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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사랑이>는 그의 자전적 수필이다.
<어느 날 사랑이>는 그의 자전적 수필이다. ⓒ 나영준

조영남(62)을 다시 만나 건 10개월여 만이었다. 지난해 말, 시독회(試讀會, 출판 전 독자의 반응을 살피는 자리)라는 다소 생소한 행사까지 치렀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어느 날 소식이 왔다. 조심스레 독자의 반응을 살피던 책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단다.

<어느 날 사랑이>(한길사)는 지난 삶의 족적을 담아낸 책이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그의 사적인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결혼과 파경, 그리고 여성들…. '조영남답게' 욕먹을 만한 부분이 모두 실려 있다.

사랑은 일생을 살아도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없는 몇 안 되는 명제 중 하나다. 한편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때로는 쌓아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 독을 지니고 있다. 사랑과 불륜사이를 오가던 연예인, 사업가, 정치인들의 한순간 몰락. 혀를 차면서도 가슴 한편에 손을 올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는 조영남도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그를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 중 하나는 바로 '바람둥이'라는 것이다. 아직 그의 연애사에 마뜩찮은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썼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을까.

이성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 간의 교류가 사랑

책장을 펼치면 푸르던 첫사랑의 기억이 묻어있다. 새벽에 배달 된 우유처럼 처음 찾아 온 사랑은 누구에게나 싱그럽다. 60, 70년대 시대상과 에피소드도 재미있게 담겨있다. 노래나 그림도 훌륭하지만 글 솜씨 역시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백들.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고 외도를 했다. 결론은 물론 파경이었다. 변명도 될 수 있고, 자기옹호도 될 수 있는 이유들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얄미워 보일 수도 공감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그는 다시 열심히 사랑을 한다.

물론 책은 이성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소설가 이윤기와의 인연에선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묻기도 하고, 젊은 날 신학도였던 그답게 예수의 사랑 앞에서 겸손할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본다.

"내 딸은 나의 스승이며 은인이다. 나는 내 딸이 아니었으면 내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게 진짜 존재하는 건지를 확인 못하고 엄벙덤벙 짧은 생애를 마감할 뻔했다. 그걸 내 딸의 존재 때문에 사랑의 있고 없음과 사랑의 형태까지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사랑이>
<어느 날 사랑이> ⓒ 한길사
글을 통해 이해할 수도 있지만, 혹 못 다한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해져 그를 만났다. 10월 12일(금) 오전. 큰 평수, 그러나 별다른 세간살이 없는 그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시독회 당시 책을 거의 완성해 놓은 걸로 아는데, 왜 이제야 발간했나?
"당시 매니저는 물론 주변에서 강하게 만류했다. 그 후 맡은 프로그램(지금은 라디오 시대)때문에 반대가 있었다. 출판사에서 부드럽게 잡아줬고 간신히 MBC의 '심의'를 통과했다.(웃음)"

- 책에 여러 이름이 나온다. 가명이라도 주변에선 알 텐데, 혹시 항의가 들어오진 않는지.
"부인이었던 사람 빼고는 모두 가명이다. 항의할 사람들한텐 이미 버림을 받았다.(웃음) '쟤 또 저런다' 싶어 피곤해 하겠지만, 처음이 아니니까…."

- 출간 후 지인 등 주변반응은 어떤가?
"오히려 좀 더 리얼해야 한다며, 너무 점잖고 조심했다고 한다. 남녀가 길게 사랑하면 좋을 때도 있지만 치부가 생긴다. 그게 40% 정도 되는데 감추고 썼다. 그런 걸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으니까."

- 현실적 타협을 많이 본 것 같다.(웃음)
"그래서 난 길이 남을 훌륭한 작가가 못된다. 같이 살던 사람이고 뭐고 안면 몰수하고 터뜨려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데.(웃음) 3쇄 째 내용은 조금 다르다. 매쇄마다 조금씩 다른 초유의 책을 내려한다. 장사는 잘 될 것 아닌가.(일동 폭소)"

나는 혜택을 많이 본 사람, 욕먹는 것 억울하진 않다

- 책의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인 반면 예수의 사랑에 관해서도 언급된다. 혹 그것을 근간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한 5년이 사실 사랑공부를 한 거다. 구원, 삼위일체, 부활, 천당 등 구약스토리엔 관심이 없고, 예수가 말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사랑…어렵다. 그런데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쓴 책이 없다. 몽롱하고 이럴 것이다 하는 식의 뜬구름이다. 그런 생각이 반영될 수도 있다."

-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사랑과 우정은 동등의 개념인가?
"그렇다. 같이 본다. 사람들은 사랑을 섹스의 개념으로 '계몽' 받아 온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섹스가 개입되면 정말 좋은 사랑을 놓칠 수가 있다. 그것을 초월했을 때 좋은 사랑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 본인의 젊은 날도 그렇고, 혹 인위적 배제가 아닐까.
"아니다. 서로 간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늙고 노회해져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섹스를 배제시키면 보다 새롭고 이상적 형태의 사랑을 나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걸 굳이 우정으로 규정시키기보다 사랑으로 부르고 싶다. 남성간의 우정도 사랑이다. 우정이라 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홀대다."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생각, 억울하진 않다고 한다.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생각, 억울하진 않다고 한다. ⓒ 나영준
- 어느 사안이던 기사가 걸리면 진보·보수 양 쪽에서 함께 욕을 먹기가 힘든 일이다.(웃음) 조영남씨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그런 편이다. 억울하진 않은지.
"내가 이기적이고 더티하게 살지 않았나. 그런데 몇 년 전 <신동아>나 <월간조선>등에서 크게 써주고 하기에 우쭐한 마음이 있었다. 그 결과가 이른바 친일발언으로 귀결이 난거다.

건방진 얘기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반반 정도니 덜 서운하겠다는 심정도 들었다. 그러나 욕먹는다는 것은 한편 관심이 있다는 거다.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너무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억울하다고 마음먹으면 천벌을 받을 거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어떤 사안이던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스스로를 지독한 아웃사이더라 여기기도 했고 한편 촌놈 콤플렉스를 심어준 충청도 삽다리 고향이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조영남은 너무 많은 재주를 가졌다. 노래와 그림은 물론 문인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글 솜씨까지. 그는 말했다. "억지로 노래 못 부르고, 일부러 그림을 엉망으로 그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아마 여기에 그가 평생을 딴따라로 사는 이유가 있는 듯싶다.

책에서 그는 무려 아홉 차례나 아내가 만삭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봤을 아버지. 그리고 그런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13년간을 돌본 어머니를 이야기하며 그런 분들에 비하면 자신은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궁금해 한다. 대한민국에 사랑평가 조사단이 있어서 누구나 죽기 전에 한 번쯤 자신의 사랑점수를 평가받는다면 자신은 몇 점 일까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점수를 매길까.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라면 채점 전 답안지(책)을 읽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사랑이

조영남 지음, 한길사(2007)


#조영남#어느날 사랑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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