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동암으로 가는 길.
 동암으로 가는 길.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속리산 자락에 있는 동암이라는 암자를 아는가. 법주사에 몇 차례 다녀온 사람이라 해도 아마 이 암자의 존재를 알거나 찾아가 본 사람은 썩  많지 않을 것이다.  법주사 오른쪽 담장을 끼고 걸어가면  법주사 선방이 나온다. 동암은 법주사 선방의 맞은 편에 있는 암자다.

동암은 법주사 창건 당시 함께 지은 암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전소하여 오랫동안 빈터로 남아 있었다. 이곳에 복원 불사가 시작된 것은 1977년이었다. 한갑진이라는 거사의 시주와 신성도 스님의 원력이 합쳐져 성사된 불사였다.  

법주사 담당을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자, 삼거리가 나오고 '동암'이라 새긴 돌이 보인다. 암자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노각나무 자생지'라 쓰인 안내판이 나그네의 눈길을 붙잡는다.

노각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다. 꽃도 차나무와 거의 비슷하다. 처음에는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수피라는 뜻에서 녹각(鹿角)나무라고 하다가 발음이 쉬운 노각나무가 되었다. 벗겨져 알록달록한 수피가 아름다워 비단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로 지정되었다고 안내판은 강조한다.

임진왜란 이후 속리산 암자는 폐허였다

 동암의 요사. 자전거를 탄 스님의 모습이 이채롭다.
 동암의 요사. 자전거를 탄 스님의 모습이 이채롭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동암에서 가장 먼저 길손을 맞는 것은 요사다. 이 요사는 특이하게 맞배지붕으로 돼 있다.

수정암을 위주로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나머지는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다. 승도들이 쇠잔하여 거의 모양을 이루지 못하였다. 바라보는 암자 중에 동암, 오십굴암, 대암, 상사자암, 상고암, 본속리암 등을 모두 다 기록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 비어 있고 폐허가 되어 있었다.-정시한(1625 ~ 1707)의 <산중일기>,  1686년 10월 6일치

동암, 오십굴암, 대암, 상사자암, 상고암, 본속리암 등을 돌아본 17세기 선비 정시한은 "대부분 비어 있고 폐허가 되어 있었다 "라고 쓰고 있다. 수정암은 법주사로 들어가는 들머리,  개울을 낀 암자다.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법주사 팔상전이 22년이라는 긴 공사 끝에 복원된 것은 1626년이었다. 정시한이 이곳 암자들을 둘러본 것은 팔상전이 복원된 후 60갑자가 지난 1686년이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떄까지도 전쟁으로 입었던 피해가 전혀 복구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몇 줄의 서술만으로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입은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시한이 돌아보았던 암자들은 그렇게 폐허로 방치되다가 모두 시간 속으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동암은 이렇게나마 복원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보수 공사 중인 정오선당.
 보수 공사 중인 정오선당.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또 하나의 선원.
 또 하나의 선원.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주 선원인 정오선당은 공사 중이다.  해제 철을 틈타 그동안 손대지 못한 곳을 수리하나 보다. 앞쪽엔 정오선당보다 한 칸 정도 작은 선원이 또 있다. 아마 방부를 들이는 선객들이 넘쳐날 때만 쓰는가 보다. 서향으로 지어진 정오선원과는 달리 이 선원은 남향한 채 앉아 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것일 게다.

정오선당은 공사 중이라 그렇다 쳐도 앞쪽 선원 역시 조용하다. 하기야 선원이란 게 본디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길 꺼리는 건물이긴 하지만. 건물도 침잠하고 그 안에 들어앉은 선객도 침잠하는 게 선원이다. 침잠 속에서 화두를 목숨처럼 껴안고 깨침의 순간을 기다린다. 깨침은 서서히 다가오는 깨달음과 다르다. 어느 한 순간 벽력같이 오는 것이 깨침이다.

젊어 한때,  스님들에게서 입산을 권유받은 적 있다. 그러나 그때는 금(金)과 티끌을 확연히 구분할 줄 모르던 시기였다. 속(俗)이 금이었고, 성(聖)이 도리어 티끌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어떨까. 요즈음의 나는 선원을 볼 적마다 저 안에 들어앉아 한 번 죽기 살기로 용맹정진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곤 한다. 뒷북치는데 아주 이골난 중생이 나다.

관음전 옆에 남향으로 세워진 3층 석탑.
 관음전 옆에 남향으로 세워진 3층 석탑.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서향으로 앉은 관음전.
 서향으로 앉은 관음전.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관음전 추녀 끝에 달린 풍경.
 관음전 추녀 끝에 달린 풍경.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암자의 맨 끝에 이르자, 맞배지붕 형태의 관음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쪽 수정봉을 향하고 있다. 규모가 작아서 장중하다기보다는 얌전하게 보이는 건물이다. 조심스럽게 불전의 띠살문을 열자, 관음보살이 미소로써 객을 반긴다. 풍만하고 후덕한 얼굴이다.

불전 안은 어두컴컴하다. 보관 위에서 관음보살을 비추는 등만이 유일한 불빛이다. 어둠은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게 한다. 높다란 불단 위에 앉아 계신 관음보살만이 보일 뿐이다. 마치 관음보살이 어둠을 타고 둥실 떠오른 듯하다.

관음보살은 이 세상 뭇 것들의 소리를 여과 없이 듣는 분이시다. 그는 신음하는 중생의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하여 귀 대신 눈을 택한다. 오디오를 비디오로 변환시키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한 단계의 노력을 덜 하고 더하고 차이가 성과 속을 가르는 것 아닐까.  

추녀 끝마다 양철 물고기를 매단 풍경이 달려 있다. 이곳의 풍경은 유난히 크다. 너무 크다 보면 소리를 내는 일이 그만큼 힘들어질 것이다. 소리를 잃은 풍경은 제 본분을 잊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해탈의 순간을 기다리는 노각나무

노각나무 열매.
 노각나무 열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암자를 나오면서 보니 노각나무 열매는 아직 터지지 않은 채다.  다 익으면 열매가 담긴 껍질이 봉숭아 씨방처럼 툭 터져 5개로 갈라지는데 그 안에 황적색으로 익은 앙증맞은 열매가 들어 있다.

어쩌면 열매를 싼 껍질이 터지는 순간이 노각나무에겐 깨침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내겐 쉽사리 터지지 않는 번뇌와 망상의 열매들이 무수히 달렸나니 내 생이란 게 참으로 노각나무만도 못한 비루한 것이 아닌가. 이 생에선 깨치기 글렀으니 다음 생에선 한 그루 노각나무로나 태어나볼까. 나무노각나무보살...。

동암에서 곧장 문장대로 가는 길은 없을까. 자전거를 탄 스님이 뒤따라오기에 지름길을 물으니 다시 법주사로 나가서 등산로를 타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동암까지 걸어온 길이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불현듯 한산시 한 수가 떠오른다.

身著空花衣(신저공화의) 足攝龜毛履(족섭구모이) 手把兎角弓(수파토각궁) 擬射無明鬼(의사무명귀)

몸에는 '허공의 꽃' 옷을 입고/ 발에는 '거북의 털' 신을 신고/ 손에는 '토끼의 뿔' 활을 잡아/ 무명의 귀신을 쏘려고 겨눈다.-김달진 역 <한산시>에서  

'허공의 꽃'과 '거북의 털', '토끼의 뿔'은 모두 이 세상엔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을 구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인간이 어디 있는가. 내 잠시나마 없는 길을 애써 찾았으니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태그:#법주사, #동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