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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빵에 서린 추억을 안고
 풀빵에 서린 추억을 안고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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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시장에 가서 팥 좀 사온나."
"팥이 뭔데요?"


"이 빵에 들어가는 앙코가 바로 팥 아이가. 시장에 가서 100원어치만 사오너라."
"그냥 시장에 가서 파를 달라고 하면 되지예?"


"하모. 시장통에 가서 팥을 파는 아줌마한테서 사면 된다."
"알았어예."


아이는 풀빵 파는 아줌마한테서 100원을 받아 들고 포장마차를 나섰다. 그리고 의문점을 가지면서 시장으로 향했다.

'풀빵 안에 앙코가 들어가야 되는데, 왜 파를 넣지? 이상하다. 파가 앙코로 변한단 말이가.'

아이는 그런 의문점을 가지면서 시장에 갔다. 그리고는 파와 감자, 양파를 파는 아줌마에게 가서 굵은 대파 100원어치를 사게 된다. 가슴 한 구석에는 풀빵 아줌마가 시킨 심부름을 해냈다는 자부심을 가득 안고서.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아이는 아줌마에게 자랑스레 대파를 내밀었다. 대파는 꽤나 묵직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이렇게 묵직한 파를 사왔으니 심부름 값으로 풀빵 하나 달라는 요구가 순진하게 묻어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본 아줌마는 곤혹스러운 미소를 짓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종내에는 굵고 투박한 웃음을 풀풀 날리면서 이야기했다.

"아이고, 야야. 팥을 사오라고 했지 누가 파를 사오라고 했나?"
"이게 팥 아인교?"
"아이다. 팥이라고 따로 있다. 내가 잘못했다. 이제 겨우 여덟 살짜리가 무얼 알끼고. 옛다. 수고했다. 이 풀빵이나 하나 먹어라."


순간, 아이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그래도 저 풀빵은 맛있겠는 걸. 주시는 거니까 얼른 받아야지. 여덟 살 아이는 아줌마가 내민 풀빵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석양이 길게 꼬리를 끌며 서녘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그 석양에서 삐져 나온 노란 빛이 풀빵 위에 살짝 묻어 있었다.

참, 아련한 추억이다. 벌써 36년 전의 아득한 추억이다. 그때, 나는 동네 한 구석에 있는 풀빵집에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아마, 그 시절에 유난히도 풀빵이 맛있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마땅히 놀러갈 곳도 없어 괜스리 풀빵 장수에게 가서 하루 종일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어머니와 이 사건을 이야기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참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갓 이사를 온 아이는 마땅히 갈 데가 없어 풀빵 장수에게 놀러 갔던 것이다.

국화빵 혹은 거지빵이라고도 불렸던 풀빵.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틀 기계 안에 붓고, 그 안에 팥을 넣어 구워낸 풀빵.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 서민들의 입맛을 촉촉이 적셔주었던 그 풀빵은 아직도 이 땅의 민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음식이다. 요즘에는 붕어빵이다 잉어빵이다 뭐다 해서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예전에는 오로지 국화빵뿐이었다.

일각에선 이 국화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단다. 이유는 국화가 일본의 국화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빵이 없었다. 한민족은 주로 떡을 해 먹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이 땅에 밀가루 빵을 퍼트렸던 것이다. 국화빵은 일본의 국화를 은밀하게 퍼트린 장치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붕어빵이 있다면 일본에는 도미빵이 있다고 한다. 도미처럼 생긴 풀빵인 모양인데, 이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붕어로 변신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오게 되었단다. 이제는 붕어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잉어빵까지 나온단다. 배 부분에만 앙코가 들어간 붕어빵과는 달리 머리끝에서 꼬리까지 앙코가 가득 찬 잉어빵이 인기라니 세태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왜 아직도 풀빵이 인기 있을까? 살기도 웬만큼 나아졌고, 고급 밀가루로 만든 다양한 빵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왜 아직도 서민들은 붕어빵이나 잉어빵, 국화빵 같은 풀빵을 못 잊어 할까?

그것은 아마도 풀빵에 서린 잔잔한 인간미 때문일 것이다. 또한 풀빵에 서린 그리움과 추억 때문일 것이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던 겨울날, 호호 불어 가며 먹던 풀빵의 진한 소박함을 못 잊어서 그런 것이다. 분명 풀빵은 앞으로도 가을과 겨울의 풍경을 드러내는 순진한 추억이 될 것이다.

풀빵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정이 애잔하게 녹아 있었다. 서민들이 풀빵을 만들고, 서민들이 풀빵을 사먹는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아름다운 미덕이 풀빵에 곱다시 스며 있었던 것이다.

다시 옛 추억을 떠올려 본다. 풀빵 장수 주변에서 늘 얼쩡거리던 여덟 살 아이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창가에 아롱지며 나타난다. 그 시절, 그 추억의 세레나데. 세월은 그 순진한 아이를 중년의 창가로 데려가고 말았다. 풀빵에 담겨 있는 담백한 그리움과 함께.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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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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