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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의 문화와 종교라고만 생각했다. 사막, 차도르를 둘러쓴 여인, 석유, 전쟁 ….

 

이슬람교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적어도 그곳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전주에 '이슬람 사원'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호기심과 신기함이 뒤섞였다. 어떤 모습일까. 무엇이 있을까.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마음의 거리와는 달리 이슬람교 전주성원으로 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후동의 빼곡한 주택가에 들어서자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탑과 둥그런 지붕에서 풍겨 나오는 이국적인 이미지는 '이곳이 중동이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히잡을 둘러쓴 여인처럼 수줍게, 단풍나무 숲 사이에 자리잡은 전주 성원. 21년 전에 세워진 전주 성원의 외경은 독특하면서도 아늑한, 화려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자아냈다.

 

계단을 오르며 입구에 다다르자 꾸란(이슬람 경전)을 읽고 있던 이맘(예배장, 지도자) 압둘 와합 자이드 박사(67)가 희끗한 수염과 넉넉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살람우 알레이쿰(당신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하길!)"
"네, 안녕하세요."

 

올해로 67세인 와합 박사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이슬람교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는 유일신, 알라를 믿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죠. 우리는 모두 아담의 자손이며 같은 형제들입니다. 종교, 언어, 인종을 뛰어 넘어 우리는 다 평등해요. 하나님의 뜻은 평화이며 그래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예요."


84년에 선교활동 차원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와합 박사는 27년간 한국에서 지내며 이슬람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6년에 전주 성원이 건립된 이후에는 계속 전주 시민들과 호흡하고 있단다. 그래서일까. 국적을 물어보자 손사래를 치며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준다.

 

"나, 한국 사람이에요. 나 한국인입니다."

 

순두부와 김치를 좋아한다는 와합 박사는 앞으로 한국 땅에 뼈를 묻을 계획이라며 한국인이라고 칭해 주기를 바랐다.

 

이국적이며 독특한 외관과 달리 성원 내부는 고전적이며 검소했다. 카페트가 깔린 응접실로 들어가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 이슬람 성원은 규모가 큰 것만 총 8개가 있으며, 전북 지역에는 350여 명의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있다.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며, 미국인과 아랍권 사람들도 소수 포함돼 있다. 전주 성원이 문을 연 지 20년이 넘은 것을 감안하면 조금 적은 숫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 이유에 대해 이슬람교 신자인 서서희(26)씨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편견'을 꼬집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편견을 갖기 쉬어요. 언론이나 주위에서 접하는 내용은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들뿐이죠. 이슬람이 가르치는 것은 테러리즘이나 그런 것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평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다른 종교에 제일 관대한 것도 바로 이슬람이에요."

 

입교한 지 3개월 됐다는 서씨는 이슬람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성원에 들렀고, 후에 이슬람의 매력에 빠져 신자가 됐다고 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아프카니스탄 피랍사건 당시 분위기로 이어졌다.

 

와합 박사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자신은 종교를 선교하는 것이지 특정 나라에 대해 선교하는 것이 아니란 것. 당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오해로 거친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전주지역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뭐라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나쁘지 않거든요. 하하."

 

자리를 옮겨 성원 내부 곳곳을 둘러봤다. 응접실 맞은 편에는 이슬람 관련 서적들이 보관돼 있는 서재가 있었다. 이곳은 이슬람 교리를 전파하기 위한 와합 박사의 노력이 응축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슬람의 진리'와 '이슬람이 비무슬림을 대하는 법' 등과 같은 그의 저서 40권도 보관돼 있다. 이곳을 찾아 이슬람 문화에 대해 문의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한단다.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동안 평소 궁금했던 이슬람 문화에 대해 와합 박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평등을 강조하는 이슬람 교리에 비춰봤을 때, 이슬람 문화권의 '일부다처체'는 여성 인권을 무시하는 교리가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와합 박사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겁니다.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갖춰졌을 때에만 허락해요. 부인이 자식이 없거나 아플 경우, 남자의 외도를 방지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테두리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죠. 대신 이혼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얼굴을 가리는 히잡이나 차도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히잡을 쓰는 전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강요가 아닙니다. 전통에 따른 여성들 스스로의 선택이죠." 와합 박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슬람문화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1층을 둘러본 후 예배장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이슬람 신자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보통 하루에 5번 예배가 진행되며 장소는 구애받지 않는다. 다만 금요일에는 모두 사원에 모여 함께 예배를 올린단다. 전주 성원을 방문한 날은 때마침 금요일이라 예배를 올리고 있는 몇몇 무슬림들을 볼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예배장에 아무런 조각상이나 형상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불상이나 십자가 앞에서 예배를 올리는 다른 종교와 달리 무슬림들은 텅 빈 예배장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와합 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본 적이 없기에 특별한 상징물이나 형상을 만들어 놓지 않아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우리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그냥 예배를 드리면 된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자세로 마음 속의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아담한 전주 성원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와합 박사의 친절한 설명 덕에 한 시간이란 짧은 시간은 멀게만 느껴졌던 이슬람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됐다. 와합 박사와 인사를 나누고 전주 성원을 나왔다. 입구까지 나와서 웃으며 손을 흔드는 와합 박사를 보니 문득 몇 달 전에 읽은 어느 잡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흔히 표현하는 '중동(Middle East)'이란 이름도 사실은 서구사회의 용어이다. 서양에서 극동으로 가기 전에 위치한 '중간 동양'이란 의미라는 것.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이슬람 문화권의 종교나 정치·문화를 바라봄에 있어서도 서구적인 시각으로 일관했는지도 모른다. 이슬람의 본 모습을 우리의 입장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가 커졌으면 한다…." <월간 말 4월호 中>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선샤인뉴스(www.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주,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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