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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고을을 지나 돈받재 고갯길을 넘으면 옴천 계원마을이다. 탐진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오염원이 전혀 없는 무공해마을인 옴천은 2003년 3월 전국 최초로 친환경농업 특구로 지정된 친환경농업 일번지다.

 

길가의 코스모스는 꽃잎이 지고 열매가 맺었다. 은행잎도 노랗게 물들어간다. 어느새 옴천 마을에 가을이 깊숙이 스며들었다. 도서지역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아담하고 고즈넉한 마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하룻밤을 묵으면 온갖 시름이 사라지는 마을이다.

 

 
 
폐교를 정보화 마을 체험장으로 되살려내다
 

옴천초등학교 영산분교가 폐교되자 박종욱(60) 옴천 정보화 마을 운영위원장은 학교를 11년간 임대해 새송이 버섯과 표고버섯 재배사로 사용하다 2005년에 사들였다. 현재는 떡메치기, 벼이삭 훑기, 미꾸라지와 참게 잡기, 풍물 한마당 등의 정보화 마을 체험장으로 활용한다.

 

정보화 마을과 인연을 맺은 지는 올해로 4년째다. 수수를 수확해 수숫단을 만들고 있던 박 위원장은 수수떡을 해놓으면 쌀로 만든 떡보다 훨씬 맛있다고 전한다. 옴천 정보화 마을의 시발점은 그가 사는 계원마을이다. 가구 수가 부족해 옴천면으로 확대했다.

 

“얘기들 오면 따갖고 박 공예 할라고 심었어요.”

 

하우스터널에는 여러 품종의 박이 주렁주렁하다. 창가에는 수숫단을 매달아 놨다. “농촌은 농촌다워야 한다”며 홀태를 조립해서 벼 이삭을 쭉쭉 잡아당겨 훑어낸다.

 

원두막 주변에는 국화가 활짝 피어 향기가 그윽하다. 텃밭에는 유기농 가을 배추와 알타리무가 자라고 있다. 유기농 식단의 원재료다. 강아지풀 우거진 논길에서 맡는 풀냄새는 정말 상쾌하다.

 

집 옆으로 탐진강의 지류인 영산천이 흐른다. 탐진강은 전남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에서 발원해 장흥군 중심부를 남북으로 가르며 흐르다가 강진만의 목리 갯벌로 흐르는 57km의 강이다. 장흥 유치천과 강진 옴천에서 흘러내린 수덕천이 만나 합수한 다음 그 흐름을 동쪽으로 꺾으며 작은 협곡을 따라 급한 물살을 이룬다.

 

친환경 농법인 참게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참게 치어는 모내기 3일 후에 입식한다. 논 900평에 참게 1만 마리를 키워 가을이면 4천여 마리를 수확한다. 소득은 800만 원 남짓, 하지만 최근에는 판매보다는 체험을 위해 키운다. 이렇게 참게 농법을 이용해 생산되는 유기농 쌀은 가격이 일반 쌀의 갑절이나 된다.

 

논두렁에는 사랑불이라 부르는 씀바귀 노란 꽃이 예쁘게 피었다. 계원마을은 농림부에서 시행하는 자운영경관직불제 마을로 전국 최초로 지정되었고 30 농가가 참여한다. 자운영 꽃이 피어나면 들녘은 정말 아름답다. 2008년에는 자운영축제도 열 계획이다.

 

 
 
 

반딧불이가 사는 무공해 자연의 품

 

싱그러운 무공해 자연과 더불어 살다 보면 무병장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추밭에서 풋풋한 배추향기가 풍겨온다. 배추밭에는 여치와 방아깨비가 뛰어논다.

 

“농약을 해버리면 풀벌레가 일절 없어요.”

 

그림 같은 잔디구장도 체험객들에게 무료개방이다.

 

“아내와 둘이서 올여름 잔디 풀 베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학교를 개조한 숙박시설은 동시에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밭둑에는 잘 여문 수수가 고개 숙이고 영산천 개울에는 구절초가 흐드러졌다. 영산천은 오염원이 없는 1급수로 다슬기와 반딧불이가 서식한다.

 

“여기는 강원도 골짝 물하고 똑같아요.”

 

돌멩이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는 자연의 교향곡인 듯 싱그럽고 아름답다. 어느 음악이 이보다 더 아름다우랴. 풀 섶에는 며느리 밑씻개와 고마리가 무성하다.

 

여름철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후에는 고추잠자리의 군무가 장관이다.

 

“아예 꽉 차 부렀어요, 잠자리가 엄청 많아요.”

 

연못에는 수련과 수초가 가득하다. 연못에 둘러선 편백나무의 물그림자가 멋진 오후, 플라타너스 낙엽이 나뒹구는 잔디밭 가의 빈 통나무 의자에 가을이 머물고 있다.

 

옴천 계원마을은 공기 좋고 물 맑은 청정지역으로 54가구 112명이 사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마을의 평균 연령은 65세. 대표적인 특산품은 막걸리를 먹여 키운 맥우와 무농약 친환경 쌀인 토하미, 민물 새우인 토하를 발효시켜 만든 토하젓을 생산한다.

 

 

 

항곡리 댁(84)이 걸레로 마루를 훔치다 반갑게 맞아준다.

 

“아래 채는 암도 안 사요. 옛날에는 땀뿍 찾는 디… 암도 안 살고 나 혼자 사요.”

 

창문은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죽창살문이다. 토방에는 텃밭에서 수확한 팥이 수북하다. 어렸을 때가 좋았다며 옛 시절을 회상하던 항곡리 댁 할머니는 홍시를 한사코 먹으라며 건넨다. 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10남매(6남 4녀) 할머니 댁이다. “50에 먼저 간 영감보다 반 틈을 더 산다”는 차덕례(87) 할머니는 “조르라니 키웠다”며 “뭐 그런 걸 남부끄럽게 묻느냐”고 한다.

 

“방으로 한가득 놔두고 가부렀지, 나 혼자 어찌 키우라고… 낮을 밤을 삼고 키웠어. 이녁 일은 밤에 하고 낮에는 놈의 일 했제, 보리 갈아 묵고.”

 

팥을 만지작거리던 할머니는 이제는 나이가 드니까 잠도 안 오고 서럽게 산 생각을 하면 그 세상을 어찌 살았는지 기막히다고 한다.

 

“다 즈그 밥은 묵고 살어라.”

 

대밭에는 하늘 수박이 노랗게 익어간다.

 

 

옴천 토하젓,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 뚝딱!

 

방죽에서 수초를 헤집어 뜰채로 떠내자 새우가 폴짝폴짝 뛴다. 윤정자(64)씨는 수초가 많아야 미생물과 플랑크톤이 많아서 민물 새우가 잘 자란다고 한다. 꽃뱀 한 마리 머리를 치켜들고 혀를 날름거리다 방죽을 자유롭게 헤엄쳐 간다. 앞마당에는 때아닌 영산홍 붉은 꽃이 활짝 피어 이채로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토하젓은 민물 새우를 잡아 소금을 뿌려 3개월간 숙성시킨다. 찰밥에다 쪽파·생강·마늘을 다져 넣고 당근과 고춧가루, 참깨와 참기름을 넣어 버무린다. 이렇게 만든 옴천 토하젓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뚝딱이다. 세상에 밥 도둑이 많기도 하지만 음식의 대도 진짜 밥 도둑은 토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간간하고 고소하고 토하는 옴천 청정 고을의 흙내음도 담겨 있다.

 

 

 

참게와 미꾸라지 잡기, 다슬기 잡기 체험이 있는 날이면 마을은 생기가 넘친다. 조용한 마을에 아이들 함성이 울려 퍼지면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좋아한다. 마을을 쏘다니고 개울에서 놀다 보면 하루해가 너무 짧다. 여기서 더 놀겠다며 떼를 쓰는 아이들 때문에 동행한 부모들은 다음 일정을 취소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음력 5월 단오 무렵에 꽃잎을 숙성시켰다는 찔레꽃잎차는 꿀을 탄 듯 진한 밤색에 향기가 가득하다. 단오에는 향기 그윽한 찔레꽃으로 떡도 해먹는다. 쌀가루와 찔레꽃을 켜켜이 넣고 쪄낸 찔레꽃 떡은 빛깔이 곱고 달콤하다.

 

대한민국의 들장미라 할 수 있는 찔레꽃은 오염원이 없고 볕이 잘 드는 옴천 마을 냇가 지천에 꿋꿋이 뿌리 내렸다. 5월이면 찔레꽃은 흰색이나 연분홍색으로 피어난다. 맑고 수수한 다섯 장의 꽃잎이 치마폭을 펼치듯 만개했을 때 계원마을에 가면 한 아름 그리움의 기쁨을 안아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광주 -나주 -영암 - 청풍원 휴게소 -좌측(옴천사 표지판)으로 진입 -우회전(정보화마을 이정표) - 직진 (돈받재) -계원마을(정보화마을 체험장) -옴천면사무소

이기사는 인빌뉴스, 뉴스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옴천토하젓, #반딧불이, #맥우, #자연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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