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리알처럼 말간 하늘이 가슴에 안깁니다. 바람 한 점 없는 한낮의 고요, 따사로운 햇볕, 구불한 신작로 아래로 고독의 응어리가 밀려와 울음이 터질 것만 같고, 지향 없이 먼 길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가을하늘을 시샘이나 하듯 산국(山菊) 피어나 수런거리니 허전함이 한결 덜합니다. 묵정밭 언저리, 산모롱이, 개울가, 주인 없는 산소 옆, 보이느니 산국입니다. 산국은 향기만으로도 가을꽃 대표입니다. 가을이 오면 노란 순수로 만나자더니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찾아와 가슴을 파고듭니다. 노란색은 언제 보아도 어머니 뱃속처럼 따스하고 포근합니다.

산국이 피어나면 첫서리가 내릴 징조
 산국이 피어나면 첫서리가 내릴 징조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하늘 높아 별자리가 말똥거리고 산국 피어나면 서리가 내릴 징조입니다.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며칠 앞입니다. 서둘러 고구마를 캐고 들깨 잎을 따 갈무리를 합니다. 애호박은 얇게 썰어 햇살에 말리고 어린 고추는 실에 꿰어 매달아 놓습니다.

애기호박을 말려 겨울 양식으로
 애기호박을 말려 겨울 양식으로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볼이 빨갛게 물든 대추들을 장대로 모지락스레 두들겨 패 털어내자니 속이 아려옵니다. 긴 장대가 대추알을 내리칠 때마다 몸서리를 치며 후드득거립니다. 예부터 대추나무들은 아픈 맛을 봐야 다음해 더 주렁주렁 달린다니 조금만 참으라며 또 두들겨댑니다. 대추나무 우듬지에 까치밥으로 몇 알을 남겨 놓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바람이 불적마다 달랑대는 모습이 보기도 좋고 가슴이 넉넉해옵니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대추알
 까치밥으로 남겨둔 대추알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산국은 예부터 신령스런 꽃으로 ‘영초(靈草)’라 부릅니다. 봄에는 어린 순을 나물로, 여름엔 쌈으로, 가을엔 관상용 꽃으로, 겨울엔 뿌리로 차를 우려내 몸을 보양합니다. 또 산국 채, 주, 차를 만들어 마시면 무병장수에다 액을 예방하고, 감기, 두통, 어지러움, 안질에도 효험이 크다 합니다.

내 어머님은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 날 산국을 따 그늘에 말려 베갯속과 차를 만들었습니다. 나도 그 옛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노란 산국을 따 갈무리를 합니다. 긴 겨울 동안 감기 몸살과 두통이 심해 머리가 어지러우면 산국차로 열을 가라앉히고 산국베개로 뜨거운 머리를 다스려 개운하게 올 겨울을 마무리 했으면 합니다.

만개한 산국
 만개한 산국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가을 하늘은 점점 높아가고 산국 피어나 온 세상이 노랗습니다. 산국 한 다발을 꺾어다 화병에 꽂아놓고 진한 향기와 냄새를 맡아가며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산국 꽃 내움을 밤새워 담아내던 어머니의 정성과 따스한 손길을 찾아 먼 가을 여행을 떠나갑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북한강 이야기를 입력하시면 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산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