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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번, 일 년에 딱 한번 산문을 여는 것으로 유명한 조계종종립선원 봉암사가 자리한 희양산 꼭대기에 봉화가 올랐다. 산산 골골, 처처 곳곳에서 수행중인 모든 출가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겠다고 서원한 모든 중생들 모여들라는 신호처럼 꾸역꾸역 연기모양으로 피어올랐다.

 

봉화처럼, 향연처럼 피어오른 희양산 구름

 

기암이 촛불처럼 생긴 희양산 꼭대기에 걸친 구름이 마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香煙)를 닮았다. 60년 전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며 결의하였던 그 스님들에 대한 예경, 출가 수행자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재가 불자들 모두가 진득한 마음으로 님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낸 듯 은은히 퍼지는 향연(香煙) 모양으로 희양산 꼭대기서 운향으로 피어오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다. 일찍 도착하면 봉암사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시간인 아침 6시에 도착을 했건만 봉암사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는 벌써부터 차를 통제한다. 삼거리에서 봉암사까지는 족히 십리 길은 걸어 들어가야 하는 거리다. 주차장으로 마련된 분교 운동장에 차를 세우고 걷는다.

 

 

구름이 자욱하다. 틀리기만 한다고 기억되는 일기예보가 적중을 하는 건지 새벽 구름이 산하를 뒤덮었다. 노란색을 띤 황금들녘 저 만큼 뒤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은 아예 흰색 구름을 치마폭처럼 허리를 둘렀다. 삼거리에서 바라본 희양산에는 봉화를 떠올리게 하고,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닮은 구름이 걸쳤다. 그냥 걸쳐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연처럼 하늘거리며 허공으로 흘러간다. 

 

60년 만에 봉암사에서 다시 다지는 결사의 아침은 '정중동'

 

여느 때라면 적막하리만큼 조용하기만 했을 봉암사의 아침도 오늘 만큼은 정중동이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은 조용한듯하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일손들이 바쁘다. 진입로 여기저기에 걸린 온갖 현수막들도 내용으로는 고요함이지만 요구하는 것은 행동이니 이 역시 정중동이다. 하늘이 개이고 햇살이 내리니 우중을 대비했던 비닐을 걷어내는 종무원들의 얼굴에도 밝음이 온다.

 

큰일을 치르는 데 좋은 날씨보다 더 큰 부주는 없다. 날씨가 굳을 거라는 일기예보에 마음마저 축축해질 만큼 구질구질했을 사람들에게 이렇듯 햇살이 비추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경내를 한 바퀴 돌고, 계곡 저만큼 위에 있는 마애불에 참배를 하고 내려와 다시 한 바퀴쯤을 돌고나니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돌아볼 곳은 다 볼아 봤으니 산으로 올라간다. 봉암사엘 가면 꼭 들르는 곳이다.

 

 

후불탱화처럼 희양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봉암사 경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소위 포인트가 앞산에 있다. 그곳엘 가야만 봉암사가 한 눈에 보이고 희양산과 어우러진 가람배치가 보인다. 봉암사엘 들르면 그곳엘 다녀와야만 텁텁한 음식을 먹고 시원한 동치미국물 한 사발을 마신듯 한 개운함이 있다.

 

경내에는 찾아드는 사람들로 점차 번잡스러워졌지만 산상에서 내려다보는 경내는 한가롭게만 보인다. 대회를 준비하는 진행자의 리허설 소리만 밀려드는 인파를 가르고 바람소리처럼 들린다.

 

대회장은 말끔하게 준비되어있다. 대웅보전 앞에는 스님들께서 결의하고 참회할 자리가 마련되었고, 재가불자들을 위한 자리도 그 아래쪽에 마련되었다. 스님들이 들어서고 재가불자들도 자리를 잡았다. 법회 시작을 채 20분도 남기지 않은 시간, 스멀거리는 기분처럼 바람이 불고 컴컴해지기 시작하더니 멀쩡했던 하늘에서 빗방울을 흩뿌린다.

 

처연한 모습 그리며 다부진 결의를 기대했더니...

 

ⓒ 임윤수

빗방울을 느끼는 순간, 순간적이긴 하지만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모습이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바람이 돌풍으로 불어도 꿈쩍하지 않고 철철 비 맞으며 의연함으로 결의를 다져나갈지도 모를 스님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스케치했다.

 

스님들이 어떤 분들인가? 목숨만큼이나 질기고도 모질다는 정, 속세의 이런저런 연을 끊고 홀연히 구도자의 길로 나선 수행자들이기에 속인들에게는 기대조차 하지 않을 그런 모습을 기대해 봤다. 

 

이마에서는 뚝뚝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흠뻑 젖은 가사 장삼이 척척 몸뚱이에 휘감긴 모습, 밀려드는 추위에 오들오들 한기를 느끼면서도 백천간두에 선 그 절박함으로 꼼짝 않고 참구하는 모습, 그 처연함과 감격스러움에 보는 사람들이 절로 무릎을 꿇으며 엉엉 목 놓아 울거나 오체투지의 큰절을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슴으로 그려보았다. 

 

그러나 내려다보이는 식장에서는 어수선함이 느껴진다. 앉았던 스님들은 비를 피해 자리를 뜨고, 바닥에 깔렸던 비닐은 순식간에 걷힌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우왕좌왕하는 듯한 느낌에서 머릿속으로 짝사랑처럼 그렸던 처연한 모습은 허상이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산상에서 내려다보는 비바람 속의 봉암사는 언론에 점철되었던 한국불교계의 현재를 보는 기분이다. 사자후를 외치고 용맹정진을 말하더니 빗방울에 흔들리고 바람에 밀리는 모습에서 한국불교에 낀 구설과 구름이 겹쳐져 보인다. 

 

예정된 법회시간이 임박하니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스님들이 우중, 비바람이 몰아치는 대웅전 앞마당으로 다시 모여든다. 몇몇 스님이 마당으로 들어서니 비를 피하려 처마 밑으로 들어갔던 스님들이 법회장으로 나와 대오를 맞춰나간다.

 

 

비도 바람도 그치지 않았다. 스님들의 결의를 시험하려는 듯 빗줄기는 굵어지고 바람은 거세졌지만 스님들은 그냥 비 맞고 바람 거스르며 자리를 한다. 빗물에 젖고, 불어오는 바람이 추위로 다가오지만 그냥 그 자리에서 결의를 다지며 참회를 한다.


처음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런 처연한 광경은 아닐지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울컥하게 하기에는 충분히 결연한 광경이다.

 

더 많은 스님들이 오셨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500여분의 스님들이 먼저 자리를 메우니 그 뒤로 재가불자들이 자리를 잡는다. 법회장은 더 이상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가득하다. 식순에 따라 범종을 울리고 향불을 사르지만 사부대중의 마음은 이미 봉암사 전각들에 울려 퍼졌고, 희양산 꼭대기서 향연으로 피어올랐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기념사에서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으며 스스로를 뒤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며, 여러 가지 내우외환을 겪으며 지금 우리의 수행가풍을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를 향해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자기 모습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했다.

 

잘못된 언론이 아무리 왜곡하고 날조를 해도 잡을 꼬투리가 없다면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게 바로 스님들이 살리려고 하는 승풍이며 존경의 씨앗이라는 생각이다. 존경이야 말로 강요나 요구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자생적으로 우러나와야만 하는 마음의 꽃이니 존경은 스스로가 피워야 할 절대적 가치다. 

 

60년 전, 봉암사 결사 당시 수행종풍을 세우기 위해 마련한 18개항의 '공주규약(共住規約)'과 기념사, 선언문과 참회문을 낭독하며 결의를 다지고 참회를 다짐하는 절을 올린다. 날씨 탓에 비록 서서하는 합장의 절일지언정 출가수행자의 의연함과 재가불자들의 절박함이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스님들이 참회의 절을 하니 재가불자들이 동참의 절을 한다. 그래 바로 이거다. 스님들이 앞장을 서면 재가불자들은 이에 따른다. 스님들이 청정하고 반듯한 모습을 보이면 재가불자들도 청정하고 반듯함으로 살아가려 부단히 노력할거다. 부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청정한 스님들의 삶이야말로 사부대중의 사표며 거울이기 때문이다. 

 

철철 비를 맞아가며 참회의 절을 올리고 있는 학승을 바로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무거워진다. 출가를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부처님의 법대로 살아가려 막 구도의 길로 접어든 학승들이 잘못을 할 기회가 언제 있었으며 뭐 참회할 것이 있기에 저토록 구구절절한 모습으로 참회를 하고 있을까에 대한 반문이 인다.

 

우중이기에 혹시 등 떠밀려 자리를 메운 것은 아닐까 하는 회한도 들었지만 학생스님들이 하는 절은 참회의 절은 수행자로서의 참회가 아니라 출가전의 잘못을 참회하는 절이거나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결의의 절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히려 횃불을 든 손모양이다.

 

ⓒ 임윤수

천재의 조화일지언정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결사하니 불던 바람도 잦아들고 비를 내리던 하늘도 비를 멈춘다. 스님들이 결의하고 재가불자들이 따르고 동참하는 '2007년 봉암사 결사'는 어떤 꽃을 피워내고, 어떤 결실을 맺을는지 사뭇 기다려진다.

 

한국불교의 미래, 맑음일까 구름 낌일까?

 

60년 전에 있었던 결사의 뜻을 말하고, 공주규약을 말하기에 이번 법회는 스님들께서 마련하고 허드렛일까지도 스님들께 치러나가는 그런 법회이길 기대했건만 어디까지나 기대일 뿐이었다. 드러나는 최소한의 모습만으로 보았을 때 스님들은 마련된 자리에서 치르기만 하면 되는 일련의 행사일 뿐이었다. 

 

청소를 하고, 바닥에 깔개를 까는 것도 종무원들이거나 재가불자였고, 공양을 준비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사람들도 역시 재가 불자였다. 주어진 소임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갑작스런 비에 뒷설거지를 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속인들의 모습을 뛰어넘을 모습, 허드렛일일지언정 솔선수범으로 보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스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번일지라도 이럴 때 솔선해 주는 스님들의 실천이야 말로 일하는 재가불자들에겐 천군만마의 힘이 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겐 감로의 법문이 될 텐데 아둔한 필자의 눈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백 번 참회하고 만 번을 결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솔선하지 않으면 공염불되고, 실천하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 되는 게 부처님의 법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생각되는데. 가은면이 생긴 이래 최다의 사람들이 모였을 거라는 어느 아저씨의 말씀처럼 산문을 나선 사람들로 십리 길이 가득하다.

 

뒤돌아본 희양산 꼭대기는 파란하늘에 흰구름이다. 한국불교의 미래는 맑음일까 구름 낌일까?

덧붙이는 글 | 제한된 조건에서 사진 좀 찍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기에 시스템에 부담이 갈지 모르지만  많은 사진을 넣었습니다. 행사당일 산상에서 봉암사 전경을 찍은 사진은 불교신문과 <오마이뉴스>에서만 볼 수 있을 겁니다. 

현장에서 취재증을 발급해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기획홍보팀 박정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봉암사#결사#희양산#문경#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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