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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관련된 발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대통합민주신당 이해찬 예비후보의 "이명박은 한 방이면 날아간다"인 듯합니다.

이 '한 방'이 이명박 후보를 휘감고 있는 숱한 비리의혹이라면 판단이 약간 잘못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명박 후보는 숱한 비리의혹에 감싸여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벌써 의혹만으로도 후보를 사퇴해야 할 일들 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함수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개혁'이라는 단어 자체에 질려버린 경향이 있다는 거죠. 한마디로 "'개혁'을 외치던 사람들한테 정권 맡겨놨더니 먹고살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그래서 대권주자로 부각된 것입니다. 평사원으로부터 시작해 현대건설 회장까지 역임했다는 입지전적인 경력, 서울시장을 역임하면서 '대중교통체제 개편'이나 '청계천 복구' 등의 눈에 확 띌만한 일들을 하면서 "부패했어도 일은 좀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이 의외로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유명한 'BBK' 사건의 주역이자 일부에서는 '이명박의 저승사자'로 통하는 김경준이 미국 법원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면서 법적 절차에 의해 귀국하게 됐습니다. 이명박 후보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BBK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김경준 역시 "BBK의 실소유주는 '엠비 리(이명박)'이며, 나는 하수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경준의 귀국으로 이명박 후보는 다시 비리의혹과 함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후보에게 실제로 '김경준 귀국'이 대단히 위험한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경부대운하', 정말 '한국판 뉴딜정책'일까

이명박 후보의 '경부대운하 공약'은 실질적으로 '한국판 뉴딜정책'을 표방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한 역사를 참고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이명박 후보의 경기부양책과 전혀 다릅니다. 이명박 후보가 이야기하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대기업 규제 완화' 등은 전형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에 따른 조치입니다.

'뉴딜정책'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수정을 하였던 점으로 미국사상 획기적 의의"를 가진다고 분명히 정의돼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테네시강 지역의 발전과 치수관개용 다목적댐 건설)를 통해 종합 지역 개발을 실행하려는 전략'을 참고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명박 후보처럼 '노동시장 유연화'와 '대기업 규제 완화'가 아니라 '뉴딜정책'의 또다른 전략으로서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최저임금과 최고노동시간 규정을 약속해 안정된 고용과 임금을 확보"하려는 '전국 산업부흥법'을 선택했습니다. 참고하려면 이런 것까지 참고했어야 합니다.

'경부대운하'로 당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용직'이 아니라 안정적인 정규직입니다. '경부대운하' 공사가 완공되면, 그때도 '수십만의 일자리'를 약속할 수 있을까요?

강조합니다만, 이명박 후보가 주장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대기업 규제 완화'는 전형적인 자유주의 경제학 논리이며, 신자유주의의 핵심 근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뉴딜정책'은 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수정을 시도한 정책이었습니다.

게다가 '경부대운하'와 같은 정부 주도의 대형공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헨리 해즐릿의 '정부예산낭비가'라는 독설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주의 경제학이 제일 싫어하는 방책이죠. 이명박 후보, 자신이 따르고 있는 경제학 포지션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이명박, 왜 '금융'에 의욕을 보였을까

이명박 후보의 발자취에는 '금융'에 대한 도전이 꾸준히 엿보였습니다.
▲ 'BBK 창업'을 스스로 이야기했던 중앙일보 인터뷰 이명박 후보의 발자취에는 '금융'에 대한 도전이 꾸준히 엿보였습니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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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경부대운하' 공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명박 후보에게 집중되는 비난은 "21세기 대명천지에 토건중심 경기부양책으로 근본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경부대운하 공약'이나 '현대건설 CEO 경력' 등의 이명박 후보가 내거는 상품성은 확실히 그런 이야기를 눈여겨볼만한 여지를 남깁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세계화', 김대중 전 대통령의 'IMF 처방책'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감을 잡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토건 중심 경기부양책'으로 총체적인 양극화 심화 등과 같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식은 이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도 과거에는 이 맥락을 제대로 잡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경제정책 이후로 부각된 키워드는 '금융 자본'입니다.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액에 따라 주식시장이 흔들리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됐고,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대결,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같은 일을 보신 분이라면 그 키워드의 중대함을 분명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2000년 10월 15일 <동아일보> 보도처럼 이명박 후보는 "한국금융시장이 외국인의 텃밭이 돼 버렸다"면서 김경준에 대한 극찬과 함께 일본·대만 자본시장 진출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습니다.

"김사장이 지난해 BBK 설립 이후 한국증시의 주가가 60% 빠질 때 아비트리지(차익) 거래로 28.8%의 수익률을 냈다"면서 김경준의 어깨를 토닥거리기까지 했던 것,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기억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김경준의 '주가조작', 그리고 김경준의 "나는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주장과 함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름대로 의욕과 야심을 드러냈지만, '실패'로 끝난 게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이 '실패'는 그의 서울시장 당선과 함께 묻혀졌습니다.

이명박, AIG에 '당한 것'일까

"그동안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럼에도 공공부문이 직접 나서서 투자를 유치했던 사례는 손에 꼽을만큼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단일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AIG로부터 14억 달러 상당의 직접 투자를 유치한 사례는 보기 드문 쾌거다.

AIG그룹은 보험 그룹으로서는 시티그룹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거대 기업이다. 이런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서울시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기업 마인드에 있었다.

나는 시장에 부임하면서 서울시를 국제 금융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나 혼자만 외친 것이 아니라 정부나 이전 서울시 정부에서도 밝힌 바 있는 일종의 단골 공약이었다. 그럼에도 가시적으로 나오는 성과는 드물었던게 사실이다."
- 이명박 자서전 <온몸으로 부딪혀라> 237쪽 일부

'실패'에도 불구하고 '금융'에 대한 미련은 서울시장 도전과 당선 이후에도 명확하게 남아있던 것 같습니다. "서울을 국제 금융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도 그렇죠.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서는 "주변에서도 '이명박이 결심했다니 뭔가 작품을 낼 것'이라며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그 보도에서 이명박 후보는 스스로를 '디지털사고 소유자'라면서, "누군가가 전자우편을 하루에 얼마나 쓰느냐는 질문으로 자신을 아날로그형 기업인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이야기까지 했죠.

'디지털시대'에서 '돈'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그 맥은 짚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비트리지 거래의 귀재'로 통하던 김경준 영입으로써 승부를 보려고 한 거죠.

'김경준의 주가조작'으로 쓴맛을 본 뒤로는 서울시장 당선 이후 'AIG 유치'를 통해 그것을 극복하려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어이없는 의혹이 여기저기서 보도돼 이명박 후보의 '비리의혹 리스트'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한마디로 AIG를 유치하면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입니다. "AIG 아시아본부를 서울로 이전한다"는 말만 믿고 99년의 초장기 토지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AIG는 이전 계획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건물 소유 기간을 당초 알려진 '20년'이 아닌 '10년'으로 체결해 전매를 쉽게 하면서 임대료 계약도 파격적으로 체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완공시점'이 아닌 '계약시점'을 기산점으로 설정함으로써 2015년이 지나면 AIG는 전매 역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AIG 측은 2015년에 전매를 통해 1조원의 수익을 기대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AIG 측은 부동산 차익거래 수단으로 생각한 거죠. 그래서 일각에서는 '제2의 론스타 사건'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합니다.

서울시는 이 과정에서 AIG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의혹이 있다는 KBS의 8월 21일자 보도도 있었고, 이명박 후보의 대선출마 선언에 맞춰 공사를 서두르려 했다는 의혹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의혹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명박 후보는 이 'AIG 유치'를 과거에 '실패'로 끝난 적이 있는 '금융사업 도전'과 '대권 도전 행보'를 위해 동시에 이용하려 했으며, 그를 위해 특혜까지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AIG 측은 이를 사실상 부동산 차익거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실패'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명박의 경제'는 통할 수 있을까

21세기 한국경제의 화두는 '신자유주의'입니다. 계층화와 갈등을 시도하며 금융자본의 기업·노동자 약탈이 일상적으로 자리 잡을 '신자유주의'로부터 사회의 부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화두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경부대운하 공약'은 이명박 후보가 기본적인 경제 포지션조차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BBK'와 'AIG' 등의 키워드는 21세기 경제를 휘어잡는 '금융자본'에 대한 대처 방식을 우려케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는 본인 스스로 '단순 피해자'임을 주장하고 있다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의 논평 "이 후보의 말처럼 자신이 단순피해자라면 '경제대통령'감이라는 주장은 허구일 수밖에 없고"라는 부분이 충분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경준', 'BBK', 'AIG' 등의 키워드는 이러나 저러나 그에게는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며, "㈜다스 주식과 관련해, '김재정', '이상은' 양자를 통해 차명보유하면서 '백지신탁'(공직자가 재산 관리·처분을 제3자에게 맡기는 것) 규정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과거 박근혜 캠프 측의 주장이 검찰 수사에 의해 사실로 드러나면, 대권 도전에 앞서 '범법자'가 될 수 있는 위험이 닥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경준'의 귀국은 오히려 공적인 차원에서 그의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과 자격, 그의 경제적 발자취를 탐색할 수 있는 확실한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당파적 차원의 접근에 앞서 21세기 경제적 흐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인지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경준'과 'AIG'는 그런 의미에서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김경준, #BBK, #A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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