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꼭 3년이 걸렸다. 다시 라싸를 찾기까지. 2004년 여름 티베트를 다녀온 후로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그곳에 홀로 두고온 것처럼 늘 연연해했는데, 이제 다시 라싸를 가는 것이다. 지난 5월 티베트 여행을 계획한 후로 티베트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도를 넘어 내 생활의 대부분이 티베트 생각으로 채워지는 호된 열병을 앓았다.

무엇이 나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아갔을까? 가벼운 공기, 허공을 걷는 듯한 아찔한 현기증, 야크버터 냄새, 티벳탄(티베트 인)의 원초적 모습, 오체투지 그리고 온 들녘을 뒤덮은 샛노란 유채꽃, 아 그리고 티베트 고원의 그 하늘….  그 그리움의 실체를 찾아 길을 떠난다.

고도를 기다리며

8월의 티벳은 어디를 가든 유채꽃 천지이다.
▲ 유채꽃 8월의 티벳은 어디를 가든 유채꽃 천지이다.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육로로 티베트 고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네 갈개가 있다. 거리상으로도 짧고 비교적 도로 사정도 좋은 청장공로는 일반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이다. 청해성 꺼얼무에서 라싸에 이르는 이 길은 2006년 철도가 개통되면서 훨씬 편리해졌다.

또 한 갈래 길은 곤명에서 라싸에 이르는 길로 우리에게는 차마고도(茶馬古道)로 알려져 있는 전장공인데, 성도에서 들어가는 천장공로와 중간에서 만난다. 그 외 실크로드의 십자로라고 하는 서역 카스에서 들어가는 서역 공로가 있고, 마지막으로 사천성 성도에서 라싸에 이르는 천장공로가 있다.

이 길은 캉딩을 조금 지나 신뚜챠오에서 천장남로와 천장북로로 갈라지게 되는데, 북로에 비해 남로가 약 400km 정도 짧고 도로 사정도 좋아 일반인들은 이 길을 이용한다.

그러나 티베트의 아름다운 풍광과 색다른 오지 체험을 원하는 여행객들은 천장북로를 이용하여 라싸에 입성한다고 한다. 성도에서 라싸까지 2400km에 달하는 천장북로는 평균 해발고도가 4000m가 넘으니 그야말로 하늘에 걸린 길이다.

3년 전 내가 처음 티베트 여행을 꿈꾸었을 때 막연히 동경했던 길이 바로 이 천장공로, 그 중에서도 천장북로였다. 그러나 점점 여행이 구체화되자 천장북로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코스가 아님을 알았고 결국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택했던 길이 육로로서는 가장 편하다는 청장공로(靑藏公路)였다. 이번 여행에서 천장북로를 고집했던 이유도 나의 첫 티베트 여행에서 온갖 상상과 모험심과 꿈을 갖게 했지만 결국 그 길을 갈 수 없었던 미련이 나를 이 길로 이끈 것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그 미련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서는 그리움에 들떠 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에 살 수가 없었다

 청해성 꺼얼무에서 라싸까지 연결되는 청장 공로, 멀리 칭짱 철도가 보인다
▲ 청장공로 청해성 꺼얼무에서 라싸까지 연결되는 청장 공로, 멀리 칭짱 철도가 보인다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아직까지 외국인의 티베트 여행은 자유롭지 못하다. 티베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공안국에서 발행하는 티베트 입경허가서가 필요하다. 티베트를 그들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는 있지만 항상 분란의 여지를 안고 있기 때문에 특히 외국인의 티베트 여행은 유형, 무형의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천장공로로 티베트에 들어갈 경우에는 입경허가서 외에 외국인 여행허가서, 군사지역 통행허가서, 그리고 공안국 보안과에서 발행하는 또 하나의 허가서까지 무려 4종류의 서류를 구비해야 한다. 게다가 티벳탄 안내원까지 대동해야만 허가증이 나온다.

출국하기 전 성도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을 통해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지만 보안과에서 발행하는 허가증은 여권에 중국 입국 도장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미리 발행이 되지 않아 결국 출발이 하루 늦어지게 되었다. 성도에서 라싸까지는 7일을 예정했지만, 라싸에서 네팔까지의 일정을 생각하면 전체 18일 일정이 여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성도(成都)를 출발한 것은 오전 7시.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늘 하루 가야할 길이 멀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지프를 렌트하기까지 중국 여행사에서 하도 여러 번 약속을 어겨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도 출발 시간에 맞추어 차량을 대기시켜 놓았다.

길이 험난하다기에 차량의 상태도 은근히 신경쓰였는데 생각보다는 지프의 상태가 좋다. 오늘부터 우리와 여정을 같이 할 디키(dickey)라는 티베트 원주민 안내원은 어제 오후 라싸에서 비행기로 성도에 와 우리가 묵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함께 숙박을 했다.

인도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이 여성 안내원은 자그마한 키에 가무잡잡한 얼굴을 하고는 작은 일에도 웃음을 곧잘 짓는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티벳탄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차를 운전할 기사는 3명 모두 한족들이다. 내가 탄 1호차의 기사는 천장공로만도 50회를 왕복한 베테랑 기사라고 한다. 다소 마음이 놓인다. 한족 기사에 티벳탄 안내원 그리고 낯선 이방인의 7일간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12시 쯤 드디어 얼량산(二良山)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이 터널을 통과하면 행정구역상 깐쯔주(甘孜州)에 접어드는 것이다. 사실상 천장공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성도를 출발한 지 5시간이 지났다. 도시 외곽을 벗어나자마자 부슬부슬 비를 뿌리기 시작하더니 얼량산 중턱을 기어오를 때쯤에는 산모롱이와 능선들이 희뿌연 안개로 뒤덮여 천지를 분간할 수 없다. 터널 입구에는 자전거 여행을 하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먼 길을 떠나기에 앞서 행장을 매만지고 있다.

이 터널을 통과하면 깐즈주로 접어들게 된다.
▲ 얼량산 터널 입구 이 터널을 통과하면 깐즈주로 접어들게 된다.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대장정에 얽힌 노정교

터널을 통과하고도 여행 책자에서 보았던 얼량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온데 간데 없고,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운해만이 우리 일행을 맞았다. 이런 운해를 헤치고 반시간 여를 달린 후 루딩(瀘定)마을에 도착했다. 이곳 루딩에서 점심을 먹을 참이다.

루딩은 캉딩(康定)보다는 규모가 작은 도시다. 우리나라의 소읍 정도의 규모인데 강을 끼고 시내가 형성되어 있어 민가와 상가들이 길게 일렬로 늘어선 모습이다. 강은 어제 내린  비로 흙탕물이 무서운 기세로 흐르고 있어 탕탕히 흐르는 강물 소리가 우리가 자리한 2층 식당에까지 쏴쏴거리며 들린다.

강의 이름이 따두허(大渡河)라고 한다. 대도하! 강의 이름만큼이나 물줄기도 세차다. 이 포효하는 강물 위로 시내에서 강 건너편 산기슭으로 쇠줄로 된 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이 다리가 유명한 노정교(瀘定橋)이다.

노정교는 모택동의 홍군대장정 시 한바탕 격전이 치러졌던 곳으로 홍군이 이 다리를 점령함으로써 전세가 홍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고 한다. 시내에는 노정교를 점령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하나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노정교마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비내리는 루딩 시가지의 모습
▲ 루딩시 비내리는 루딩 시가지의 모습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따두허(大渡河)의 세찬 물줄기 위로 쇠줄로 된 노정교가 놓여 있다.
▲ 노정교 따두허(大渡河)의 세찬 물줄기 위로 쇠줄로 된 노정교가 놓여 있다.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을 때도 여전히 가는 빗방울이 뿌리고 있다. 루딩을 벗어나 캉딩으로 가는 공로는 따두허와 나란히 달려간다. 아마 이 강을 계속 거슬러 올라야 할 모양이다.

얼량산 정상 2600m를 정점으로 해발 고도는 오히려 계속 낮아지고 있다. 루딩과 캉딩의 중간쯤에서 딴빠로 빠지는 갈래길이 나오고 강물도 그 곳에서 두 줄기로 나뉘어 흐른다. 캉딩 방향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아마 상류에서 흘러오는 탓인지 물줄기도 차츰 가늘어진다.

해발 고도가 1400m까지 떨어지는가 했더니 또다시 차는 첩첩산중 심산유곡 사이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해발 2500m까지 고도를 높이고서야 캉딩에 도착했다. 오늘 첫날의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않았다면 이곳 캉딩에서 천장공로상의 첫 1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어 캉딩은 차로 시내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조우를 끝내고 우리 일행은 해발 4298m의 절다산(折多山)고개를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팍팍한 여정을 줄이고 있다.

해발 400m가 넘는 절다산 고원의 초원
▲ 절다산 가는 길 해발 400m가 넘는 절다산 고원의 초원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해발 4298m의 절다산 정상, 해발을 표시한 표지석과 타르쵸
▲ 절다산 정상 해발 4298m의 절다산 정상, 해발을 표시한 표지석과 타르쵸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절다산(折多山) 정상에 이르렀을 때 일행의 대부분이 어찔한 현기증을 호소했다. 해발 4000m 이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행들이고 보니 고산증에 대한 두려움이 역력해 보인다.

경계석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치자 서둘러 차에 오른다. 정상에서 따오푸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이다. 이리 저리 쏠리며 흔들거리는 차안에서도 바깥에 눈을 뗄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융단, 그 가운데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야크가 있는 풍경은 아직 고산에 적응하지 못해 어찔한 현기증으로 고통받는 이방인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절다산을 거의 다 내려온 평지에서 3호차가 고장을 일으켰다. 벌써 저녁 7시가 넘은 시각. 빨리 차를 고치지 못한다면 따오푸에 한밤중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던가. 자주 차를 세울 수 없었던 일행들은 차를 수리하는 동안 공로 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왁자하게들 즐거운 수다들을 나눈다. 험한 길,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한 관록이 있는 기사들은 자동차 수리도 수준급이다. 오히려 우리가 잠깐의 휴식을 아쉬워 할 만큼 빨리 수리를 마쳤다.

그러나 일행이 따오푸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어둠이 깔려 있었다. 

따오푸로 가는 공로상에서 차가 고장을 일으켰다.
▲ 따오푸 가는 길 따오푸로 가는 공로상에서 차가 고장을 일으켰다.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따오푸 시가지의 전경
▲ 따오푸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따오푸 시가지의 전경
ⓒ 최기영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글은 2007년 7월 19일부터 8월 7일까지 19박 20일 동안 전교조 인천지부 문화 답사 동호회 소속 교사 11명이 중국 사천성 성도에서 천장북로(차마고도)로 라싸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우정공로를 통해 네팔까지 답사한 기록 중 천장북로-라싸까지 7일간의 기록입니다.



태그:#티벳 여행, #천장북로, #라싸가는 길, #천장 공로, #티벳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