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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내 입장에서 서두르는 건,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서다. 거제는 참 아름다운 섬이다. 거제도를 한 번도 와 보지 않았을 때는 거제도 하면 으레 대우조선과 포로수용소만 떠올랐다. 그러나 거제도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거제에 대한 인상이 몽땅 바뀌었다.

 

거제는 천혜의 자연, 기암괴석을 간직한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아름다운 해안선, 그리고 여전히 청정한 옥빛 바다를 가진 섬이다. 그 일부라도 보여주기 위해 신선대를 택했다. 개인적으로 와서 보고는 그 비경에 감격, 바위 위에 눕기도 하고 바위를 의자 삼아 앉아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오래도록 경치를 즐겼다. 그러나 오늘은 잠깐 맛만 보여주고 저구항으로 이동이다. 소매물도를 가기 위해서.

 

외도는 천국의 정원, 소매물도는 천혜의 자연

 

소매물도의 비경은 갔다온 사람만이 안다. 얼마나 멋있는지. 그리고 소매물도 산을 넘어서 등대섬을 갔다 온 사람만이 그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힘든지 안다. 비경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자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법, 우리에게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한 가지 쉽게 가는 방법은 있다. 낚시배를 빌려 타고 섬을 한바퀴 돌아본 다음 등대섬을 올라갔다 오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산 위에서 보는 경치는 놓치고 만다. 버스에서 내릴 때 나는 소매물도에서 등대섬 가는 길을 설명했고 개인 물품을 최대한 가볍게, 확실히 챙겨 갈 것을 당부했다. 우리 일행은 열 여섯 명. 물론 그 인원이 다 등대섬을 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우리가 배를 탄 곳은 거제 저구항. 저구항에서 소매물도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이 섬의 주소지는 통영. 정확히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다. 외도는 거제시 일운면이고, 굳이 외도와 소매물도를 비교하자면, 외도는 천국의 정원이라고 하고 소매물도는 천혜의 자연이라고 한다. 그만큼 소매물도의 자연은 정평이 나 있다.

 

소매물도에 내려 옹기종기 붙어 있는 가파른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간다. 선착장에서 볼 때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걸어 올라가 보면 땀의 진가를 깨닫게 되는 곳이 이곳. 중간도 못가 허리에 손을 짚고 엉거주춤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을을 지나고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지금은 폐교된 학교를 지나 산등성이 길을 걷는다. 억새도 간간히 휘날리고 동백나무 숲도 보인다. 길은 좁다. 혼자서 사색에 잠겨 쉬엄쉬엄 걷기에 좋은 오솔길이다. 하지만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교차해야 할 때는 어느 쪽이든 서서 기다려줘야 한다. 그러다 앞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걸어오면 그 사람들이 다 지나가도록 기다렸다 가야 한다.

 

 

앞에 가는 두 분 아저씨가 툴툴거리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길이 이렇게 좁아서야 어디 또 오겠어. 길을 좀 넓히든지 해야지, 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내가 나섰다.

"길을 넓히면 안 되요. 좁으면 좁은 대로 다녀야지. 그렇게 되면 자꾸 자연이 망가져요."

나는 어린애 달래듯 나직하게 말했지만 내 말은 그야말로 씨도 안먹히는 꼴.

"그래도 사람들이 다닐 수는 있어야지. 이래서야 누가 여기를 오려고 하겠어."

 

말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한 마디 거들었지만, 저래서 관광지 다 버리지 싶다. 그 분들은 끝까지 길을 넓혀야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이곳의 소득도 높아진다고 언성을 높이며 걷는다. 어디나 떼로 몰려가 놀고 그곳 주민들에게는 소득을 잔뜩 올려줘야 심사가 편한 세상, 그런 우리나라가 된 건 아닐까? 휴우 한숨이 나온다. 말릴 방법 좀 아는 분?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는 법. 산등성이를 다 내려가면  아주 가파른 길이 나온다. 지난 여름 비까지 내린 뒤끝이라 그 길을 내려 가느라 아주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나 혼자 몸이야 걱정 없지만, 마침 어린아이를 데리고 내려가는 젊은 아빠가 있었다. 우리 손님은 아니지만 어찌나 힘들게 내려가는지, 또 위험하기도 했고. 그들을 한 발 한 발 내려 주느라 진땀이 다 났었다.

 

천혜의 자연을 해치는 합성수지 계단

 

그런데 막상 다다른 그곳, 어이없게도 계단이 놓아져 있었다. 요즘 어딜가나 놓아져 있는 합성수지 재질에 쇠못을 땅땅 박아 놓은 계단. 불과 3개월만이다. 여기다 꼭 이런 계단을 놓아야 했을까? 불현듯 인도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에로틱한 힌두사원이 있는 카주라호였다. 그때 마침 카주라호 성벽을 닦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성벽을 닦아내는 도구는 나뭇가지를 망치로 두드려 만든 작은 나무 솔이었다.

 

답답해 보였다. 그 작은 나무솔을 가지고 역시 나무를 세워 만든 안전대 위에 올라가 건물외벽에 붙은 시커먼 때를 닦아내고 있다니. 그런데 그들의 설명에는 고개가 다 숙여졌다. 이유인즉슨 쇠나 플라스틱으로 된 솔은 건물 외벽에 손상이 가게 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득이 나무솔을 사용해야 하고, 외벽을 한 번 닦아내는 데 1년 이상 걸리는데 다 닦고 나면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단다.

 

그런데 우리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멋지게 생긴 합성수지 계단을 턱하니 산위에 올려놓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자연친화적인 계단을 만들 수는 없었을까? 내가 처음 소매물도에 왔을 때는 등대섬에도 계단이 없었다. 지금 인터넷에 소매물도를 검색해보면 한국관광공사가 제공해 주는 등대섬 사진이 그때 사진이다. 천혜의 자연 그대로를 보여 주는.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물길이다. 하루 두 번 길을 터주어 등대섬으로 건너가게 해 주는. 물이 약간 있을 때는 운동화를 벗고 건너갈 수 있는데, 갯벌이나 모래가 아닌 몽돌이라 굉장히 힘들고 위험하다. 그런데 오늘은 다행이었다. 물이 다 나가서 몽돌이 소복한 길이 나 있었다.

 

바로 눈 앞에 등대가 보인다. 내가 앞장서고 모두 따라 오라 했지만 우리 일행은 겨우 여섯명. 힘든 표정이 역력하다. 내가 강조는 했지만 배에서 올려다보고 우습게 생각한 것이다. 등대섬 배가 닿는 접안구역에는 포장까지 쳐져 있다. 여긴 장사도 식당도 없는데, 아마도 관광객이 놀기 위해 쳐 놓은 것 같다. 휴우! 우리의 여행문화는 언제쯤 건전하게 바뀔까?

 

덧붙이는 글 | * 소매물도는 지난 10월 13일 다녀왔습니다.  소매물도 가는 여객선은 통영에도 있고 거제 저구항에도 있습니다.


태그:#거제도, #신선대, #소매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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