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왜, 그런 것 있지요? 잘 알려진 유명한 작품을 막상 얘기하려고 하면 입이 안 떨어지는 경우 말예요. 셰익스피어도 그렇지 않을까요. 누구나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지만 정작 그 사람들 중에는 <햄릿>을 안 읽어본 사람도 많잖아요.

지금 남산드라마센터에서는요, 셰익스피어 작품 두 편을 연달아 올리고 있어요. <멕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것이지요. 그런데 단순한 셰익스피어 작품이 아니예요. ‘목화의 셰익스피어’. ‘극단 목화’라고 하면? 그야 오태석이지요. 연극의 놀이성과 과감한 생략을 중시하는 오태석이 연출한 셰익스피어 극을 볼 수 있는 것이에요.

 <멕베스>의 한 장면
<멕베스>의 한 장면 ⓒ 목화레퍼토리컴퍼니

그래서 저, 지난 19일(금) <멕베스>를 보러 남산드라마센터로 향하며 기대가 많았답니다. 오태석이 재구성한 <멕베스>는 어떤 모습일까? 극단 목화는 셰익스피어의 이 고전에서 어떤 새로움을 찾아낼까….

"그래서 어땠냐"고 묻는다면, 저는 ‘절반의 만족’이라고 답하겠어요. 목화의 <멕베스>는 우리가 애초 생각하는 ‘비극’이란 느낌과 달리, 곳곳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게 만듭니다. ‘즐거운 멕베스’를 볼 수 있는 것이죠. 이건 분명 신선한 발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아쉬움 또한 남겼답니다. 지난 1월 초연 후 두 번째 공연이라서 그럴까요? 아직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거든요.

목화의 <멕베스>, 원작의 줄거리를 크게 변형하지는 않았어요. 스코틀랜드의 용감한 장군 멕베스. 그는 벤쿠오와 개선하던 도중 자신이 왕이 될 거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욕망에 사로잡혀요. 부인과 공모해 자신의 성을 방문한 국왕 덩컨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죄책감을 누르지 못하죠.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되고 안심하지만 운명은 마지막에 멕베스를 저버리고… 다 아시는 내용이에요, 그렇죠?

그런데 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오태석은 해학과 유머로 가득 채워 경쾌하게 바꿔버립니다. 공연은 멕베스를 ‘타락한 영웅’으로 만들지 않고 평범하고 나약한 존재로 재탄생시키거든요. 멕베스가 국왕 덩컨을 살해한 후의 부인과 주고받는 대사를 볼까요.

멕베스 : …외쳐대고 있었어. “너는 더 이상 잠 못 잔다.” “글래미스 코오더 멕베스는 더 이상 잠 못 잔다. 못 잔다.”
부인 : …이러다 우리가 영영 못 잔다. 얼른 방으로 돌아가 손 씻어요. 저런 단검은 왜 가져왔어요. 가서 호위병 손에 쥐어주고 그놈들 몸에 피칠을 하세요.
멕베스 : 못 가. 무서워. 나 그 꼴 다시 못 봐. 진저리가 나.
부인 : 원 그러구 심약해서야. 왕관은 왜 쓰고 왔어 그래.


흡사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가지 긁는’ 장면 같지 않나요? 관객들은 이런 멕베스에게 위화감을 느낄 수 없겠죠. 마녀의 말 한마디에 끌리고, 부인에게 떠밀리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멕베스가 마치 옆집 아저씨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는 “연극은 구경하러 온 사람과 가까워야 하며, <멕베스> 또한 서울 시민들이 만날 수 있는 정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오태석 연출가의 의도입니다. 괜히 무게 잡지 않고 ‘힘을 쫙 뺀’ 배우들의 연기 또한 연출의 의도에 부합하고 있어요(밴쿠오의 아들 플리언스를 놓친 자객이 멕베스에게 보고하는 대사 : “그게- 폐하, 플리언스가 토꼈습니다.”)

 <멕베스>의 한 장면
<멕베스>의 한 장면 ⓒ 목화레퍼토리컴퍼니

기발한 장면은 또 있습니다. 1막에 등장하는 마녀들이 ‘모기바람과 서캐바람, 벼룩바람 합해서 뱃놈 아내를 골려줄 거야’라고 얘기하다 ‘파선당한 배 조타수의 엄지손가락이 살구맛이다’라며 떠드는 모습은 귀여울 정도에요. 특히 지난 공연에도 하이라이트였다는 ‘헤커드의 등장’은 정말이지, 그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네요. 멕베스에게 예언하는 그 음울한 대목을, 목화의 <멕베스>는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리거든요.

그렇지만 이쯤에서 칭찬은 그만. 아쉬운 점을 조심스럽게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분명히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멕베스>는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는 인터미션 없이 2시간 10분가량 되는, 긴 상연시간과도 관련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배우들 간의 발성의 편차였다고 저는 생각해요. 무대에 가깝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었던 저는 특정 배우들의 대사를 거의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아마도, ‘기발하기만 할 뿐, 감동은 없었던’ 데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멕베스>를 보고 난 후 기억나는 대사들이(그리고 잘 들렸던 대사들이),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시적인 문장들이 아니라 위에 복기한 ‘톡 쏘는’ 말이었다는 사실은 그저 제 주의력이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좀 심하게 말하자면 에피소드로 점철된 ‘개그 콘서트식 멕베스’가 되어버린 아쉬움을 강하게 받았답니다.

 <멕베스>의 한 장면
<멕베스>의 한 장면 ⓒ 목화레퍼토리컴퍼니

“나는 아마추어이고 내 작품은 습작이다.” 이는 오태석 연출가의 지론이랍니다. 결정된 연극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치고 바꾸는 연출 방식을 통해 변화하는 연극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 <멕베스>가 그의 두번째 <멕베스>라는 사실에 저는 위안을 찾을래요.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분명히 신선함을 안겨줬던 오태석의 <멕베스>, 다음 공연에서는 좀 더 저를 만족시켜주셔요. 이상, 당신이 그토록 중시하는 한 관객의 바람이에요.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멕베스#목화#오태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