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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캠프에 들어갔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저는 정치권에 들어갈 생각이 없고, 교수 생활을 충실하게 하려는 사람인데, 담당 분야가 현실 세계와 연관성이 많은 관계로 과거에도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 이명박 후보 캠프 참여 문제가 논란이 돼 네이버 이용자위원회 대표위원에서 사임한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가 12일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린 네이버 이용자위원회 정기회의 자리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한 말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이 어떻게 포털 사이트 뉴스 편집의 공정성 등을 다루는 네이버 이용자위원회의 대표위원일 수 있느냐는 원용진 서강대 교수의 문제 제기에 대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며 "사실 여부를 떠나 대표 위원을 계속 맡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네이버 뉴스 이용자위원회 대표위원과 전문위원을 사임하고자 한다"고도 말했다.

 

알쏭달쏭 헷갈리는 '선수'의 답변

 

역시 선수답다. 백전노장의 노회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대선캠프에 들어갔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정치권에 들어갈 생각이 없고, 교수 생활을 충실하게 하려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는 이명박 캠프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물론 이명박 캠프에 기웃거릴 분도 아닐 듯싶다. 하지만 다음 말을 들으면 헷갈린다. "담당 분야가 현실 세계와 연관성이 많은 관계로 과거에도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거나 "원용진 서강대 교수의 문제 제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대목에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도대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 참여했다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와의 인터뷰('네이버 뉴스 이용자위원회 대표위원 '이명박 캠프' 김원용 교수 사퇴한 까닭')에서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김원용 교수는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다는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네이버 이용자위원회 대표위원을 그만 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떠나 논란이 일었기 때문에"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그가 이명박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이를 바로잡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일까? 그의 답변이 걸작이다. "내 명예가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면서 그는 대선 후보들과의 폭넓은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도 친한 사람이고, 이명박 후보와는 95년부터 친분을 쌓아왔다"며 "이 후보와는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며, 대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뿐이지, 캠프에 직접 참여한 적도, 만난 적도 없다"고 했다.

 

"명예를 훼손하지 않은" 오보?... 그의 본심은

 

일단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대략 이명박 후보와의 관계가 드러난다. 95년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로,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며, 대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도다. 하지만, 직접 캠프에 참여하거나 만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명박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의 큰 흐름과도 맞아 떨어진다.

 

이명박 후보 캠프 인사들을 거론하는 언론 기사에서 그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부터다.

 

5월 28일자 <주간한국>은 "김원용 교수는 캠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로 이 전 시장에게 정무적인 조언을 자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5월 17일자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선거대책본부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비중있는 인물"로 나왔다.

 

그런 김 교수가 9월 4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선거 전략과 메시지·정책 개발, 후보의 동선 등을 결정화는 속칭 '4시회의' 참석자로 ‘격상’됐다. <연합뉴스>도 10월 10일자 기사에서 김원용 교수를 "선대위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전략홍보조정회의에 김원용 교수가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김원용 교수의 해명대로라면 이들 언론 보도 가운데 여론조사 전문가로 이명박 후보에게 정무적인 조언을 자주하는 '비중있는 인물'까지는 맞지만 이른바 '4시회의'나 '전략홍보조정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른바 '4시회의' 멤버라거나 '전략홍보조정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는 기사 내용이 사실은 아니지만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아니어서 그대로 두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본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현실세계와 연관성이 많은" 그의 노회함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현철과 함께 떴던 폴리페서, 10년만에 복귀

 

사실 이런 '논란'과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 김원용 교수는 대표적인 '폴리페서'라고 할 만 하다. 김영삼 정권 때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김현철씨의 언론계 사조직인 이른바 '광화문팀' 소속 여론조사 팀을 운영했다. 

 

또 97년 대검 중수부 수사 결과 김 교수는 95년 하반기에 김현철 씨가 조성한 비자금 25억원을 건네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이 돈으로 서울 양재동과 광화문 등지에 비밀사무실을 내고 95년 지방선거, 96년 4·11총선 때 여론조사 등 판세 분석 작업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당시 지역민방과 케이블TV 사업자 선정에도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김원용 교수는 이런 배경 속에서 96년 KBS 이사로 취임하지만, 김현철 언론계 인사 개입 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97년 타의로 KBS 이사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97년 <신동아> 7월호 인터뷰에서 김원용 교수와의 '인연'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장관에 취임한 초기 김 교수가 찾아와서 '(장관이) 신문 기자 출신이니까 방송에 대해 잘 모르지 않느냐, 자문해 드리고 싶다'면서 도움을 자청했다. …김 교수가 KBS 이사가 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김 교수가 그렇게 깊이(인사 민방선정) 등에 개입해 있는 것은 몰랐다. 초기에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KBS에 도움이 될 듯해 방송위원회에서 추천될 때 찬성했다. 이번에 문제가 돼서 제3자를 통해 당사자한테 사표를 제출해달라는 공보처측 의견서를 보냈다. 그러자 본인이 KBS 이사장 앞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일부 구어체 문투 문어체로 바꿈)"

 

김현철씨의 몰락과 함께 KBS 이사직에서 물러난 김원용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깊숙이 '잠수'했다. 당시 성균관대 교수였던 그는 그러나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이번에는 '이명박 후보의 비중있는 정무적 조언자'로 10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른 바 이명박 후보의 '4시회의', 혹은 '전략홍보조정회의' 멤버라는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명예를 심하게 훼손된 것은 아니어서 정정 보도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해명이 왜 나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어떻게 우리가 시시비비 가리냐"... 네이버의 '무지' 혹은 '무책임'

 

문제는 네이버다. 김원용 교수를 이용자위원회 위원으로, 그것도 대표위원으로 선발한 배경이 좀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과거 행적은 과거사라고 묻어두더라도 지난 5월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김 교수의 이명박 후보 자문 사실이 공공연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더 그렇다.

 

네이버 측은 김 교수의 선임과 관련해서는 "네티즌들의 추천을 통해서 위원들을 선임했고, 대표위원은 위원들이 뽑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네이버가 선임한 것 아니냐는 말에 비로소 "그렇다"고 했다.

 

이명박 캠프 참여 논란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도 "우리가 어떻게 가리겠느냐"고 반문했다.

 

네이버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서는 참여했다고 하지만,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니 사실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겠느냐"며 "이같은 논란의 진위 여부는 우리가 풀게 아니라, 김원용 교수가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지한 것인지, 무책임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대응이다. 네이버는 15일 뉴스홈 페이지 공지에 15일자로 김원용 대표위원의 사임 소식을 전했다. 사임 설명으로는 "특정 후보 선거 진영에 합류할 것이라는 보도의 사실 여부를 떠나 대표위원직을 계속 맡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사임한다"는 김원용 교수의 알쏭달쏭한 '해명'만을 잔뜩 늘어놓았다.

 

김 교수가 이명박 후보 캠프에 참여했다는 것인지, 참여는 하지 않고 자문만 해주었다는 것인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사실 여부에 대한 '네이버의 판단'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용자위원회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갔나

 

네이버는 이용자위원회 운영 취지로 '사회적 책임'을 가장 으뜸 가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번 김원용 교수의 이명박 캠프 참여 논란에 대한 네이버의 대응을 살펴보면 '사회적 책임'에 대한 네이버의 생각과 인식의 수준이 걱정된다.

 

이용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네이버 뉴스 편집 등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만든 이용자위원회의 대표위원이 특정 대선 후보 캠프에 연루됐다고 한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어정쩡한 해명으로 끝낼 일은 더 더욱 아니다.

 

사실 여부 등을 분명하게 따져서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김영삼 시절 정치권과 은밀한 유착관계를 맺었던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던 김 교수가 어떻게 위원으로 선임됐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고 한다면 네이버의 검색시스템은 더 이상 믿을 것이 못된다. 과거 기사의 검색에서는 물론 현재 기사의 검색에서도 구멍이 뚫려도 이렇게 뚫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이버의 검색 시스템이 왜 이리 허술했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태그:#네이버, #포털 편향성, #김원용, #김현철,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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