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의 <감기>는 따뜻한 책이다. 읽고 나면 작은 손난로를 손에 쥔 것처럼 따뜻해진다. 왜 그런 것일까? <감기>에 옹기종기 모인 소설들이 마음을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소설은 모두 11개. 그 소설들은 다소 엉뚱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첫 작품 ‘구멍’은 로또를 사는 아버지가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에게는 몇 개의 숫자가 ‘운’이 좋은 숫자다. 아들이 태어난 날, 처음으로 마련한 아파트 호수, 사연 깃든 좌석번호 등으로 로또를 사고 있다. 그것이 아버지의 희망일까?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볼까? 한심하게? 아니면 애틋하게? 윤성희의 소설에서 그것은 따뜻한 옛날이야기처럼 흘러나온다. 그래서일까. 딸이 효도한답시고 여행을 보내줬기에, 때마침 아버지가 로또를 못 산 적이 있는데, 그 번호가 당첨번호가 되고 마는데 그조차도 따뜻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슬픈 이야기가 이어져도 그렇다. 소설 속에서 벽지가 “이불 같”은 느낌을 주듯, 소설의 활자는 따뜻하게 감싸준다. 소설 속의 말처럼 “걱정 마라. 그걸 견뎠는데 이쯤이야”라는 말소리가 들리는 듯 하면서 말이다. 두 번째 소설 ‘하다 만 말’은 망한 가족이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이야기다. 물론 속편하게 먹을 것을 먹으러 가는 건 아니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유람하듯 다니게 된다.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딸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정겨우면서도 따뜻하다. 유머도 있다. 내용만 놓고 본다면 지극히 슬픈 것임에도 그렇게 와 닿지 않고 있다. 윤성희의 배려가 빛을 발하는 소설이다. 또 다른 소설 ‘등 뒤에’는 어떤가. 갑자기 찾아온 아이가 ‘김숙자’라는 이름을 대며 아들이라고 말한다. 화자는 김숙자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자 아이는 약속다방에서 만난 김숙자라고 한다. 화자는 더 아리송해진다. 그래서 “얘야, 이 나라에 약속다방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아무래도 난 니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럴 땐 아이는 어찌될까? 울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윤성희는 그들을 정겹게 뭉치게 만든다. 슬퍼야 하는 순간에도 정겹고, 울어야 할 순간에도 정답다. 울어야 할 순간에도 윤성희는 애틋하게 만든다. ‘저 머너’의 부모님은 상황만 놓고 본다면, 자식을 울리게 만들 사람들이다. 아내가 있던 아버지와 남편이 있던 어머니의 연애로 태어났으니 축복받을 수도 없고, 그 후에도 그들은 자식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윤성희는 뻔뻔할 정도로 그것을 부드럽게 설명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더 그렇다. 서른 된 기념으로 근사한 카페를 하나 사준다고 한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였다. 갑작스러운 선물. 그것을 받아 카페라는 곳을 가보니 웬 할머니들이 있다. 할머니들은 주인이 와도 나갈 수 없다며, 오히려 주인행세를 한다. 대결구도이지만 팽팽한 승부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울린다. 너무 잘 어울려서 몇 십 년 동안이나 알고 지낸 사람들 같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심정으로 보게 만들고 만다. ‘이어달리기’는 어떤가. 윤성희의 배려가 가장 빛을 발하는 것으로 뽑을 수 있는 이 소설은 딸들을 키우는 엄마가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터뷰의 목적이야 장사 때문에 한 것이지만 인생살이가 나오다보니 딸 키우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입담이 정답기 그지없다. 읽고 나면, 기분 좋게 웃게 만드는 힘이 녹록치 않다. 다른 소설들도 예외는 아니다. 윤성희가 풀어놓는 정다움은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가슴을 찡하게 하면서 마음을 애틋하게 만드는 것은 또 어떤가. 윤성희의 <감기>는 단편소설의 진수성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감기라면, 백날 걸려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만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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