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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나는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가르치는 조수미씨, 지긋한 나이에도 마음은 늘 청춘인 김호부 선생님과 함께 경상남도 양산시 천성산(922m) 산행을 떠났다. 오전 9시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오전 10시 30분께 홍룡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원적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천성산(千聖山)은 양산시 웅상읍과 상북면, 하북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당나라에서 건너온 천 명의 승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였다는 원효대사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산이다.

 

요즘 사람들은 천성산이라 하면 아마 지율스님을 떠올릴 것이다.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숲길을 오르면서 천성산을 그토록 지키려 했던 지율스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1시간 30분 남짓 걸었을까, 차가 다니는 임도가 갑자기 나와서 당황했다. 그래도 한들한들 피어 있는 예쁜 코스모스꽃들에 끌려 불편한 심기를 털어 버렸다. 게다가 미리 알고는 갔지만 천성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것 또한 참 아쉬웠다. 화엄벌로 가는 길 군데군데 지뢰가 매설되었던 지역이라 위험하다고 적어 놓은 경고문에다 아예 철조망까지 둘러쳐져 있었다.

 

원효스님이 화엄경을 강설했다는 화엄벌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50분께. 평평하고 드넓은 그곳에서 가을 햇살 받은 은빛 억새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컵라면, 사과 등으로 허기를 좀 채웠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도 약간 곁들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우리는 천성산 제2봉으로 계속 갈까 생각하다 화엄늪 쪽 억새밭을 지나 홍룡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화엄늪은 화엄벌에 형성된 산지 습지로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높아 2002년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거기에는 앵초, 물매화, 잠자리난초, 흰제비난 등 다양한 습지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화엄벌의 하얀 억새밭에 은빛 가을이 누워 있었다. 바람결 따라 찰랑대며 찬란한 가을 햇살과 노닥거리는 그곳에 나도 누워 그저 달콤한 꿈에 빠져 들고 싶었다. 하얗게 빛나는 눈부신 가을이 더 오래 머물다 가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온 산에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들 늦가을을 몹시 기다리면서.

 

홍룡폭포를 볼 수 있는 홍룡사(虹龍寺,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 계속 이어졌다. 그 길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는 사람들과 몇 번이나 마주쳤다. 숲속의 야생동물들도 가을 열매를 먹어야 할텐데, 싹쓸이하는 듯한 그들이 무섭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스님이 세웠다는 홍룡사. 그 절의 관음전 옆에 있는 홍룡폭포의 기세는 참으로 위풍당당하다. 홍룡사는 당나라 승려들이 폭포에서 몸을 씻고 원효스님의 설법을 들었다 하여 낙수사(落水寺)라 부르기도 했다.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치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폭포 이름에 왜 무지개 홍(虹)이 들어갔을까. 옛 사람들은 무지개를 용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다는 글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홍룡폭포를 바라보며 무지개를 타고 황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았다.

 

이제 하얀 억새밭이 그리움처럼 내 마음에 들어앉았다. 지율스님이 지키던 천성산이라서 더욱 애틋하게 말이다.


태그:#하얀 억새, #천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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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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