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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오는 날


 빗줄기 굵은 어느 날입니다. 도서관 걸상에 앉아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깐이나마 비나들이 떠나 볼까 싶어 가방을 주섬주섬 챙깁니다. 밤에 마실을 나가면 밤마실이나 밤나들이요, 비오는 날 마실을 나가면 비마실이나 비나들이가 될까요.

 

 전철을 타고 서울 나들이를 하기로 합니다. 동인천역으로 갑니다. 걷는 계단이 없고 자동계단만 있는 자리. 남녀 두 짝꿍이 자동계단을 떡하니 가로막고 서 있습니다. 걸어서 올라갈 사람은 당신들 뒤에 서 있어야 하나? 바쁜 길도 아니라 말없이 그의 뒤에 섭니다. 비오는 날이라 모두 우산을 들고 있습니다만, 전철을 타면서 우산을 잘 접어서 옆사람 다리에 안 닿도록 마음쓰는 이가 그다지 안 많습니다.

 

 문득, 여기에서는 저 사람들이 옆사람한테 못되게 굴고 있다고 할 테지만, 바로 내가 저이들처럼 다른 자리에서 누군가한테 못되게 굴고 있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 저이들처럼 나대거나 돌아칠 때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

 


 〈2〉 바보 사진


 종로3가에서 전철을 내립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은 뒤 걷습니다. 혜화동 쪽으로. 빗줄기가 무섭게 굵어집니다. 우산을 받고 있어도 가방에는 빗물이 다 튀다못해 아예 젖어들 듯하군요. 구름다리 밑에서 잠깐 걸음을 멎고 다리쉼을 하며 두두두둑 땅을 내리치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사진기를 꺼내 두 장 찍습니다. 차라리 신을 벗고 걸어도 좋을까? 신으나 마나이기도 하지만, 흐르는 빗물을 느끼며 걸어도 좋겠지.

 

 성균관대로 접어들 즈음 신을 다시 신고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 들릅니다. 그러고는 헌책방 〈혜성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혜성〉 아저씨 몸이 안 좋다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는데, 오늘은 어떠시려나. 몸이 안 좋은 날은 책방문을 닫아걸고 계시는데, 오늘은 몸이 좀 나아지셔서 문을 열어놓고 계시려나.

 

 책방 앞 백 미터쯤 다가왔을 즈음, 〈혜성서점〉 열린 문이 보입니다. 아, 열었구나. 얼굴에 슬그머니 웃음이 피어나고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우산은 접어 문 옆에 기대 놓고 들어갑니다. “어, 왔어? 오랜만이네?” 〈혜성〉 아저씨 목소리를 들으니, 걸어오며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스르르 풀립니다. “몸은 괜찮으셔요?” “응, 괜찮아.”

 

 마음을 놓으며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사진기를 꺼냅니다. 책방 둘레 모습과 앞모습을 신나게 찍습니다. 그런데 빛깔사진을 찍는 사진기가 이상합니다. 필름이 안 감긴다는 느낌. 뭐지? 설마? …… 아이고, 필름을 안 넣고 신나게 단추만 눌러대고 있었습니다. 윽.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는가?

 

 가방에서 필름을 꺼내 끼웁니다. 아까 찍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찍습니다. 조금 앞서는 〈혜성〉 아저씨 굵직하고 시커먼 손도 찍었는데, 필름 없이 헛방만 날렸네요. 다시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생각하니 속에서 눈물이 줄줄줄. 어쩌겠습니까. ‘아저씨, 아까는 필름 없이 헛방이었는데, 손을 다시 보여주실 수 있어요?’ 하고 부탁드릴 수 없는 노릇. 일할 때 옆에서 자연스럽게 찍는 사진이 아니라, 억지로 모양을 만들어서 찍는 사진은 달갑지 않으니까.

 

책 구경을 합니다. 먼저, 두툼한 책 <멜빈 레이더,버트람 제섭/김광명 옮김-예술과 인간가치>(이론과실천,1987)가 보입니다. 이 두툼한 책을 골라도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무 데나 짚고 읽어 보기로 합니다.

 

짠 하고 펼친 곳은 122쪽. 죽 읽다가 “우리가 결코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은 미적 취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이다”라는 말에서 눈을 멈춥니다. 조금 어려운 말이 섞였는데, 어느 한 가지에 눈이 멀어 오로지 그 한 가지만 좇는 일이라든지, 자기가 좋아하거나 즐기는 그 한 가지만 가장 대단하다고 여긴다든지, 자기가 몸과 마음을 바쳐서 따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따라야 하는 듯 이야기하는 일은 둘레사람들을 고달프게 한다는 소리와 이어질까요.

 


.. 모든 사람에게는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다 좋아할 수는 없다. 인간의 기질은 제각기 달라서 다른 작품들을 각각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오페라가 최고라는 말을 들어 왔지만, 그것이 최고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권태로운 오페라 관객은 자기가 훌륭한 오페라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  〈121쪽〉


 그러고 보면, 좋다고 할 만한 책을 알아보지 못하는 분들은, 아직 그분들 눈에 좋다고 할 만한 책이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언젠가는 알아보겠지요. 언젠가는 알아본 책을 기꺼이 사들여 읽고 삭이고 새기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우르술라 하우케/김현성 옮김-아빠, 찰리가 그러는데요>(고려원미디어,1991)라는 책이 보입니다. 몇 해 앞서 다른 헌책방에서 산 책입니다. 제가 가진 책은 많이 낡고 닳았습니다. 오늘 만난 책은 출판사에서 누군가한테 ‘드린’ 책입니다. 이 책을 받은 분은 한 쪽도 안 넘겼는지 아주 깨끗하고 빳빳합니다. 지난 2002년과 2003년, ‘해나무’ 출판사에서 이 책을 두 권으로 다시 냈습니다.

 

해나무 판은 독일에서 낸 책을 거의 그대로 낸 듯합니다. 고려원미디어 판은 긴 줄거리에서 몇 가지만 추려서 낸 듯하고요. 겉그림을 보면 해나무 판은 굵은 줄 몇 가닥으로 아이인지 어른인지 알 수 없는 사람 얼굴을 반만 그리고 책이름 글씨를 삐뚤빼뚤 넣습니다.

 

고려원미디어 판은 끌신을 한손에 든 아빠가 이불 뒤집어쓰고 몸통을 돌리며 잠자리에 들고 있는데, 아이가 웃는 얼굴로 아빠를 어루만지며 잠을 깨우고 말을 거는 그림입니다. 이야기로는 해나무 판이 더 나을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겉그림은 고려원미디어 것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 [아들] 하지만, 아빠,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면 아빤 왜 범죄영화를 보세요?
[아버지] ‘배운다’는 것과 ‘흉내낸다’는 것을 혼동하는 것 같구나. 물론 나는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을 모두 흉내낼 생각은 없다.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아들] 그런 영화에서 배우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버지] 글쎄, 뭐 배울 만한 건 없겠지. 범죄영화는 그저 잠시 긴장을 풀고 머리를 쉬기 위해서 보는 거지.
[아들] 범죄영화를 보면 긴장이 풀려요?
[아버지] 그래.
[아들] 사람을 죽이는 걸 보면 아빤 긴장이 풀려요?
……
[아들] 그런데 찰리가 그러는데, 걔네 아빠가 그러셨대는데, 범죄영화보다는 애정영화가 젊은 애들한테는 더 낫다고 그러셨대요.
[아버지] 저런저런, 왜 그렇대니?
[아들] 왜냐하면, 그런 영화에 나오는 것은, 결국 애들이 언젠가는 다 알게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래요 ..  〈64∼65쪽〉


 <현담, 법여-길에 나가 길을 묻는다>(해인사출판부,1992)라는 시모음을 봅니다. 현담과 법여라는 스님 두 분이 쓴 시를 모은 책입니다. 스님들이 쓴 시라. 음, 어떨까.


.. 어쩌다가 그렇게 긴 나날을 헤매이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결코 다시 찾을 길 없는 먼 시간의 자리를 찾아 그토록 오랜 나날을 떠도는 몸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디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고 머물 곳 없던 그의 육신이기보다는 싸늘한 얼음의 혼백이었던 몸을 거두시어 오늘 이토록 뜨거운 노래를 부르게 하셨으니 한없이 솟구치는 불꽃을 피우게 하셨으니 ..  〈현담-영산홍에 대하여(선암사에서)〉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수도 생활과 도 닦는 곳 이야기와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중이나 수녀나 목사나 신부가 드문 우리 세상이라고. 머리로만 굴리는 생각, 자기가 섬기는 하느님과 부처님 이야기를 생각으로만 이야기하는 우리 세상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기 삶을 말하지 않거나 자기 둘레 사람들 삶을 느끼지 못하면서 쓰는 글은, 그저 머나먼 하늘나라 이야기일 뿐이겠구나 싶더군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겠구나 싶더군요. 삶이 없이 움직이거나 오가는 생각이 얼마나 깊거나 너를 수 있을까요. 얼마나 자기 몸속 깊숙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요.

 

 <길에 나가 길을 묻는다>에 실린 짤막짤막한 시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두 스님 삶이 배이지 않습니다. 절에서 무엇을 하는지, 당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지, 당신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배를 채우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하루하루 부대끼는 사람과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는어떠한지가 조금도 나오지 않습니다.

 

 <버어튼/정봉화 옮김-아라비언 나이트>(정음사,1965) 1권과 2권과 4권, 이렇게 세 권을 집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는 책인데, 짝이 안 맞는다고 퍽 눅게 주십니다. 껍데기는 많이 낡았어도 속알맹이는 아주 깨끗합니다. 저 혼자 하는 생각입니다만, 먼저 임자 되는 분께서 책을 거의 안 넘겨 보셨던 듯.


 〈3〉 책읽기와 책사기


 <안치운-옛길>(학고재,1999)이라는 책을 고릅니다. 처음 나왔을 때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내려놓았던 일이 떠오릅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지금, 또다시 망설입니다. 음, 어떻게 할까. 지금이라도 골라서 읽어 볼까? 책을 만지작 만지작. 그래, 처음 나온 지 여덟 해가 지난 이때 사지 않으면 나중에는 다시 볼 수 없을지 몰라.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라도 내 마음을 울리거나 움직인다면, 오늘 이 책 하나 만난 기쁨과 보람도 넉넉하지 않겠어?


.. 투덕투덕 지은 이 집은 사람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게 한다. 산속에서 사는 이규만 씨를 그렇게 만났다. 그의 집은 흙과 소나무로 지어진 지 100년이 넘었지만 조촐하기 이를 데 없다. 집이 쓰러져가기 때문에 매년 살잡아야 했다. 오래된 집은 사는 이의 옷과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있다 ..  〈127쪽〉


 한 사람이 좋고, 밥 한 그릇이 좋습니다. 노래 한 대목이 좋고, 책 한 권이 좋습니다. 자전거를 타며 지나가는 골목길이 좋으며, 사람들 북적북적한 번화거리도 나쁘지 않겠으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조용히 앉아 있는 골목집이 한결 반갑습니다. 안치운 님 글을 읽으니 골목집과 골목사람과 골목길이 떠오르네요.


.. 지금 생각하면, 오지 산골이 주거지로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태도야말로 우리의 역사책이 강요한 삶의 표상일 터이다. 강요된 표상은 삶은 이러해야 한다는 단조로움과 왜곡을 낳는다 ..  〈189쪽〉

 


 헌책방을 함께 찾아간 이가 말합니다. “여기에서는 책을 고르기보다는 하나씩 사서 읽고 싶어요.” 제가 말합니다. “돈 많아요? 돈 많이 벌어야겠네. 읽고픈 책 다 사서 보려면.”

 

 책값을 셈하고 이 책 저 책 가방에 넣는데 빈자리가 안 보이는군요. 참 많이 골랐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고른 책이 제가 읽을 책 모두가 아닐 테지요. 내일 만날 책, 모레 만날 책, 글피 만날 책은 지금보다 더 많을 테지요. 앞으로 또 어떤 책이 제 가방 가득 꾸역꾸역 들어찰까요.

덧붙이는 글 | - 서울 혜화동 혜성서점 / 02) 741-0143


태그:#헌책방, #혜성서점, #혜화동,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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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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