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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방문길에 오르던 엊그제(2일) 1면 머리기사(노 대통령 방북) 바로 옆에 큼지막하게 ‘부시·이명박 면담 막으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압박’을 가한다는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의 ‘주장’을 올렸다.
 <중앙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방문길에 오르던 엊그제(2일) 1면 머리기사(노 대통령 방북) 바로 옆에 큼지막하게 ‘부시·이명박 면담 막으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압박’을 가한다는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의 ‘주장’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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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만난다고 표 찍어줄 국민 아니라는 <조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역시 <조선일보>가 한 수 위다. 정치기사, 특히 선거 국면에서 복잡 미묘한 정치 사안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를 따라붙기에는 아직 한참 먼 것 같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부시 미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 해프닝에서도 그런 실력차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느냐고?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조선일보>는 미 백악관이 이명박 후보의 부시 면담 일정을 공식 부인하자 어제(3일자) 사설에 ‘국민 자존심 건드린 이명박·부시 면담 추진’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이 후보의 부시 대통령 면담추진이 처음부터 ‘과욕’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상대국 정부와의 공식 관계를 절대적으로 최우선하고, 상대국 정부가 좋든 싫든 정부를 제치고 야당을 상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굳이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발상 자체에 대해서도 한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 후보가 부시 미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한 것은 “그것으로 이번 대선의 대세를 확실히 굳히겠다는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라면서 “지금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누가 미국 대통령을 몇 분 만나 사진 찍는다고 표를 찍어줄 20년 전 수준은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자존심을 상해할 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며 이 후보에게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한국민의 체통과 위신만 떨어트린 망신스러운 처사에 대해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은 그만 접으라”는 식으로 점잖게 ‘당부’하고 끝낼 일인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조선일보>는 짚을 것은 그래도 짚었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후보 진영의 ‘잇단 헛발질’에 대해서도 기사로 다뤘다. 기본은 한 것이다.

한국정부가 면담 방해했다는 주장 크게 실은 <중앙>

<중앙일보>를 보자. <중앙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방문길에 오르던 엊그제(2일) 1면 머리기사(노 대통령 방북) 바로 옆에 큼지막하게 ‘부시·이명박 면담 막으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압박’을 가한다는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의 ‘주장’을 올렸다.

“한국 정부가 미 행정부에 자꾸 항의하면 부시 대통령의 예정된 면담 가운데 우선순위가 점점 멀어질 수 있다”는 강영우 차관보의 우려도 전했다. 만약 면담이 무산된다면 그것은 한국정부의 ‘방해 탓’이라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어떤 지시나 미국 측에 우리의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는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의 응답이나 “사실 관계 확인차 물어본 것일 수는 있지만 한국 정부가 반대나 찬성 입장을 나타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외교부 조희용 대변인의 말은 기사 맨 뒤에 장식처럼 달렸다.

그러나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과 맥스 곽 주한미대사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이 후보 면담설’을 공식 부인한 것에 대해서는 어제 3일자 8면에 ‘2단 기사’로 작게 실었다.

비공식 루트인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의 ‘주장’은 1면 중간머리기사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정작 백악관과 주한 미 대사관의 공식 부인 발언은 저 안쪽 지면에 ‘2단 기사’로 처리한 것을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중앙일보>는 여전히 ‘비선’ 쪽의 발언을 더 신뢰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어제 백악관이나 주한 미 대사관의 ‘공식부인’을 그처럼 단순 기사로만 다룰 일은 아니다. 강영우 차관보의 발언이 그처럼 신뢰가 있었다고 한다면, 결국 ‘부시-이명박 면담’을 공식 부인한 백악관 등의 발표 배경 등에 대한 비중 있는 후속 기사나 분석 기사 등이 필요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실력' 차이

<중앙일보>는 사실 이명박 후보가 방미해 부시 미 대통령을 면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날(9월 29일) 순발력 있게 ‘사설’부터 쓰고 보았다. 사설 제목은 ‘부시 미 대통령 왜 이명박 후보를 만날까’였다. ‘해설기사’ 같은 사설이었던 셈이다.

이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경위야 어찌됐든 유력한 차기 주자가 최대의 동맹국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된 것”을 “환영”했다. “부시 대통령이 관례를 깨면서까지 이 후보를 만나는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추정을 했다. 그 하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극심한 불신. “(노무현 정부는) 한·미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 신뢰를 회복했다고 떠들어댔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고 했다. 또 하나는 남북정상회담 견제용이라는 풀이. “임기가 넉달여 밖에 남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이 무리한 일을 저지를 경우를 가정해…(중략)…북한 핵문제는 제쳐놓고 남북 관계가 지나치게 과속하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미는 없을까”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이 사설에서 어쨌든 이 후보가 부시 미 대통령을 면담하기로 한 데 대해 “미국과의 동맹을 중요시하는 국민은 오히려 안도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 다수의 생각은 이 정부가 쏟아 낸 언행들과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라”고 이 후보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그것이 국익에 부합된다”고도 했다.

<중앙일보>는 이처럼 처음부터 ‘잘못된 행로’를 잡았다. 반면 <조선일보>는 점잖게 이후보측의 경망스러운 행보에 일침을 가하는 어른스런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실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더욱이 이번 헛발질은 그 사안이 외교문제에 관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명색이 전임 주미 대사 출신으로 한 때는 유엔 사무총장까지 바라봤던 분이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로서는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을 듯하다.

<중앙일보>는 오늘(4일) 뒤늦게 이명박-부시 면담 불발 원인을 짚은 “미국을 몰랐다”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한마디로 기사 제목처럼 이명박 후보측과 한나라당이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이 후보 주변의 외교라인이 허약하다”는 평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뒤늦은 분석과 진단은 고스란히 <중앙일보> 보도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는 뒤늦은 것일 뿐만 아니라, 뻔뻔스런 분석이기도 하다.


태그:#이명박 , #부시, #조선일보, #중앙일보, #강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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