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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소비주체로 떠오른 노인들.
 강력한 소비주체로 떠오른 노인들.
ⓒ 삼성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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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마음은 달라지는 게 없다. 아마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비록 비상식적인 일도 일어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수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세월이 변화하면서 부모도, 자식도 변화하는 것일까? TV 속에서 그려지는 부모와 자식 관계의 모습 혹은 설정을 보면 이제 헌신과 효의 모습보다 지극히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 그러한 대세를 반영하는 두 편의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물론 광고의 아이디어를 본다면 참 반짝 빛나는 아이디어와 내용으로 광고로서 역할은 만점이라 할 수 있다. 15초 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단서가 붙는 광고를 생각해 볼 때 두 편의 광고는 참 잘 만들어졌다.

바로 ‘삼성생명 프리덤 50플러스’ CF와 KTF 쇼(Show)의 ‘대한민국 보고서, 고향부모방문’ 편 CF가 그 주인공이다. 두 광고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현재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의 인생은 나의 것, 소비 주체로 우뚝!

이제껏 한국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했다. 이 단어 하나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었고, 부모의 무한한 사랑을 모두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편의 광고를 보면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라 외치는 듯하다.

삼성생명 광고는 딸의 결혼식 날 두 노부부가 후련하다는 듯 식장을 도망치듯 나와 스포츠카에 몸을 싣고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충격적인 일이다. 자식의 결혼식 날 자신들의 휴가를 즐기겠다고 떠난 부모.

보통 우리 결혼식을 떠올려 보자. 자식은 “잘 살겠다”고 말하며 부모의 은혜에 눈물을 흘리고,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은 찢어져 눈물을 훔치기 마련인데, 이게 웬말인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스포츠카를 타고 홀연히 떠나는 부모가 등장했다. 

또한 KTF 쇼 광고는 어떠한가? 머리가 하얗게 샌 두 노부부는 아들과의 화상통화에서 “우린 아무것도 필요없다”라고 말하지만 부모 뒷편으로 고장난 세탁기가 요동 치고, “연속극은 옆집 가서 본다”며 고장난 텔레비전을 힘차게 두들긴다.

그리고는 아들은 웃으면서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부모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전 광고에서 겨울철 쓸쓸한 부모의 모습이 그려지고 가슴 뭉클했던 광고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 두 광고는 사뭇 분위기부터 다르다. 우울한 노후는 없다. 자식을 결혼시키고 할 일 다 했다며 떠나는 부모나,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아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부모의 모습까지.

이들은 이전 부모의 헌신보다 자신들의 인생에 더욱 치중해 있다. 즉 이러한 변화는 노인들이 당당하게 소비의 주체로 우뚝 선 것으로 고령화 시대에 우울한 노후를 즐기지 말자라는 일종의 권유이자 압력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소비의 주체는 젊은층에 한정지어졌던 과거에 비해 노인층이 주체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며, 더는 자식들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은 옳지 못하다는 인식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준 점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런데 어쩐지 두 광고를 보면서 왜 이러한 세상이 되었을까, 하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헌신이란 단어에는 보상이란 단어가 붙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식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러한 헌신을 잘 알고 있는 자식들이 알아서 보답하는 것이었다.

요즘 세상은 자식들이 부모의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만 챙기는 세상이 된 것일까? 광고 속 노후의 삶은 유쾌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요즘 세상은 자식들이 부모의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만 챙기는 세상이 된 것일까? 광고 속 노후의 삶은 유쾌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 K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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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부모와 자식 관계 속의 씁쓸함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진 것일까? 부모는 자신들의 의무가 자식을 결혼시키는 것까지라고 생각하며 무거운 짐짝을 어깨에서 내려놓은 듯 스포츠카를 향해 달려가고, 내가 너를 키워줬으니 보답하라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이 모습.

우울하지 않고 가슴 뭉클하지 않는 대신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그래도 이전과 달리 부모 자식의 관계가 어딘가 사랑이 없어진 듯한 모습은 마냥 반길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전 광고를 생각해 보자.

보일러 광고에서 “부모님 보일러 한 대 놔드려야겠어요”라는 카피가 등장하면서 추운 겨울 이불 속에 들어가 호호 불던 부모의 모습이 등장한 광고였다. 이 광고는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카피는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다.

그 광고를 생각해 보면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이 참으로 능동적이었다. 헌데, 지금 KTF 쇼 광고를 보면 자식이 부모를 먼저 챙기기보다 부모가 자식에게 요구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효의 개념도 많이 사라졌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바빠 부모를 등한시하고, 부모도 아쉬운 소리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두 광고는 노인들이 소비의 강력한 주체로 떠오르면서 고령화시대에 우울한 노후를 즐기지 말자라는 의미에서는 좋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두 광고는 씁쓸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과거와는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보살피는 일을 의무로 생각하고, 아쉬운 소리를 하며, 자식은 부모를 챙기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비약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헌신과 사랑, 효가 있던 과거가 문득 그리워지는 날이 아닐 수 없다.


태그:#광고, #부모,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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