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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가 여기다 오줌 싸지 말랬지!”

친구에게 안나와 꽃님이를 전해 받은 기쁨이 가시도 전에 분노가 밀려왔다. 집 안 이곳 저곳에 안나와 꽃님이가 싸놓은 배설물들을 보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개니까 당연한 것이라며.

하지만 TV 프로그램 등에서 이런저런 훈련을 통해 화장실에 가서 배설하는 강아지들을 본 적이 있기에 점점 ‘이 녀석들을 훈련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이나 같이 있을 것인데 여기저기 아무 데나 강아지들이 배설하면 분명 내가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첫 번째로 생각한 방법이 감금이다. 아무 데나 몹쓸(?) 짓을 하면 베란다로 내쫓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로 꽃님이가 걸렸다. 밖으로 나가 보니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 있었다. 좀 춥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집 안 곳곳에 실례(?)를 해서 밖에 가두었으나, 천진난만한 눈빛에 그만.
▲ 갇힌 꽃님이 집 안 곳곳에 실례(?)를 해서 밖에 가두었으나, 천진난만한 눈빛에 그만.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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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사나이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 하지 않았던가. 집 안을 더럽힌 죄로 굳게 마음을 먹고 바람이 쌩쌩 들어오는 베란다로 꽃님이를 내보냈다. 아니 감금했다. 그러나 이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간절하게 나를 쳐다보는 눈빛,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니 차마 오랜 시간 가두어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집 안으로 들이고 말았다.

‘그래 개니까.’

이렇게 마음을 다 잡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 강아지들을 향한 분노의 불길이 활활 솟아올랐다. 그새 또 여기저기 실례를 한 것이었다.

“이것들이! 화장실에다 싸라고! 몇 번을 말해줬어! 문도 화장실밖에 안 열어놓았잖아!”

어려서 사촌형이 자기 개는 화장실 문만 열어놓으면 화장실을 찾아간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아직까지 기억하기에 나 역시 그렇게 했것만 안나와 꽃님이는 그런 나의 배려가 안중에도 없었다.

벌을 세워 집안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로 결심했다!
▲ 벌 서는 강아지들 벌을 세워 집안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로 결심했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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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중대한 결심을 했다. 강아지들을 벌 세우기로 한 것이다. 예전에 친구 핸드폰에 강아지들이 벌서는 모습이 찍힌 것을 본 적이 있기에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뭣도 모르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안나와 꽃님이를 잡아다가 벽에 기대고 세웠다. 친구 핸드폰에서는 분명히 두 발로도 멀쩡히 잘 서 있었는데 내가 세우니 픽픽 이러면서 쓰러지는 것이었다.

‘원래 못 서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친구 핸드폰에 있는 그 사진은 무엇이란 말인가. 친구가 가끔 강아지들을 혼낼 때 슬리퍼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슬리퍼를 사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를 세운 후 슬리퍼를 세로로 세워 바닥을 딱딱 치니 강아지들이 두 발로 선 자세로 움직이지를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려오려다 슬리퍼를 보고서 등을 벽에 딱 붙이는 것이었다.

‘오호라! 너희들이 나를 농락했단 말이지!’

벌서는 강아지들을 보니 더욱더 오기가 발동했다. 그러나 벌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신념이었기에 작은 것을 싼 녀석에는 5분, 큰 것을 싸면 10분 벌주기로 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런대로 벌을 잘 서던 녀석들이 계속 벌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반항하는 정도가 강해졌다.

꽃님이는 앞 쪽에 숨었으나 안나는 깊숙한 곳에 숨었다.
▲ 소파 밑으로 숨은 두 강아지 꽃님이는 앞 쪽에 숨었으나 안나는 깊숙한 곳에 숨었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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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다 벌을 세우려고 하면 강아지들이 눈치를 채고 도망가고 숨는 것이었다. 꽃님이는 주로 소파 밑으로 숨었다. 대부분 손이 닿는 위치에 숨었기에 질질 끌려 나와 다시 벌을 서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꽃님이보다 뚱뚱한 안나는 보다 지능적이었다. 허나 몸집이 뚱뚱한 것이 비애였다. 한 번은 나를 피해 마구 달아나 부엌 싱크대 밑으로 숨어 들어가려 했으나 뚱뚱한 몸집 때문에 중간에 끼어 결국 내게 다시 잡혀 벌을 서야 했다.

그 후 다소 영리해진 안나는 꽃님이처럼 소파 밑에 숨기 시작했고 그것도 손이 안 닿는 깊숙한 곳에 숨었다. 허나 내가 누구인가? 그런다고 봐줄 수 없었다. 친구가 가르쳐준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살충제를 뿌리는 시늉만 해도 강아지들이 기겁하고 도망친다는 것이었다.

안나를 방향제로 위협했으나 꿈쩍도 안했다.
▲ 소파 깊은 곳에 숨은 안나 안나를 방향제로 위협했으나 꿈쩍도 안했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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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밑으로 들어간 안나에게 그런 시늉을 했으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영악한 놈!’

실제로 뿌려 볼까 했으나 살충제를 차마 뿌릴 수 없어 방향제로 대신했다. 처음에 움찔하던 안나였지만 방향제가 워낙 향기가 좋은지라 역시 미동도 안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바로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 것이었다.

소파에 숨은 안나를 먹을 것으로 유인해 끌어냈다.
▲ 먹을 것으로 유인하기! 소파에 숨은 안나를 먹을 것으로 유인해 끌어냈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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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주인공인 만화에서 적을 유인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인 먹이계(?)가 확실히 실전에서도 효과가 있었다. 안나가 좋아하는 쥐포로 유인하자 바로 달려나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안나는 쥐포는 고사하고 벽에 딱 달라붙어 벌을 서야 했다.

그렇게 계속 당하던 안나였지만 내가 한 방 먹기도 했다. 침대 쪽으로 숨어 들어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게 한 것이었다. 이렇게 강아지들과 숨바꼭질이 계속 되고 나면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을 기어이 발견한 안나! 저 하얀 것이 안나다.
▲ 침대 밑으로 숨은 안나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을 기어이 발견한 안나! 저 하얀 것이 안나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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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친구가 빨리 와서 강아지들을 다시 데려갔으면 하는 생각이 수십 번도 더 들었다. 그것은 나날이 벌서는 횟수가 많아지는 강아지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어느 날인가 꽃님이는 내가 부르자 마치 기듯이 뒷발만 움직여 조심조심 다가왔다.

한 번도 강아지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그 모양이 겁에 질린 듯하여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뿐이랴. 벌을 너무 자주 서다 보니까 힘들었는지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가며 자세를 바꾸는 것을 보면 우습기도 했지만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뒤돌아서면 밟히는 그 녀석들의 예술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마음이 저 멀리 도망가곤 했다. 그렇게 강아지들과 아옹다옹하는 것이 지쳐가는 사이 일주일이 어느덧 다 갔다. 드디어 친구가 강아지들을 데려갔을 때는 그야말로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벌은 서기 싫고, 내려오면 나한테 혼날 것 같아 어쩡쩡한 자세로 벌 서는 중
▲ 자세 바꾼 강아지들 벌은 서기 싫고, 내려오면 나한테 혼날 것 같아 어쩡쩡한 자세로 벌 서는 중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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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며칠 안 가 안나와 꽃님이가 무척 보고 싶었다. 아마도 그렇게 혼나고도 언제나 내 옆에 있으려 했기 때문인가 본다. 어느 날인가 벌도 서고 나한테 호되게 야단맞고도 안나와 꽃님이는 내 발밑에 와서 잤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애완동물들에게 강한 정이 느껴졌다. 그러니 다시 보고 싶을 수밖에.

하지만 다시 애완동물을 키우지는 않을 거다. 지난 일주일간의 경험을 통해 애완동물을 키울만한 그런 여유로운 마음이 내게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가 한 번 더 맡아달라고 한다면 기꺼이 맡아줄 생각이다. 고생을 하긴 했지만 누군가를 돌보는데 있어서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도 아닌 강아지인 안나와 꽃님이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 배움의 기회는 흔한 게 아니지 않은가. 다음번에 오면 반드시 화장실 가는 법 교육 시키리라!

그렇게 속을 썩여도 항상 내 곁에 있는 것을 보면 미워할 수가 없다.
▲ 언제나 내 곁에 그렇게 속을 썩여도 항상 내 곁에 있는 것을 보면 미워할 수가 없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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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양중모,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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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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