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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항으로 이뤄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2007 남북정상 선언)' 내용 가운데, 예상하지 못했으면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역시 '종전선언 정상회담 추진'이다. 이와 관련된 합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3자 또는 4자"가 된 이유... 중국 포함될까?

 

이 합의에서 우선 주목할 부분은 북한이 남한을 평화체제 구축 문제의 당사자라는 점을 '확실히' 인정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74년 3월 26일 미국 의회에 보내는 서한에서 평화협정 체결 회담을 제안한 이후 남한을 배제한 북미평화협정을 주장해왔다.

 

그러다가 북한은 2000년 10월 12일 클린턴 행정부와 합의·발표한 북미 공동코뮤니케에서 "쌍방(북미)은 한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점에 합의해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드러냈다.

 

그리고 2005년 5월에는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모든 나라"가 평화협정 서명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9월에 체결된 9·19 공동성명에서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고 합의해, 평화체제 '논의' 당사자로 남-북-미-중 4개국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평화체제 '논의' 당사자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번 남북정상 선언에서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3자는 남-북-미를 의미하고, 4자는 여기에 중국을 포함한 것을 일컫는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이미 중국군이 철수한 지 오래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어떠한 형태로든 미중 보장체제를 선호해온 남한은 중국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3자 또는 4자"로 귀결된 셈이다.  

 

따라서 일단 관심의 초점은 종전선언 정상회담에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포함 여부에 모아진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한국전쟁 당시 핵심적인 교전 당사자인 데다가 정전협정 서명자 이고, 중국이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 참여하기를 희망해왔으며, 9.19 공동성명에서 명시된 "별도 포럼"이 4자회담을 의미하고, 한국이 중국의 참여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자 정상회담에 중국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종전선언 언제쯤 이뤄질까?

 

그렇다면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은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 열쇠를 쥐고 있는 부시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김정일 위원장 역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에 동의함으로써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문제는 시점이다. 물론 이는 북핵 문제 해결의 상당한 진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종전선언의 시점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 선언이 갖는 위상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전협정은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정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법적·기술적인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면 두 차례의 서해교전이 있었으나 정전협정 이후 대규모의 교전사태가 발생하지 않았고, 남북한이 불가침을 약속하는 등 한반도는 사실상의 종전 상태에 들어갔다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종전선언은 군사적 적대 행위의 공식적인 종결에 합의하고 선언함으로써 한국전쟁의 종결 여부에 대한 모호성을 해소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곧 평화협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전쟁의 '종결'에 합의하는 것이지 전쟁의 원인까지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의 원인까지 해결해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몫은 평화협정에 있다.

 

이처럼 종전선언의 위상을 평화협정으로 가는데 필요한 '정치 선언'으로 규정한다면, 종전선언을 위한 다자 정상회담은 내년 상반기 중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 6자회담 2단계 이행조치에 따라 올해말, 혹은 내년초까지 북핵 불능화 및 신고가 완료되고 테러지원국 해제 등 이에 대한 상응조치가 완료되면 북한의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논의와 함께 평화체제 구축 논의도 본격화될 것이다. 그런데 북핵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는 종전선언이 아니라 평화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임기 내 북핵 해결을 원하는 부시 행정부의 목표가 달성되려면, 미국은 내년말까지 북미수교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은 이미 이러한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을 종합해볼 때, 종전선언은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 방안에 '합의'한 직후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시기적으로 내년 5월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평화협정 체결은 북핵 폐기가 사실상 완료되는 내년 하반기에 '행동 대 행동' 혹은 '병렬적' 차원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합의 사항이 원활하게 이행된다면,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아래의 과정을 밟아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6자회담→6자 외무장관 회담→라이스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6자회담 2단계 이행조치 완료→평화체제 4자 포럼 개시→6자회담 3단계 이행조치 합의→한반도 종전선언 정상회담→북한 핵폐기 돌입 및 평화협정 본격 협상→북한 핵폐기 완료 및 평화협정 체결.

 

종전선언 회담, 판문점에서 열릴까?

 

이번 남북정상회담 선언에서 눈에 띄는 또 한가지 부분은 종전선언 정상회담 장소로 "한반도지역"으로 특칭했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평화체제 논의를 남북한이 주도하고 종전선언의 의의를 극대화하겠다는 남북한 정상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식이 거행될 최적의 장소는 어디가 될까? 필자의 견해로는 판문점이 유력해 보인다. 그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우선 판문점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여러 곳의 회담 장소가 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호에도 문제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판문점은 정전협정이 서명된 장소이기 때문에 종전선언의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판문점 바로 옆에 개성공단이 있기 때문에, 종전선언에 참여한 외국 정상, 특히 부시 대통령에게 개성공단 시찰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는 남북경협에 대한 국제적인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실질적 성과를 낳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판문점 종전선언식'의 장점들은 앞으로 남북한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더욱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줄 것이다.

 

물론 종전선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가장 큰 변수는 김정일 위원장이 핵 시설 폐쇄와 불능화에 이어 핵무기 및 핵물질의 폐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또한 종전선언이 핵폐기로 가는 길목에서 열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핵 폐기가 완료되기 이전에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려고 할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또한 한국의 차기 대통령의 생각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게 되었다. 이제 50여년전에 교전 당사국의 정상들이 만나 한국전쟁의 종결과 평화협정의 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모습은 그저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태그:#종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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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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