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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이면 전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 올해도 역시 각 분야의 수상자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2007 노벨 의학상은 미국의 마리오 카페키(70)와 올리버 스미시스(82), 영국의 마틴 J 에번스(66) 등 3명에게 공동의 영광을 선사했다.

 

미국은 노벨 의학상의 '단골 수상국'이지만 올해는 여느 때보다 더 기뻐하고 있다. 바로 처절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노벨상의 영광을 이뤄낸 유타대학 카페키 박사의 노력과 집념 때문이다. 카페키의 수상이 확정되자 현지 주요 언론들은 앞 다퉈 그의 인생역정을 소개하고 나섰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사회의 관심사가 되어왔던 카페키의 어린 시절은 누가 봐도 '슬픔과 좌절' 그 자체였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이탈리아 공군장교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카페키에게 시련을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세계 2차 대전이었다. 아버지는 전장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는 나치즘에 반대하는 선전물을 돌렸다는 이유로 독일군에게 끌려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다.

 

이를 미리 예감했던 카페키의 어머니는 아들을 잘 보살펴달라며 절친한 이웃에게 모든 재산을 맡겼다. 그러나 그 이웃은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카페키는 거리로 나앉게 됐다.

 

모든 것을 잃은 카페키는 어린 나이에 거리와 고아원을 전전했다. 노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쓰레기통을 뒤져 나온 음식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수년간 거리를 헤매면서 영양실조로 쓰러진 적도 부지기수였다.

 

전쟁이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된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나섰고 결국 1년간의 노력 끝에 어렵사리 카페키가 영양실조로 입원해있던 병원에서 아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헤어진 지 6년 만에 이뤄진 상봉이었다.

 

카페키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외삼촌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은 카페키에게 전혀 새로운 인생을 선사했다. 굶어 죽을 걱정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학교를 다니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카페키 역시 "미국은 나에게 기회의 땅이었다"고 말하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결국 평생을 연구에 매진한 끝에 카페키는 유전자 연구 부문에서 최고의 석학이 되었고 노벨 의학상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그는 '유전자 적중(gene targeting)'이라는 연구로 각 유전자들의 실제 기능을 밝혀내는 공을 세웠다. 이처럼 유전자들의 기능이 모두 밝혀지면 유전자적 이상으로 나타나는 각종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카페키의 연구가 항상 주목을 받아왔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80년 그는 미국 국립보건원에 연구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카페키는 좌절하지 않고 더욱 연구에 몰두했고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하자 국립보건원은 4년 뒤 거절 결정을 철회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카페키는 노벨상 수상이 확정된 뒤 언론들과 한 인터뷰에서 "나는 노벨상을 위해 연구하지 않았다"며 "단지 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에 열심히 노력했는데 노벨상을 타게 되어 더욱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태그:#카페키,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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