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며칠 전에 어느 대학의 구내에서 뉴라이트 학생단체의 창립대회를 광고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파병반대국민행동 포스터류의 선전물은 대학 내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지만, 보수를 지향하는 뉴라이트 홍보물이 버젓이 대학 구내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뻔뻔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뻔뻔스러움 여하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과학적 사고’에 충실해야 대학생들이 뉴라이트 논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상당히 비논리적인 일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의 뉴라이트는 논리적 측면에서 볼 때에 엉성함의 수준을 넘어 아예 모순의 극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21세기형 보수와 진보'가 필요하다


어느 지역이든지 어느 시대든지 간에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있기 마련이다. 꼭 진보니 보수니 하는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존 질서를 변혁하려는 세력과 옹호하려는 세력 사이에는 늘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구조를 통해 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곳’과 ‘때’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체제는 장소와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뉴라이트는 바로 이 점에서 중대한 착오를 범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보수는 기본적으로 ‘곳’과 ‘때’의 제약을 받는 법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보수는 기본적으로 한반도라는 ‘곳’에서, 21세기라는 ‘때’에 걸맞는 적절한 모습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한국의 보수는 21세기 한반도를 자신의 운명적 전제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운명적 전제를 바탕으로 해서 한국의 보수는 자신의 논리를 정립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뉴라이트는 이 기본적인 전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을까?

 

한국 뉴라이트는 신자유주의니 신보수주의니 하는 영·미식 뉴라이트 개념도 따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21세기 한반도를 전제로 한국적 뉴라이트 개념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이 전제로 삼아야 할 것이 20세기 한반도가 아니라 21세기 한반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뉴라이트는 20세기 한반도와 21세기 한반도의 질적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21세기 한반도의 라이트(rignt)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세기 한반도의 라이트 행세를 하고 있다. 그들이 20세기 한반도의 라이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20세기 한반도는 기본적으로 냉전시대의 한반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의 한국 보수는 냉전체제의 옹호를 목표로 했다. 반면에 같은 시기의 한국 진보는 냉전체제의 해체를 목표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한국의 라이트가 냉전체제를 옹호한 것은 적어도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매우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곳과 때가 바뀌면 진보와 보수의 내용도 달라지는 법이다. 원시공산제 사회의 진보·보수, 고대 노예제 사회의 진보·보수, 봉건제 사회의 진보·보수, 자본주의 사회의 진보·보수 등은 각기 차별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꼭 유의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진보·보수는 적어도 직전 시대의 상황과 관련하여서 만큼은 의견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본주의 시대의 진보와 보수는 적어도 ‘봉건제 사회는 옳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의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 전제 하에서 그들은 자본주의를 해체할 것이냐 아니면 유지할 것이냐를 놓고 대결을 펼쳐야 한다.

 

만약 자본주의 시대의 보수가 봉건제적 가치를 옹호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 시대의 보수가 아니라 봉건주의 시대의 보수라고 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이런 경우 이 보수는 뉴라이트가 아니라 올드라이트라고 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보수는 냉전적 가치에 적대적이어야 한다


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보의 내용 역시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몇 십 년, 몇 백 년이 지나도록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한국에서 진보적 주장을 할 때와 다른 나라에서 그런 주장을 할 때에도 차별성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예컨대, 16세기 초반의 조선사회에서는 조광조의 도학정치가 가장 진보적인 이념 중 하나였다. 조광조는 자신의 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대를 살다 간 선각자라는 것이 현대 한국 유학자들의 평가다.

 

하지만,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조광조의 도학정치로써 대한민국을 개조하려는 인물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16세기에 조선이 아닌 유럽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면, 그것 역시 ‘정신 나간 짓’일 것이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는 곳과 때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다. 20세기 한반도와 21세기 한반도에서도 그 점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세기 한반도와 21세기 한반도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인 20세기 한반도의 보수와 탈냉전시대인 21세기 한반도의 보수 사이에는 중대한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20세기 한반도 보수는 냉전적 가치에 대해 옹호적이어야 하지만, 21세기 한반도 보수는 냉전적 가치에 대해 적대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21세기 한반도의 진보와 보수는 21세기 가치와 관련하여서는 서로가 적이지만, 20세기 가치에 대해서는 동지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대의 진보와 보수가 적어도 ‘봉건제는 옳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의견의 일치를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탈냉전 시대의 진보와 보수는 현존하는 가치를 놓고 싸워야지, 이미 지나간 냉전시대의 가치를 놓고 싸워서는 안 될 것이다. 냉전시대의 가치관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진보와 보수 사이에 합의가 성립해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냉전적 가치관에 매몰된 한국의 '뉴라이트'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뉴라이트라고 자칭하는 인물들은 아직도 냉전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다. 남과 북이 통일의 길로 성큼성큼 가고 있고 또 북한과 미국 역시 화해의 길로 이미 깊숙이 들어섰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대북 적대적 의식에 사로잡혀 한반도 냉전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대의 보수라고 자처하는 자가 봉건주의 시대의 보수를 흉내 내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할 때에 한국의 자칭 뉴라이트는 실은 올드라이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는 현재 뉴라이트가 없는 셈이다.

 

21세기 뉴라이트라면 적어도 탈냉전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현존 질서를 개념화하고 그 개념의 결과물인 ‘현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자칭 뉴라이트들은 아직도 20세기의 냉전적 가치관에 입각하고 있으니, 이들을 두고 어찌 뉴라이트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한국의 자칭 뉴라이트들이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는데도, 일부 대학생들이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칭 뉴라이트들의 논리가 정치하다면야 한번쯤 그들의 말을 경청할 필요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20세기에 사는지 21세기에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1999년 12월 31일, 한국사회는 밀레니엄 버그를 해결하고 이미 21세기 사회로 들어왔다. 그런데 자칭 뉴라이트들은 컴퓨터 연도가 2000년으로 바뀌면 무슨 대단한 사단이라도 날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아직도 1999년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성과 지각이 있는 대학생들이라면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는 자칭 뉴라이트들을 멀리하든가, 아니면 21세기 한반도에 걸맞는 진정한 뉴라이트를 건설하든가 말이다. 아니, 이 두 가지를 모두 다 취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렇게 명확하고 과감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뉴라이트에 귀 기울이는 학생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나 뒤늦게 봉건제적 가치를 옹호하는 올드라이트’, ‘21세기 시점에서 16세기 조광조의 도학정치를 주장하는 올드레트프’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태그:#뉴라이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