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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 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창세기 11장 1절)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는 성경 문구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말씀과 함께 인간의 교만을 심판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명박 후보가 국어를 영어로 강의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과연 언어란 무엇인가? 특히 영어란 무엇인가? 국어를 영어로 강의해야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 영어가 아니면 정말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을까?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논란이 있는 지금 책세상이 펴낸 한학성의 <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는 한번 읽어볼만 한 책이다. 영어가 가진 힘이 한글보다 약하다면 이런 책이 나올 필요가 없다.

한학성은 1998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불어닥친 영어공론화를 3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복거일의 주장, 문인들 논쟁, 그리고 일본의 공용화 로 구분하고 있다. 영어공용어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이제 세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이며, 기본적인 생존수단이라 말하고 있다. 한학성은 복거일이 지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한다.

"세계화 시대의 국제어인 영어를 우리의 모국어로 삼아 앞으로 출현할 '지구제국'에서는 중심부로 진출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영어를 당장 우리의 모국어로 만드는 불가능하므로, 잠정적으로 영어를 한국어와 함께 우리의 공용어로 삼은 후에 궁극적으로는 모국어로 삼아야하며, 민족어인 한국어는 다른 민족어와 함께 장차 '박물관 언어'가 될 것이지만 이는 전문간들이 연구, 보존하면 된다는 의견을 펴력했다."(본문20쪽)

복거일의 주장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과연 지구제국이 출현할 것인가? 이런 주장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다. 지구제국이 출현해도 지구제국 공용어가 반드시 영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과연 중심부만이 살길이며 주변부는 살길이 아닌가? 주변부가 되어야만 민족적 자긍심이 될 수 있을까? 지구제국 출현과 주변부라는 의미도 연관성이 별로 없다.

한학성은 우리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어공용어화 논란을 몇 가지 소개하고 있다세계주의와 민족주의에서 복거일의 주장, 고종석이 영어 공용어화를 반대한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 집단이 독점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뜻이라고 단정한 들어 평등주의 관점에서 영어 공론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평등주의와 계급주의, 외래어 수용주의와 민족어 순결주의의 공용어화 논쟁주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공용어' 개념을 통하여 공용어화른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미국도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다. 미국에서 공용어 개념은 영어를 미국의 유일한 공식 언어로 지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대다수 국가 다양한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과연 영어가 공용어가 되면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공용어가 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한학성을 강조한다.

사실 공용어는 한 국가 안에 여러 민족이 공존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민족은 공용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어를 하지 못하여 힘들어하는 한국사람은 없다.

한학성은 복거일의 영어 공용어론을 기본적으로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못하는 이유가 영어공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전제 말이다. 한학성은 영어를 잘못하는 이유를 영어 공용어가 아니라 우리나라 영어 교육 문제라 말한다. 영어 교사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공용어의 선행이 아니라 영어 교육이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됨을 말하고 있다.

영어 교육 개혁은 영어 시간는 영어로 가르쳐야한다. 영어 발음, 영어와 접촉 시간을 늘리는 방법들이 있다. 영어교사가 영어 발음 하나 정확하게 구사하지 못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인 교육정책이다.

한학성의 <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를 읽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영어는 국제어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어교육개혁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공용어, 모국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허구이며, 거짓말이라는 사실이다. 영어는 외국어다. 이 전제는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미국 사람이 아니다. 미국에 태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세계제국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공용어, 모국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그리고 한학성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 깊숙히 느낀 것은 '과연 영어만이 세계어가 될 수 있는가'이다. 복거일에게 정말 묻고 싶은 말이다. 앞으로 30년 후 영어만 지구상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어쩌면 그 때는 '한국어'는 아니더라도 '중국어', '인도어', 아프리카의 한 부족의 언어가 '세계어'가 될 수 있다. 그런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세상 일은 모르지요. 영어를 잘하면 좋다. 한국어만 할 줄 아는 것과 지식 습득에서 분명 앞서 나갈 수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충분히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며 그 지식을 통하여 사회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유익을 줄 수 있다.

영어 공용어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어를 알게 하고,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게 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통하여 더 나은 지구화를 위하여 앞장 설 수 있어야 한다. 영어만 존재하는 지구가 과연 사람이 살맛나게 살아가는 지구일까? 끔찍하다.

덧붙이는 글 | <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한학성 | 책세상 | 2000년 10월



태그:#영어, #공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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