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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보면 '요리 강좌'가 넘친다. 요리를 못 하는 나를 위해서 이런 정보들은 정말 고맙다. 하지만 나는 딱 한 가지 불만인 것이 있다. 이런 정보들에서 보이는 음식들은 그야말로 화려하고 먹기 좋아 보인다. 또한 그대로만 하면 다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하다 보면 어디 그렇던가. 그래서 나는 '언젠가 성공할 중모의 요리 강좌'를 쓰고자 결심했다. 본래 남을 본받는 것도 중요하나 '타산지석'도 분명히 필요한 법이다. 남이 잘못한 것을 보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 터. 역사를 배우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언젠가 성공할' 실패 투성이의 요리 강좌를 이곳에 풀어놓고자 한다. 그리고 그 요리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주제넘게 한 마디 정도 덧붙이자고 한다. <기자 주>

 

'참치 야채죽!'

 

본래 거의 생쌀과 가까울 정도로 된 밥을 좋아하는 나로서 죽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허나 주말에 놀러 오기로 한 친구가 '참치 야채죽'을 먹고 싶다기에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일단 준비물은 오이, 호박, 당근, 참치, 쌀, 양배추 등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재료에 대한 여러 설명이 나왔으나 그대로 따라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았다. 그래서 냉장고에 있는 채소들을 다 꺼내놓았다.

 

"아싸!" 원래 채소보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이번 기회에 채소들을 모조리 퇴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허나 이를 어찌하나. 가장 중요한 참치가 없었다. 그렇다면 사오는 수밖에. 재빨리 집 옆에 있는 대형 마트로 달려갔다.

 

그리고 참치캔을 집어들려는 순간, '아 한국 참치 캔은 너무 비싸!'라는 생각이 들었다(난 중국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옆을 보니 필리핀 참치 캔이 보였다. 우리나라 참치 캔의 1/3 수준의 가격이었다. 광동식 참치라는 표현이 눈에 거슬렸으나 뭐 어떤가. 싸면 그만이지! 참치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요리에 들어갔다.

 

'참치 야채죽'을 만들 때 할 첫 번째 일은 바로,

 

①쌀 불리기!

 

쌀보다 세 배 정도 많은 물을 넣고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완전히 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한 내게 이게 정말 고역이었다. 아니 밥 한 끼 먹자고 1시간이나 기다리라니 이게 말이 될 법한 소리인가! 마음 같아서야 한 10분 만 쌀을 물에 담그고 빼고 싶었지만 그러면 분명 말 그대로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 참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쌀을 물에 불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쌀을 물에 불리는 동안 두 번째로 할 일은 바로

 

②채소 썰고 다지기!

 

"뭐 이까짓 것쯤이야!"

 

그냥 오이랑 당근을 썰고 넣으면 되는 것이니 별 부담감 없이 칼로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잘게 잘라야 한다고 인터넷 요리 고수들이 그리 설명해 주었건만 도통 잘게 자를 수가 없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잘게 자른다는 것인가! 잘게 자르다가 손을 다 밸 지경이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그냥 큼직하게 썰린 채소들을 향해 분노의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잘리기는커녕 칼 양옆에 채소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성질만 돋웠다.

 

'그래 뭐 큼직하게 썰리면 씹을 거 많고 좋지 뭐.'

 

더 이상 잘게 썰리지 않자, 그냥 두기로 했다. 뭐 큼직하게 먹으면 좀 어떤가. 자 그러면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 번째로 할 일은 바로

 

③채소 볶기!

 

어려울 것이 없었다. 기름을 두르고 채소를 볶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내 생각을 가볍게 응징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지글지글 끓으면서 튀기는 기름들이었다. 아! 삼겹살 구워 먹을 때만 기름들이 튀겨 내 손을 뜨금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만 채소들도 그러하다니!

 

그러나 질 수 없었다. 곧바로 고무장갑을 끼고 다시 채소들을 무자비하게 뒤섞기 시작했다. 채소까지 볶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쌀이 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당장이라도 쌀을 꺼내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며 애써 참고 한참 후에 쌀을 꺼냈다. 쌀을 꺼내서 해야 할 일은 바로

 

④쌀 볶기!

 

허 참! 물에 들어가서 탱탱 불려 놓은 다음 다시 물에 들어가 끓은 녀석인데 볶아야 한다니 거 참 번거로운 요리 방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쌀을 불리기만 했지 생쌀에 가까우니 볶아야 할 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채소를 튀길 때 이미 당한 것이 있어 이번에는 아예 장갑을 끼고 쌀을 볶기 시작했다. 쌀 볶는 냄새가 의외로 고소했다. 먹어보고 싶었다. 아, 그렇지! 인터넷 요리 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쌀을 볶는다 해도 속은 안 익은 상태라 했다.

 

이런 것은 먹어서 확인하는 수밖에. 볶는데 완전히 익지 않을 수도 있을까 싶었지만, 실제로 약간 생쌀 느낌이 나긴 했다. 신기했다. 어쨌든 드디어 요리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바로

 

⑤채소 넣고 참치 넣고 물 넣고 끓이기!

 

 

자, 아까 볶은 채소를 넣어주시고, 물을 넣어주시고, 이제 참치를 넣어주시면! 아, 맞다. 참치 통조림을 아직 뜯지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채소들을 단번에 제압해줄 참치님(?)이 드디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헉!" 그야말로 거짓말 보태지 않고 내 입에서는 이런 소리가 나왔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파는 참치 캔처럼 고운 속살을 드러낸 물렁물렁한 것이 아닌 마치 장조림을 연상시키는 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뭐야!"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광동식 참치라고 하던데, 광동식 참치는 이렇게 만드는가. 대체 왜! 몇 푼 아끼고자 싼 참치를 산 것이 결국 요리를 망치게 하게 되는 것일까. 극도의 실망감이 밀려왔으나 견뎌보기로 했다.

 

어쨌든 이것도 참치 아닌가. '참치 야채죽' 맞다. 맞다고요! 스스로 이렇게 억지로 우기며 장조림처럼 뻣뻣한 참치 통조림을 무려 두 캔이나 채소가 고이 들어가 있는 물속에 박박 긁어 모두 집어넣었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할 일만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⑥마지막으로 쌀 넣고 한 시간 동안 끓이기

 

채소랑 참치는 차가운 물에 사정없이 넣어 버리라는데,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쌀만큼은 끓는 물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 여러 요리 고수들의 의견이었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쌀까지 물에 넣고 나서 이제 내가 할 일은 죽이 걸쭉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아까 쌀을 불릴 때보다도 더 긴 시간을 끓여야 맛이 있어진다고 하니 빨리 많이 먹는 나로서는 참 감질 맛나는 요리였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참치 야채죽'을 떠먹어 보니 역시 오래 기다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못 참고 한 숟가락을 떠먹어 보았을 때는 좀 별로다 싶더니 한참을 기다려 끓인 죽을 먹어보니 맛이 괜찮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참치 야채죽'이 준 오늘은 교훈은!  

 

'짧은 시간에 벼락치기 하듯 조금만 노력하고도 제대로 된 성과물이 나오기를 기다리지말아라. 진정한 맛이나 진정한 성과물은 오랜 기간 끊임없고 부단한 노력을 곁들인 기다림 끝에 나온다!'

 

다음번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3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장조림 같이 딱딱했는데 의외로 참치 맛도 괜찮았습니다. 


태그:#참치 야채죽,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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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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