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담을 수 있는 마을이기를 바랍니다. 촌놈이 촌놈다워야 하고, 상업성이 배제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사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우리 것 다움’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우리네 삶을 체험객들이 함께 함으로써 스스로를 찾아가는 체험을 만들고 싶습니다.”체험객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강골마을만의 독창적인 모습을 담아 보여주겠다는 전남 보성 득량면 강골정보화마을 운영위원장 이정민(46)씨. 그는 강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토박이다. 정보화마을과 인연을 맺은 지는 올해로 15년째, 지난날 중고컴퓨터를 수리해 마을을 돌아다니며 교육시키는 ‘정보화센터’를 직접 운영한 경험이 정보화마을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외갓집 같은 정겨움 묻어나는 강골마을
그는 전국 최초로 전남 장흥과 보성에서 ‘농업 지킴이 모임’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사람이다. 육지 속의 섬이나 다를 바 없었던,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강골마을에 사는 그가 깨어 있는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농업에 대한 불합리는 농사꾼이 깨뜨리고 농업환경 또한 농사꾼이 옳게 만들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에서였다.
현실보다 앞서간 생각 때문에 아픈 기억도 많았다. 윈도우가 보급되지 않은 시절 컴퓨터 교육은 정말 힘겨웠다. 본인도 잘 모르는 컴퓨터교육을 시키겠다고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던 시절, 농민들 교육은 영어 때문에 곤혹스러웠고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야 하는 당시의 컴퓨터를 이해시키는 것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12년 전 당시 전남 도청 전산실에 근무했던 유영환씨가 그의 이런 열정을 이해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 컴퓨터 교육에 대하여 비판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유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새 컴퓨터를 받아 뜻을 같이 한 동료 2명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다. 전남 화순과 곡성 등지를 돌아다니며 교육한 그때의 감흥을 그는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다음은 그와 나눈 강골 정보화마을에 대한 일문일답이다.
- 체험마을에 민박집 하나 없던데요.“무슨 일이든 미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체험 마을에 민박집 하나 없어 처음에는 고민 많이 했습니다. 민박하는 곳도 현재 사람이 사는 집입니다. 그래서 사는 집을 활용합니다.”
- 사는 집에서 숙박을 시키면 불편해하지 않던가요.“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팬션 등의 꿈을 꾸고 찾아왔다가 낯선 환경에 당혹스러워하며 불편을 호소했습니다. 그건 다 선입견 때문이죠. 하지만 하룻밤을 묵고 나면 오히려 친척집에 온 듯하고 좋다며, 하룻밤을 더 묵은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장점이죠. 우리가 사는 집에서 함께 생활하니까 친척집에 머문 듯, 외갓집에 온 듯, 살가운 정을 느끼곤 한답니다.”
- 체험객들의 마음을 빼앗았다던데요.“마음이 머물러야 체험객이 계속 이어집니다. 체험의 승패여부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 농촌체험은 온, 오프라인이 병행되어야 하며 정으로써 대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정이 없는 만남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민속품은 전시품이 아닌 생활용품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사는 집을 잠깐 살펴봤다. 마루에는 반닫이 옷장, 장구, 꽹과리, 남포등, 갓 등의 옛 물건들이 집 곳곳에 놓여 있다. 우리 가락을 좋아하는 안식구가 사람들에게 장구와 꽹과리 등을 가르치기도 하고 선보이기도 한단다.
아이들이 만져보고 신기해 한다. 때로는 다 부셔놓기도 하고 깨트리기도 하지만, 망가져도 좋으니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한다. 선반에는 백자항아리와 삼베 풀 먹이는 베솔, 조리, 태평소 등이 정돈되어 있고 벽에는 남포등이 걸려 있다. 툇마루에는 나무 다듬이 위에 숯다리미가 놓여 있다.
강골마을은 명터와 명가가 많아 대한민국의 풍수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마을은 마을을 지켜가는 사람이 소중하다. 철쭉 두 그루를 가지고 철쭉제를 연 이 위원장은 “즐기고 흥겨우면 되지, 축제가 별거냐”며 학생 세 명과 축제를 열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철쭉제가 끝난 후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학생들은 하나 둘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온방을 떼굴떼굴 구르며 파안대소를 하더란다. 작은 철쭉제는 작은 풀 하나, 꽃 하나에도 다 의미가 있는데 화려함만 쫒는 세태를 나무라고 단순함이 아닌 깊은 사고를 했으면 하는 그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올봄에 열린 3회 철쭉제에는 50여명이 다녀갔다.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 참여하는 축제가 돼야지, 구경꾼이 되면 안 된다”며 체험객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강골마을은 쌀눈발아엿, 잡곡, 예당쌀, 올벼쌀 등의 특산품을 올부터 상품화했다. 하지만 다른 정보화마을과는 달리 체험 위주의 마을이다. 앞으로 체험 위주로 ‘하나더하기’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너 하나, 나 하나 함께 참여하면 하나더하기가 되고 힘이 된다.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직접 참여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전통은 멋이 있고, 맛이 있고, 정신이 담겨야 한다
- 강골마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볼 수 있나요.“단순한 집 구경이 아닌 촌놈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생각으로 오셔야 해요. 문화는 사람 중심이어야 합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폐허가 됩니다. 집은 사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집에 왔으면 사람을 먼저 찾아야지, 집을 먼저 찾으면 안됩니다. 사진기만 들이대는 구경꾼은 싫습니다.”
- '참 여행'이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이 너무 숨 가쁘게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정신병을 앓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주말이면 여행을 한답시고 여행 아닌 고행을 떠납니다. 시간이 멈춘 곳에 머물면서 삶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독이며 숨고르기 하고 눈에만 담지 말고 마음에 담고 가는 여행이 '참 여행'입니다.”
- 체험객이 강골마을에 오면 만족하나요.“올 여름 체험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한 아주머니가 두리번거리며 안색이 변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분위기와 다른 모습이었다며 밤에는 인근 모텔에 가서 묵었습니다. 대부분 만족하지만 가끔은 이런 체험객도 있습니다. 이럴 땐 마음이 아픕니다.”
- 집에 거미줄이 보이네요.“거미줄은 1년에 한번밖에 안 걷습니다. 거미줄이 모기와 벌레를 잡아줍니다. 거미는 농촌생활에 유익한 동물이죠.”
- 어떤 체험을 하나요?“잠자리에 모기장으로 장수풍뎅이가 날아듭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만지고 관찰하고 야단법석이에요. 이런 것이 진짜 체험이죠. 갯벌에서 바지락과 쏙 잡기, 게 잡기 체험, 마을 앞 송곡천에서 은어와 가재잡기, 물놀이하기, 녹차밭 구경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철길 옆으로 지나는 하천에서는 낚시와 다슬기 잡기는 기본이고 수량이 풍부해 목욕도 즐길 수 있습니다.”
- 예당 뜰의 경관이 아주 멋있다던데요.
“일제 때 조성한 270만평의 예당간척지는 봄이 되면 보리밭 물결이 환상입니다. 4km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가슴이 탁 트입니다. 방파제에 다다르면 은빛 바다가 펼쳐집니다. 보성바다는 은빛이에요. 바다에서 솟는 해돋이와 봉화산 너머로 지는 노을이 장관이죠.”
- 오봉산은 어떤 산입니까.“원효대사가 수행했던 곳으로 칼바위 동굴에는 원효대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등산로는 3시간여 걸립니다. 능선을 탈 때는 황금들판을, 좌측을 꺾어 돌면 바다 위를 걷는 듯 아름답습니다. 옛날 이무기가 살았다는 용굴과 용추폭포가 있습니다.”
강골마을 체험은 숙식과 보성 녹차 밭 구경은 기본이고 계절에 따라 바지락 구이, 팥죽 쑤어먹기, 대밭에 놓아먹인 닭백숙까지도 간식으로 등장한다. 겨울철에는 모닥불에 구워낸 굴구이와 삼겹살 삽구이가 별미다. 맛에 취하고 정에 취해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 더 눌러앉는 이가 많아 예약손님 체험일정에 차질을 빚는 일도 다반사다. 어떤 때는 이 위원장의 어머님 방까지 체험객에게 빼앗기는 일도 있다고 한다.
체험객이 꺼리를 만들어 오면 이후의 일은 이 위원장이 대부분 해결한다. 동네 아무 밭이나 들어가 토마토서리를 하다 들켜도 만사 오케이, 줄행랑을 치거나 여의치 않으면 이 위원장을 찾으면 된다. 두레박으로 우물물 퍼 올리기, 마당에 기어 다니는 두꺼비, 제비 둥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의 농촌에 대한 애정은 끝이 없다. 건강이 안 좋아 18년 전부터 키우기 시작한 사슴은 이제 건강은 덤이고 쏠쏠한 수입까지 생긴다.
가장 한국적인 최고의 밥상
정원에는 취나물 하얀 꽃이 눈부시다. 어둠이 깃든 강골마을에 산새소리 가득하다. 세월도 멈춰선 곳, 강골마을에 고요가 찾아든다. 부엌에서 강골아줌마는 밥상을 차려내느라 분주하다.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다 어느새 마을 텃밭으로 달려가 풋고추를 따온다.
밥상이 차려졌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아직 덜 올라갔습니다.”라며 기다리란다.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 겁니다.” 이 위원장이 전어구이를 보며 한마디 한다. “세팅이 영 이상하네”라고 말하는 강골아줌마는 카메라가 여간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예당 쌀로 지은 김이 서린 하얀 쌀밥, 70년대 양은그릇에 담긴 시래기된장국, 살짝 데쳐서 조선간장에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쳐내 쌉쌀하고 부드러운 고춧잎, 묵은지, 콩잎장아찌 등의 반찬은 천연조미료만을 사용해 자극적이지 않고 은근하고 깊은 맛이 스며있다. 손님상에 비해 가짓수가 덜 나왔다는 밥상이지만 진짜 우리 맛이 다 담겨있다. 가장 한국적인 최고의 맛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큐, 인빌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