 특산 '청려장'(명아주 지팡이)을 전달하였다.
나중에 찬찬히 둘러보니 강연장에는 히노하라 박사와 함께 한국에 온 '일본 신노인회' 회원들이 3분의 1 정도 자리를 함께 했고, 우리나라 어르신들도 단체로 온 분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어르신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으려니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특별 강연을 들으러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것이 그저 신기했다. 그러나 마이크 소리가 잘 안들린다며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분과 자리가 모자라는 데도 일행의 자리를 맡아놓았다며 양보하지 않는 어르신(결국 강연회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 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을 보며 과연 한국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신노인회'의 활동 목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또한 노인들이 다음 세대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히노하라 박사의 주장에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어느 정도나 공감할지도 의문이었다. 마침 그 자리에서 만난 <실버타임즈>의 박상균(71) 기자에게 질문하니, "굳이 전쟁과 노인을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경제 발전과 노인을 연결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가기 쉽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편 '한국 신노인회' 결성 준비와 관련해서는 그는 "'일본 신노인회'는 시대적 흐름과 장수에 바탕을 두고 생긴 것으로 본다. 한국적인 두레나 협동정신, 화랑정신, 효 사상 같은 것에서 가장 한국적인 '신노인회'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국제적인 '신노인문화운동'의 새로운 기원이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강연장을 나오면서 앞으로 히노하라 박사 같은 분의 활동에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많은 자극과 도전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히노하라 박사 못지 않은 고령에, 자신만의 삶의 경험과 깊이있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그런 분이 강연회를 한다면 강연장의 자리가 얼마나 찰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나 역시 그래도 강연회에 갔었을까를 심각하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일까? 아님 나를 포함한 우리의 한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