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S다이어리'는 시각장애인기관에서 일하는 S(김수현)의 이야기다. 시각장애인 동료와 함께 일하고 시각장애인을 취재하면서 겪게 되는 토막 이야기들을 통해 S가 시각장애인에 대해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S의 이야기가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기자 주

 

어느 날 아침, 지하에서 조회를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오던 S는 ‘쿵’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Y가 회의실 입구 옆에 있는 책꽂이에 부딪힌 모양이다. 꽤 세게 부딪힌 것 같은데 Y는 아주 태연하게 다시 입구를 찾아 걸어 나왔다.

 

시각장애인 동료 J와 Y를 보면 항상 길을 참 잘 찾곤 해서 눈이 보이는 사람과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던 S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Y가 입구의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고 문 옆에 부딪힌 것이다. 태연하게 대처하는 Y의 모습에서 S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이런 일이 종종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S는 시각장애인 동료와 함께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시각장애로 인해 그들이 겪게 되는 불편들을 오히려 잊고 지낸 게 아닌가 싶었다. S는 동료 I에게 Y나 J가 혹시 그런 불편에 닥친 경우를 본 적이 있느냐 물었다. I는 Y와 함께 길을 가다가 경험했던 얘기를 해주었다.


Y는 안내견 L과 함께 길을 가던 중 인도 위에 세워진 자동차 앞에 멈춰 섰다. 인도를 차지하고 서 있는 자동차 탓에 가로수와 자동차 사이로 한사람이 겨우 지날만한 좁은 길만 남아있었고, 안내견과 나란히 길을 가던 Y는 세워져 있는 차를 더듬어 만져본 후에야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안내견을 앞세우고 조심스럽게 좁은 길을 빠져나온 Y는 “대체 누가 인도에 차를 세워놨어?”하며 씩씩댔단다.


이 외에도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하지 못한 환경 때문에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S가 모 시각장애인 모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떤 불편한 점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한 명 두 명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차라리 길가에 점자블록을 깔아 두지나 말지. 그것 때문에 도리어 위험해진다니까~.”


“지하철에서 점자블록 따라가는데 갑자기 벽에 막히는 거야. 공사 중이라 막아놓고 매표소 위치도 바뀌었는데, 아무 표시도 안 해놨더라고.”

“그 정도는 양호하지. 공사 중이라는 핑계라도 있잖아. 난 점자 블록 따라가다가 사거리 중간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니까. 점자 블록이 있어도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야 해.”


“남산 올라오는 길에 차량방지턱 있는 거 봤어요? 실컷 점자블록 깔아놓고 거기에 그런 기둥을 박아놓으면, 시각장애인들 거기 걸려 넘어지라는 얘기 밖에 더 되나?”

“물론 그런 거 전혀 없을 때에 비하면 사정이 많이 좋아지긴 했어. 엘리베이터에 점자도 많이 표시돼 있고, 점자블록 깔린 길도 많아졌고. 그런데, 기왕 돈 들여 하는 거 제대로 만들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거야.”


S는 돌아오는 길에 점자블록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상가를 따라 들쑥날쑥한 모양으로 박힌 점자블록 길을 따라 걷다보니 차량방지턱의 위험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깨어지고 부서진 점자블록들을 보면 ‘과연 이것들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항상 보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비장애인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도 시각장애인은 위험을 당할 수 있겠구나. 이런 위험에 대한 배려가 매우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 인도의 보도블록에 이처럼 점 또는 선 모양으로 돌출돼 있는 블록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각장애인에게 길의 방향과 계단 등의 장애물을 알려주는 점자블록이다. 시각장애인은 흰 지팡이로 점자블록을 읽으며 그것을 따라 길을 다닌다.

 

 


 

덧붙이는 글 | 한국점자도서관 소식지 월간 <빛이 머문 자리>에도 연재 중인 글입니다.


태그:#시각장애, #안내견, #점자블록, #한국점자도서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