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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삭제’, ‘입력’, ‘삽입’, ‘검색’, ‘작성일’, ‘작성자’ ‘조회’ ……. 이런 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는 한자말로 된 낱말이었어요.
▲ 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는 낱말 ‘수정’, ‘삭제’, ‘입력’, ‘삽입’, ‘검색’, ‘작성일’, ‘작성자’ ‘조회’ ……. 이런 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는 한자말로 된 낱말이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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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가 561돌을 맞이하는 한글날이었지요. ‘한글날’ 하면 저는 무엇보다 ‘이오덕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늘 말씀하셨던 ‘우리 말’이 떠오른답니다. 이런 생각을 한 것도 몇 해 되지 않았어요. 이제 겨우 세 해밖에 되지 않았네요. 그 앞서는 ‘한글’, 또는 ‘우리 말’ 이라고 하면 너끈히 잘 쓰고 있고, 또 '늘 하는 말인데 뭐 새삼스럽게…' 하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시인’으로 등단하던 해! 그러니까 2004년 4월이네요. 그 무렵, 늘 내 시와 글을 가장 먼저 읽어주며 서로 생각을 나누었던 남편이 읽던 책이 있었어요. 바로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우리문장쓰기>라는 책이었지요.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남편이 나한테도 꼭 읽어보라고 하면서 건네주었어요.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어요.

“시를 쓰기 전에 이 책부터 읽어야 돼! 글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단 말이야!”

보통 때에도 자기가 재미나게 읽은 책은 꼭 나한테도 읽어보라고 했던 사람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읽었는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듯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배웠고, 또 배운 대로 알고 써왔던 말과 글이 참 잘못된 게 많았구나! 하는 거였지요.

‘우리 말’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써왔던 말이 거의 한자말이거나 ‘일본말법’으로 된 말이 매우 많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차츰 어려서부터 써왔던 ‘우리 말’이 사라지고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요. 그때부터 얼마 동안은 시 쓰는 일을 잠깐 제쳐두고 이오덕 선생님이 쓴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 뒤부터 우리 삶이 바뀌었고, ‘우리 말’에 마음을 쓰며 살게 되었지요. 또 지금까지 써왔던 ‘시’를 잠깐 접어두고 ‘우리 말’을 살려 쓰는 글쓰기를 배우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우리 말 살려쓰기>(아리랑나라) 책 뒤쪽에 있는 ‘바로잡은 우리 낱말모음’을 손수 타자를 치면서 익혀나갔어요. 이일을 하면서 ‘아 그렇지! 이런 말도 있었지!’ 하면서 무릎을 친 적도 여러 번 있었답니다. 이때 만든 '바로잡은 낱말모음표'를 한글파일과 엑셀파일로 따로 넣었으니, 내려받아서 꼭 한 번 읽어보세요.

'로그인'과 '로그아웃'보다는 '들어가기' '나가기'로 써도 되지요. 또 '입력'은 '쓰기'로, '수정'이나 '삭제'는 '고치기'와 '지우기'로 너끈히 바꾸어 쓸 수 있지요.
▲ 들어가기와 나가기 '로그인'과 '로그아웃'보다는 '들어가기' '나가기'로 써도 되지요. 또 '입력'은 '쓰기'로, '수정'이나 '삭제'는 '고치기'와 '지우기'로 너끈히 바꾸어 쓸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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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에서 많이 보는 낱말

이렇게 ‘우리 말’에 마음 쓰면서, 살면서 입에 밴 한자말이나 일본말투로 된 말을 하나하나 고쳐나갔지요. 그러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하나 있답니다. 오랫동안 누리집(홈페이지)을 꾸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봐왔던 게 하나하나 눈에 몹시 거슬렸답니다. 그건 바로 ‘수정’, ‘삭제’, ‘입력’, ‘삽입’, ‘검색’, ‘작성일’, ‘작성자’ ‘조회’……. 이런 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는 한자말로 된 낱말이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말은 이상하게도 우리 삶에서는 그다지 쓰지 않는 말이에요. 모두 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는 낱말이지요. 아마 게시판을 만드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고치기’, ‘지우기’, ‘쓰기’, ‘넣기’, ‘찾기’, ‘글쓴날’, ‘글쓴이’, ‘읽음’ 이렇게 제대로 살펴서 만들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듯해서 매우 안타까워요.

자, 우리가 살면서 말할 때는 잘 쓰지 않는 말인데, 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는 낱말을 모아볼게요.

[수정] 이 ‘수정’은  ‘고침’ 이나 ‘고치기’, ‘다듬기’ 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글을 쓰다가 잘못 쓰면 다시 고치는 거지 ‘수정’한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삭제] 이 ‘삭제’ 도 인터넷에서만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지움’, ‘지우기’입니다.

[입력] 이건 그냥 ‘쓰기’. ‘글쓰기’면 되지 않을까요?

[삽입] 이 낱말은 말 느낌도 좀 이상하지요? 그냥 ‘끼워넣기’, ‘맞춰넣기’ ‘그림넣기’, ‘파일넣기’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답변] ‘-변’보다는 ‘-글’ 로 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답 글’을 쓰지 ‘답 변’은 안 하거든요.

[검색] ‘찾기’ 로 해도 게시판 ‘품위’가 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작성자] 작성자 보다는 ‘글쓴이’ 가 낫지 않나요?

[작성일] 마찬가지로 ‘글쓴날’ 해도 너끈하게 알아 볼 수 있어요.

[조회] 게시판에서 말하는 ‘조회’는 다만 읽은 숫자를 나타냅니다. 그러면 ‘읽음’ 하면 될 겁니다.


위 몇 가지 낱말은 게시판에서 가장 많이 보는 글입니다. 게시판을 만드는 분이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말 아닐까 싶어요.

보다는 '고치기', '지우기', '옮김'이 훨씬 더 살갑고 좋지요. '익명으로 쓰기'도 '귓속말쓰기'로 바꿀 수 있어요.
▲ '수정' '삭제' '이동' 보다는 '고치기', '지우기', '옮김'이 훨씬 더 살갑고 좋지요. '익명으로 쓰기'도 '귓속말쓰기'로 바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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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누리집에도 '가입하기'가 꼭 있지요. 이 말도 '함께하기'로 바꿔 쓸 수 있답니다. 위 사진은 제 누리집에 식구로 들어올 때 '함께하기'를 누르면 보이는 거랍니다.
▲ 함께 하기 요즘은 누리집에도 '가입하기'가 꼭 있지요. 이 말도 '함께하기'로 바꿔 쓸 수 있답니다. 위 사진은 제 누리집에 식구로 들어올 때 '함께하기'를 누르면 보이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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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살가운 ‘우리 말’로 누리집 고치기

제 누리집에서 쓰는 차림표에요.
▲ 누리집 차림표 제 누리집에서 쓰는 차림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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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어렵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우리 손으로 고치기로 했어요. 아, 그러기에 앞서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테크노트’ 게시판 누리집에 가서 먼저 물었어요. 때마침 앞서보다 더욱 좋은 게시판을 새롭게 내놓는다고 하기에  새로 내놓을 거면 내친 김에 쉽고 살가운 ‘우리 말’로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무 말이 없는 채로 새 게시판이 나왔고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고치기로 했지요. 적어도 ‘우리 말’을 배우고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누리집에서 ‘삽입’이니 ‘삭제’니 하는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참 싫었지요.

그나마 남편이 누리집 만들기와 ‘포토샵’을 만질 줄 알고 있었기에 어렵지만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었지요. 단추마다 모두 아주 작은 그림으로 되어있어서 하나하나 바꾸는데, 꽤 오래 걸리더군요. 어쨌거나 그렇게 바꾸어서 제 자리에 끼워 넣으니, 내가 꾸리는 누리집에서만큼은 아주 쉽고 살가운 ‘우리 말’로 된 게시판이 만들어졌답니다.

한 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우리가 사람들한테 우리나라 말과 글을 살려서 쓰자고 하면, 덮어놓고 ‘국수주의’니, ‘한글우월주의’니 하는 이들을 많이 봤어요. 다른 나라에서조차 ‘우리 말’이 매우 훌륭하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 말’을 업신여기고 하찮게 보아요.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고 여겨요.

또 ‘한자말’이나 ‘미국말’을 쓰지 말고 ‘우리 말’을 쓰자고 하면, ‘모두 다 알아듣고 아무 불편 없이 잘 쓰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되물어요. 정말 그럴까요? 어린이나 시골할머니들도 모두 알아들을까요?

왜 그래야 하는지 가장 큰 까닭을 하나만 얘기할게요. 멀쩡하게 잘 써오던 ‘우리 말’, 어려서부터 들어왔고 어린아이나 시골 할머니들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이런 말들이 한자말이나 미국말에 밀려서 차츰 죽어간다는 거예요. 쉽고, 곱고, 살가운 우리 말이 다른 나라 말에 밀려서 자꾸만 죽어간다는 얘기이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를 옮기면서 글을 마무리 합니다.

'일한다' 처럼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써 온 말, 그러니까 일한다, 쉰다, 잠잔다, 먹는다, 걸어간다, …… 이런 말이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일한다' 라 하지 않고 '작업한다', '근로한다', '노동한다', '노작한다' 따위로 말하고, '쉰다' 고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고 하고, '잠잔다' 고 할 것을 '수면을 취한다' 고 하고, '먹는다' 는 '음식을 섭취한다' 가 되고, '걸어간다' 는 '보행한다' 고 한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 책 속에, 글 속에 빠져 버리면 그만 우리 말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말 살려쓰기 (셋)>(아리랑나라)
첨부파일
wooriMal.txt
wooriMal.xls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첨부파일] 이오덕 선생님이 쓴 책 '우리 말 살려쓰기' 에 있는 <바로잡은 낱말 모음>을 옮겨적은 것입니다.



태그:#우리 말, #이오덕, #게시판, #우리 말 살려쓰기,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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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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