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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 ITAR-TAS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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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정권 출범 이후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적격이었던 럭비올림픽에서 프랑스가 지난 13일 4강전에서 영국에 아슬아슬하게 패배하면서 그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사르코지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럭비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평소에 조용했던 의사들까지 들고 나와 사르코지를 불편하게 만드는 데 한몫 톡톡히 했다.

9월 27일 파업을 시작한 종합병원의 인턴들이 10월 5일을 '인턴 없는 날'로 지정해 행동을 벌였는데 1만5천명의 인턴들이 이 파업에 참가하였다. 이들의 파업은 정부가 '2008년 사회보장기금 조달 계획' 중 하나로 '지역에 따른 의사진료비 보조금 여부 결정에 관한 법' 조항을 신설한 데서 비롯되었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이 법 계획안에는 신규 개업을 원하는 젊은 의사들이 이미 기존에 의사들이 많이 개업해 있는 곳에서 개업할 경우 지금까지 받던 진료비에 대한 국가보조금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다고 되어있다. 현재 프랑스에선 지역 간 의사 수의 불균형이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데, 대도시나 프랑스 남부지역 등에는 의사 과잉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비해 프랑스 북쪽 지역이나 시골에서는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해 주민들이 고생하는 실정이다. 이 법은 이런 의사 수 불균형을 없애고 동시에 110억원이 넘는 적자에 허덕이는 프랑스 사회보장 기금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고안되었다.

그러나 인턴들의 견해는 정부의 주장과 상이하다. 이들은 이런 조치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우선 환자들이며, 이런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사회보장 기금의 상황이 더 향상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은 근 10년 동안 계속해서 줄이고 있는 의대 입학생 수를 늘리는 일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해마다 5천명의 의사가 퇴직하고 있는데 비해 새로 개업하는 의사 수는 5백여 명에 불과하며, 이런 식으로 가다간 5년 안에 의사부족 현상이 정점에 오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에 정착하려는 의사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젊은 의사들을 시골에 정착시키기 위한 실제적인 혜택을 주는 정책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우리는 시골에 정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시골환경에서 직업생활을 영위하기를 원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법안이 발표된 15일 인턴 대표들은 로즐린 바슐로 건강부 장관을 만나 대화를 나눴지만, 타협점을 찾지는 못했다. 이들은 그 즉시 '전격파업'에 들어갔고, 정부는 이들의 계속적인 압력에 밀려 17일 이들의 주장대로 '의사들의 개업장소에 따른 지원조항'(32조와 33조)을 법안에서 뺐다. 인턴들의 대대적인 승리였다.

등에 "인턴 파업 중"이란 전단을 붙인, 파업에 참여한 인턴들.
 등에 "인턴 파업 중"이란 전단을 붙인, 파업에 참여한 인턴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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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인턴에게 밀렸는데 철도노동자 파업까지

그러나 사르코지를 곤란하게 하는 상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8일 목요일, 프랑스는 국립철도청(SNCF) 직원들의 파업으로 다시 한 번 전역이 마비되었다. '주디 누아르(Jeudi noir, 검은 목요일)'로 불린 이날, 철도청 직원의 73%가 파업에 참가하고 전국에서 130곳에서 시위가 진행됐다. 시위에 참가한 총 인원수가 30만명에 이르는 등 이날 파업은 1995년 파업 이후 가장 커다란 파업이었다.

프랑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철도청 직원 특별 퇴직연금 수정안'을 거부하며 국립철도청 직원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한 파업으로 인해 이날 700개의 테제베(TGV) 중 46개만이 운영되고 대다수의 지하철과 버스가 묶이는 등 프랑스 전역에선 다시 한 번 대중교통수단이 두절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대규모 파업의 근원엔 연금 문제가 놓여 있다. 2003년부터 프랑스에선 공무원들도 일반 회사에서 일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40년 동안 일해야 퇴직연금 전액을 받을 수 있게 됐으며, 2012년부터는 40년을 41년으로 다시 연장할 예정이다.

이와 달리 철도청 직원처럼 특별 퇴직연금 규정을 적용받는 이들은 이 규정에서 제외돼 있는데, 지금은 원하는 경우에 한해 50세(기차 운전수의 경우)나 55세(사무직의 경우) 때 정년퇴직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러한 조기퇴직 규정을 둔 덕분에 이들은 현재 37.5년만 일해도 퇴직연금 전액을 받게 되어 있다. 본래 이런 특별조치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일해야 하는 이들의 열등한 근로조건을 감안해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모든 이의 노동조건을 평등화한다는 기치 아래 이러한 특별 퇴직연금을 철회할 방침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얻을 여유자금을 현재 부족한 정년퇴직자들의 연금에 충당할 방침이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해 보인다. 사실 정부가 특별 퇴직연금 철폐로 거둬들일 수 있는 금액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정부의 목적은 내실 다른 데에 있어 보인다. 진짜 목적은 그동안 프랑스 노동운동의 선두주자로 수시로 파업을 일으켜 전국을 마비시킨 철도노동자들의 기세를 꺾는 데 있다는 지적이 많다.

원래 하루로 예정되어 있었던 이 파업은 다음날까지 지속됐고, 19일에도 대다수의 지하철과 기차의 운영이 중단되어 시민들은 커다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이번 파업으로 벨리브(VELIB, 파리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임대 시스템) 이용이 대대적으로 늘어, 18일에만 10만대의 자전거가 이용됐다고 한다(오후 5시 기준). 이는 평소 이용량(4만8천대)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이러한 대대적인 파업에도 불구하고 정부 방침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프랑수아 피옹 총리는 19일 "정부는 특별퇴직연금 적용 기간을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피옹은 프랑스민주노동연합(CFDT)의 요구사항을 조만간 검토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철도 노동자들은 22일 회의를 소집해 파업 지속 여부 등 향후 행동 방침을 논의한다.

18일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시작된 국립철도청 직원들의 시위 행렬.
 18일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시작된 국립철도청 직원들의 시위 행렬.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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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위 참가자가 "우리도 이혼하고 싶다"라는 글귀가 적힌 전단을 달고 있다.
 한 시위 참가자가 "우리도 이혼하고 싶다"라는 글귀가 적힌 전단을 달고 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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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 부인과 이혼까지

사르코지에게 18일은 시련의 날이었다. 거리에서 시위대가 깃발을 휘두르며 사르코지 정책을 반대하는 동안 사르코지의 집안에서도 내분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사르코지와 세실리아의 이혼 소문이 무수하게 나돌더니, 이들의 공식 이혼발표가 공교롭게도 이날 이었던 것.

정가에서는 월요일인 15일에 처리된 이들의 이혼이 왜 3일 후에, 즉 대대적인 파업의 날에 발표되었는지에 대한 구설이 넘쳤다. 프랑스는 2005년부터 이혼법 적용을 간소화하여 이제 프랑스인들은 이혼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게 돼 이혼을 원하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이미 합의한 경우라면 보통 3~4개월이면 이혼이 성립하는데, 대통령 부부의 경우엔 모든 게 급속도로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여러 면에서 그동안 이색적인 모습으로 비쳤던 세실리아는 남편이 대통령에 오른 지 5개월 만에 '프르미에르 담(퍼스트레이디)' 자리를 스스로 떠났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10세의 루이의 경우 다른 이혼 부부의 경우처럼 세실리아가 양육하지만, 수시로 아버지를 만나는 방식으로 부자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후문이다.

프랑스 대통령 부부 사상 최초의 재혼 커플이던 사르코지와 세실리아가 이혼을 감행함으로써 현직 대통령이 이혼을 하는 프랑스 역사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나 사회당을 비롯한 일부 좌파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사생활을 지나치게 공개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이혼 발표를 하필이면 18일에 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대적인 파업에 집중되어 있는 미디어의 관심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사르코지와 세실리아 부부의 이혼을 알리는 무료일간지 <메트로>. "마침표(Point final), 사르코지의 표정은 굳어 있고 세실리아는 울었던 흔적이 역력하다"고 돼 있다
 사르코지와 세실리아 부부의 이혼을 알리는 무료일간지 <메트로>. "마침표(Point final), 사르코지의 표정은 굳어 있고 세실리아는 울었던 흔적이 역력하다"고 돼 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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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단속 강화 방침도 비판의 도마에

어쨌건 이혼 문제 뿐만 아니라 끊이지 않는 시위도 사르코지를 괴롭히고 있다. 18일 국립철도청 직원들의 시위에 이어 20일에는 정부의 DNA 테스트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민정책을 강화하고자 하는 사르코지 정부에서 이미 정착한 외국인이 가족을 불러들일 경우 가족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DNA 테스트를 실시한다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것이 프랑스 사회에서 심각한 파문을 일으킨 것.

13일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150여명이 참가한 시위가 열렸고, 14일에는 '인종차별 구제 협회'와 주간지 <샤를리 엡도>, <리베라시옹> 주관으로 제니뜨 음악당에 예술가들과 정치인들이 모여 법안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날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로랑 파비우스와 중도파인 모뎀당의 프랑수아 바이루, 소설가 베르나르-앙리 레비,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 등이 참가했다.

20일 열린 DNA 테스트 반대 시위 때는 4천여 명이 파리의 제2의 차이나타운인 벨빌에서 참사원이 있는 팔레 로아얄까지 행진했다. 벨빌은 최근 경찰의 단속을 피해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사망한 중국 이민자가 살았던 곳이다. 이 날은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국에서 시위가 진행됐다. 사르코지 정부는 이 법안을 23일 국회에서 재검토한 후 표결에 붙일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태그:#사르코지, #인턴파업, #철도파업, #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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