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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란 누구인가?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선비를 '소도의 제단 앞에서 맹세를 올리는 젊은이'라 했다. 소도는 우리 민족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제례의식 장소였는데 이러한 의식을 주재하는 선비는 문무를 겸비한 이상적인 사람이니 선비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선비론이 예찬을 받고 있다. 시대가 암울하니 그렇다.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 선비론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복고적인 선비예찬론을 주장하는 것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사상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는 조심스럽다.

이유는 선비 사상은 유교사상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세속적 가치가 아닌, 인간의 성품에 내재된 '의'를 추구하는 정신이며, 이 가치를 위하여 죽음까지 바친다. 인간에 내재된 성품이 의만 있는 것도 아니며, 유교사상만이 최고는 아니다. 유교사상에만 근거를 둔 선비론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상과 체제를 통한 선비론도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1998년에 나온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는 선비사상으로 체화된 삶을 살았던 23명의 조선선비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시대에 필요한 선비사상이 무엇인지 한 번 반추하기를 원한다.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 효형출판사
선비란 무엇인가?

“선비는 신하로서 복종과 충성을 다해야만 하지만, ‘의리’로써 맺어진 바 본분을 결코 잊이 않는다. 임금의 잘못에 대해 간언도 하며, 바른 도리가 실현될 가능성이 없거나 직책이 도리에 합당치 않는다고 판단되면 물러날 수 있는 자세, 이것이 선비 본연의 모습이다.” (본문14쪽)

우리 시대는 사상과 철학에 따라 실천하지 않는다. 배움의 때에 배웠던 사상은 현실 사회에 적응하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선비론을 조선 시대 유교사상이라 비판할 수 있지만 선비들이 삶 속에서 자신들의 철학과 사상을 녹였던 것은 본받아야 한다. 선비는 학문에 증진했다. 도리를 연마했다.

조광조를 사람들은 광자(狂者) 곧 미친 사람, 화태(禍胎) ‘화를 낳는 사람’이라 했다. 이상주의자, 원칙주의자였던 그를 미친 사람, 화를 낳는 사람이 불렀던 이유는 그 시대가 이 시대처럼 매끄러운 선비가 날리고 요령이 판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리학에서 이상 사회로 생각했던 ‘요순 삼대’ 정치만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관직에 나아가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

“그는 사회 모순 심화의 근본 원인이 사장을 중시하고 도학을 경시하는 학문 풍토, 예의 염치를 잃어버리고 이욕에 빠져드는 사회 풍토에 기인했다고 보았다. 이같은 잘못된 분위기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도학을 높이고 인심을 바르게 하며 성현을 본받고 왕도정치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문34쪽)

하지만 그는 좌절했다. 연산군과 중종에 이르는 시대는 이기에만 눈이 혈안이 된 껍데기 선비들만의 세상이었다. 그 세상은 조광조의 혁신을 받아줄 수 없었다. 이유는 그들이 선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광조가 걸어갔던 선비의 길을 반추해야 한다. 이 시대도 개혁을 외친지만 그들은 주류가 되는 순간부터 개혁을 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이 충돌할 때 사람들은 항상 현실을 중시한다. 현실 중시는 다른 뜻이 없다. 자기 이익과 부합되기 때문이다. 이상은 좋은 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내 이익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있다. 하서 김인후가 그 한 사람이다.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에게 학문을 같이했던 사람으로, 유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국가 경영의 중심 무대인 정치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고 특히 군왕과 이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구현을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등극하자 실현하고자 했지만 인종이 1년 만에 승하하자 실현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조선은 또 다시 피 세상이 되고 만다. 뒤틀린 현실, 충격, 실의, 분노, 좌절이 뒤섞인 그는 <혼돈주가(混沌酒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박잔 가득 부어 부구(浮邱)님께 읍을 하며
만고라 불평에 찬 가슴을 씻어버리네
한 번 마시니 문득 신령이 통해져서
우주가 열리련다 오히려 몽롱하고
두 번째 마시니 자연과 어울려라
………

손 들어 혼돈의 세상에 춤을 추고
귀로는 혼돈의 바람을 듣는다오
넓고 큰 취향(醉鄕)엘 나 끝내 와 있으니
……” (76쪽)


얼마나 아팠을까?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 앞에 그는 얼마나 울었을까? 김인후 사상 자체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이상이 현실에서 좌절될 때 분노하고 슬퍼하는 조선선비의 마음이 이 시대에는 없다. 조변석개(朝變夕改)같은 말 바꾸기, 갈아타기, 탈당,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시대를 점령했다. 그러니 선비가 있을 수 있나. 청렴과 결백은 사라져 버리고, 부패와 섞은 내 풍기는 껍데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권력을 잡겠다고 하니. 오히려 김인후가 살았던 시대, 조광조가 살았던 시대가 더 나은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학문과사상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당쟁은 당파주의가 강하지만 자신이 지향했던 학문과 사상에 바탕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사상과 학문은 없고, 이익에만 몰두한 당파성만 남았다, 그러니 껍데기일 뿐이다.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는 또 청렴과 도덕, 언행으로 실천한 대문장가 영재 이건창, 올곧은 기개와 서릿발 같은 붓끝의 '반골' 매천 황현, 민중혁명으로 조국 독립을 꿈꾼 단재 신채호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매천 황현이 조국 운명이 일제반도에 넘어간 후 남긴 절명시는 조선 선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그 모습 찌푸리니 / 무궁화 나라는 이미 사라졌구나 /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 돌이켜보니 / 문자(文字)나 안다는 사람 인간되기는 어렵겠구나 ....” (232쪽)

그는 그렇게 갔다. “세상이 일이 이 꼴인데 선비가 죽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오늘 죽지 않으면 앞으로 틀림없이 감당치 못할 날이 있을지니...” 매천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 문자나 외우고, 책 머리에 앉아 공자만 외치던 자들이 나라가 망하니 그냥 죽었다고. 인민과 같이하지 못했고, 인민을 안아주지 못하고, 시대 흐름을 따르지 못했기에 나라가 망했다고 돌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매천은 변절하지 않았다. 나라를 사랑했다. 이 시대 오히려 매천이 간 길이 더 당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교만 최고 덕목, 왕도정치만 백성을 살리는 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 이상과 원칙, 사상과 학문, 청령과 결백에 충실했던 조선선비들의 마음가짐은 필요하다. 다양한 현실에서 자신이 가진 사상을 실현하는 일에 충실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고, 사회와 나라, 인민을 위하여 어떤 경우는 자신을 버렸던 그들이 간 길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덧붙이는 글 |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정옥자 금장태 이광표 지음 ㅣ 효형출판사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정옥자 외 지음, 효형출판(1998)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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