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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올해 한번만 하고, 제가 (지지후보) 선택해서 따라 오라고 하면, 그거 되겠어요? 아마 (조합원들은) 지도부 몇명이 (다음 총선에) 금배지나 달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코웃음치고 따라오지도 않을거야."

 

그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목소리 톤도 처음보다 더 올라갔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그를 만났다. 계속되는 지방 순회와 강연에도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사기'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워낙 거침없는 입담으로 잘 알려진 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설적인 말투, 두루뭉술한 답변도 없었다.

 

노동계 내부나 정부, 재계를 향한 비판 수위도 여전히 높았다. 변화와 혁신에 대한 절박감도 토로했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노총의 총투표를 통한 지지후보 확정이라는 '실험'에 대해 가능성과 한계를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조합원들이) 사기를 당하더라도 당해봐야 한다"

"이미 판세가 끝났다고? 어차피 45대45 싸움이야"

"이명박 후보가 선호도가 1위지만,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으로도 1위야"

"누가 진정성이 있는지는 다 안다"

 

"판세가 끝났다고?... 어차피 45대45 싸움"

 

대선 후보들을 평가하는 발언에선 옆 자리에 있던 노총 간부들이 끼어들기도 했다. 한 간부가 "총투표를 앞둔 시점에 위원장의 발언 강도가 너무 세다"며 가볍게 의견을 내놓은 것.

 

이 위원장은 "허허"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대중의 선택은 항상 올바르다"면서 "대중의 목소리, 요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듣고 따르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을 만난 것은 지난 15일 저녁 8시를 넘긴 시각. 제주도에서 갓 올라온 후였다. 그는 "원래 오늘 올라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내일(16일) 갑자기 산별 대표자회의가 잡혀서…"라며 "앞으로도 계속 지역을 돌아야 한다"고 말을 시작했다.

 

- 현장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어떤가요?
"우리가 이번에 정책연대를 하는데, (조합원) 참여를 높이는게 쉽지 않아요. 근데 지금 보니까 벌써 50만 가까이가 휴대폰 번호가 적힌 조합원 명부를 냈더라고. (한국노총은 이후 대선후보와의 정책연대를 조합원 휴대폰 투표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관심이 상당히 높고, 이것이 노동운동사나, 한국노총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고."

 

그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지지후보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 자체를 두고 한 말이다. 과거 대선에선 지도부 차원에서 지지후보를 결정했다. 상징성만 있을 뿐이었다.

 

- 요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대세론이 많던데요.
"섣불리 그런 이야기가 많더라고. 이미 판세가 끝난것 아니냐는 등. 난 판세가 끝났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차피 45대45 싸움이예요. 지금 여권이 혼란스럽고, 지리멸렬하다 보니까, 저쪽(이명박)에 거품이 아직 들어가 있을 뿐이예요."

 

"사기를 당하더라도 당해봐야 한다"

 

그래서 직접 물었다. 한국노총의 정책연대가 결국 이명박 후보를 밀어주기로 끝나는 것 아니냐고. 실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놓고 이야기했다. "노총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 위원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곧장 답이 돌아왔다.

 

"이번 정책연대는 시작일뿐이예요. 다음 대선, 2012년, 2017년까지 계속 가는겁니다. 영구적인 정책연대로 가기 위한 첫 단추라는 것이죠. 조합원이 직접 선택해서, 느끼는 거고, 나중에 기만당했다, 사기당했다고 하면 2012년에 찍지 않겠죠. 우린 지금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대중적 훈련을 하고 있는겁니다."

 

다시 물었다.

 

- 어차피 지지후보를 결정해도, 표로 연결돼야 하는것 아닌가요. 표가 안 쏠리면 정책연대 의미도 없을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세가지를 이야기했어요. 조합원 명부 내고 정책연대에 참여해라, 그리고 총투표 기피하지 말고 참석해라, 마지막으로 12월19일에 총투표 결과에 따르라, 이것이 바로 진정한 훈련이죠."

 

- 훈련이라도, 참여와 투표로 확실히 이어져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알죠.
"지도부 몇명이 결정하고 하면, 되겠어요? 그러면, 아마 (지도부가) 다음 총선에 금배지나 달려고 하는거라고 생각할 것 아니예요. 이제까지 우리가 언제 총선, 대선에서 (정책연대를) 고민해본적이 있어요? 이번에 설사 총투표 결과 안 따르더라도, 고민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것이지."

 

 

"이명박 후보가 선호도 1위... 하지만 사고방식은 구태"

 

한국노총 전체 조합원은 86만5761명. 이 가운데 조합비 등을 납부하는 수는 63만1104명이다. 지난 15일까지 총투표를 위해 확보한 조합원 명부는 모두 45만1738명, 이번달 말까지 50만명이 넘을 것으로 노총은 예상하고 있다.

 

- 총투표 날짜는 정해졌습니까.
"아마 11월 말쯤해서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함께한 노총 간부를 향해) 일정이 나왔나? 투표 결과를 가지고 우리가 선거운동도 할 시간이 있어야 하니까…."

 

노총은 다음날 11월28일부터 12월7일까지 열흘동안 총투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투표 결과는 12월 9일에 발표된다. 대선 투표 열흘전에 노총말대로라면, 50만표의 향방이 가려지게 되는 셈이다. 막판 선거판에 큰 영향을 줄수도 있다.

 

-  이명박 후보가 이 위원장에게 노총의 사회개혁적 조합주의 노선이 자기와 똑같다고 하던데요.
"(담배를 다시 물면서) 정치인이 무슨말을 못하겠어. 아까도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하던데, 만약 (조합원들이) 이명박 후보로 한다고 했을때, 그쪽에선 우리와 정책연대에서 상당히 부담을 느낄거야. 노동계와 연대한 정당이면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어요. 또 그렇게 변화시켜 나가는 것도 유효한 부분도 있을 수 있고요."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노총 대의원 선호도 1위가 이명박 후보였는데, 제일 싫어하는 정치인에서도 1위를 차지했어요. 그동안 이 후보의 노동관련 발언을 보면, 노동배제적이거나, 노동자를 파트너로 여기는 미래지향적 제안이 없었다고 봅니다. 노동을 배제한 법과 원칙 이야기는 과거 사용자들의 사고 방식이죠."

 

- 다른 후보들도 보면, 대개 다 노총과 정책연대를 하겠다고 하는데요.
"조합원들도 총투표 결과를 따르겠다는 것이 80%에 가까워요. 조사해보니까. 여러 후보들도 정책연대를 약속하겠다고 나오겠죠. 하지만 그 부분에서 누가 훨씬 진정성이 있는지 저는 압니다. 여하튼, 우리 조합원들도 사기들 당하더라도, 당해봐야 합니다."

 

 

"진정성 있는 후보는 다 안다"

 

사기를 당해보라는 그의 말속엔 현실적인 한계가 내포돼 있었다. 그는 "우리 현실이 아직도 지역주의 성향이 강하다"면서 "지역에 가서 '당신들 그런 입장으로 가면 사기당할 수밖에 없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대신 후보들의 진정성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었다. 다시 물었다.

 

- 진정성있는 후보가 누굽니까.
"(웃으면서) 진정성이라는게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내놓은 것을 보고, 그리고 이번에 만나 보고 느낄 수 있는거지. 단지 선거판에 나온 정책만 따지면…, (후보들마다) 진정성에서 큰 차이가 있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즉답과 직설적인 화법의 그였지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약간 에둘러서 물었다.

 

- 그동안 웬만한 후보는 다 보셨을 것이고, 어느 정도 정리되는 후보가 있을텐데요.
"내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졌던 후보는 문국현 후보였어요. 솔직히 예전엔 잘 몰랐는데, 최근에 세 번 정도 만나면서 단둘이 3시간 정도 이야기도 해봤고. 정동영 후보는 예전에 하루저녁을 같이 지낸 적이 있었죠. 뭐, 행사장 등에서 만난 횟수는 많았지만 제대로 이야기해 본것은 그때였고. 이명박 후보도 여러번 얼굴은 봤지만, 내 얘기를 5분 이상 전달해 본 적이 없어요."

 

이런 속내를 알았을까. 최근 이명박 후보는 부쩍 한국노총 모임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다. 지난 21일 노총 체육대회에도 직접 참석했고, 이 위원장과 막걸리 '러브샷' 모습도 연출했다. 24일 오후엔 노총 택시노련 간담회 자리에도 참석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문국현 후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이에 걸맞는 노사관계의 정립에서 문 후보의 가치관과 방향에서 공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사람 이야기가 국제수준에 맞는 노동운동과 기업경영을 하라는 거잖아요. 정부와 기업의 부패 청산, 노동권 등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부분 등, 상당히 우리와 방향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진정성면에선 저쪽(이명박후보)보단 낫지."

 

"대중의 요구와 목소리를 따라야..."

 

위원장 회의실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화제를 돌렸다. 민주노동당과의 정책연대 가능성 여부였다. 그는 "수권정당의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고, "노동자 서민의 지지도 제대로 못받는, 반쪽짜리 노동자당 수준을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비정규직법 재개정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이번 국회에선 재개정 없다는 발언을 소개하자, "정부는 항상 그래왔다"고 맞받아 쳤다. 그의 말이다.

 

" (비정규직 법) 문제가 있으면 빨리 보완해 나가는 것이 맞아요. 지금 노사정위원회 안에 특별위원회가 있는데, 이것이 가동이 안돼요. 사용자쪽에서 협조를 하지 않아서. 물론 금방 만든 법을 바로 바꾸기 어려울수도 있죠. 하지만 보완책이 필요하면 만들어야 합니다."

 

법 시행이후 기업들이 악용하는 외주화 등에 대한 보완책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정부가 너무 일방적으로 노사 모두를 끌고 가려고만 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또 그가 줄곧 이야기해 온 과거 노동운동의 실패와 반성, 혁신에 대한 소신도 여전했다. 과거 한국노총의 노사협조주의가 어용으로 비판받는 것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지겠다고 했다. 민주노총의 전투식 투쟁에 대한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선을 그었다. 민주화 과정에서의 성과와 함께 90년 후반들면서 대중성을 상실한 실패한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다.

 

마지막으로 대선의 시대정신을 물었다. 어느새 그의 책상엔 담배꽁초가 꽤 쌓였다.

 

"시대정신, 참 중요합니다. 보스정치가 끝났다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도 요즘 보면 보스 역할을 하고 싶어서 그런지, 여권 후보들을 그냥 총으로 쏴버리고, 고건, 손학규, 정운찬, 정동영 후보까지….(웃음)

 

한나라당도 이명박 한 사람의 보스정치로 돌아가면, 한국사회는 망하는 길로 갑니다. 대중속으로 가야하죠. 대중의 요구, 목소리가 무엇이냐 듣고, 거기에 따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태그:#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정책연대, #이명박,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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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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