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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이 좋은 것은 청명(淸明), 말 그대로 맑고 밝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날에 떠나는 소풍이나 야유회는 한 여름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즐거운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파란하늘 속 흰 구름이 되어 걸린다.

주말을 맞아 몇몇 시민기자들과 찾은 곳은 경기도 파주, 한성희 시민기자의 안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청신한 10월의 공기를 흠뻑 들여 마신다. 그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예상치 않은 곳으로 일행을 끌고 간다.

운동회의 빠져선 안 되는 종목. 줄다리기.
 운동회의 빠져선 안 되는 종목. 줄다리기.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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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만 살아서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가 본 적 없지? 좋은 구경이 될 수도 있을 거야."

도착한 곳은 파주시 법원리에 위치한 법원초등학교. 차에서 내리자 운동장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매섭다. 그 차가움 속 이곳저곳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오른다. 운동회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들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이 고인다. 점심 숟가락 놓은 지 얼마나 됐다고….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운동회다. 졸업생들의 동문 운동회란다. 하지만 동네잔치인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워낙 작은 동네라 행사가 열렸다 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의 축제란다.

젓가락을 비벼댔다, 그 순간

사양해도 기어이 일행을 잡아 앉힌 동네 아주머니들. 어느새 먹음직스러운 수육 한 접시를 내민다. 그런데 예사 빛깔이 아니다. 촉촉한 살결, 구수한 냄새. "우와" 소리가 절로 나며 젓가락을 비벼댄다. 그 순간.

"집 된장 넣고 삶아서 개 냄새는 하나도 안 날 거예요."

너무나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온 음식. 그러나 개·고·기
 너무나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온 음식. 그러나 개·고·기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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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혹시나 했지만… 그랬다. 멍멍이였다. 입에 대본 시민기자들은 신이 났다. "어쩌면 이렇게 맛있게 삶을 수가 있느냐"며 부지런히 입과 손을 놀린다. 순간 '눈 딱 감고 먹어 버릴까'하는 강렬한 욕구가 일어난다.

대한민국에서 성인이 되어 간다는 것은 한편 개고기의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다. "여자들도 잘 먹는 걸 남자가 왜 못 먹느냐"는 차별적 공격부터 "몸에 안 좋은 걸 왜 권하겠느냐"는 권고형 협박까지. 때로는 "앞으로 술자리에 끼지 말라"는 유치원형 왕따도 등장한다.

때문에 조금씩 먹기도 했고 어느 날인가는 작정하고 국물에 밥까지 비벼 싹싹 비워내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부터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더니 일주일 이상을 고생했다. 그 뒤로는 절대 입에 대지 않는 개고기. 그런데 눈으로 다가오는 유혹이 못 견디도록 감미롭다.

한숨을 쉬며 찬 소주를 들이켜니 애꿎은 속만 쓰리다. 그때 등장한 구원투수. "여기 느릅나무 닭 좀 드셔보세요." 무슨 나무? 옻닭은 들어봤어도 느릅나무 닭이라니!

느릅나무닭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느릅나무를 넣어 끓인 닭. 은은한 향기가 배어난다.
 느릅나무를 넣어 끓인 닭. 은은한 향기가 배어난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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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옻닭을 하려고 했는데, 워낙 옻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서…. 사실 옻은 10명 중 한 명이나 타거든요. 고민 끝에 느릅나무를 넣고 닭을 삶았지요. 느릅나무가 위 보호에 아주 좋아요."

운동회 준비에 며칠을 고생했다는 동문회장 민태중(47)씨가 느릅나무는 효능뿐 아니라 향기도 뛰어나다며 직접 살을 발라준다. 느릅나무는 시골 마을 어귀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야생 수목, 일단 어감부터 안심이 된다.

맛은… 은은하고 향기롭다. 입안이 참으로 평화로워지고, 넘긴 후 기름진 이물감이 없다. 게다가 직접 키운 토종닭이란다. 역시 음식은 정성이다.

소화를 위해 일어서니 마침 줄다리기가 열리는 참이다. 손에 마른 침을 뱉으며 힘을 모으는 동네 어르신. 모자를 뒤로 돌려쓰고 신발 끈을 바짝 조여 맨다. 이어 길게 허공을 가르는 호루라기 소리.

잔칫날에 빠질 수 없는 홍어 삼합, 싱싱하게 무쳐 낸 무채는 아삭하다.
모처럼 시끌벅적한 시골초등학교. 늘 그렇듯 이승복 상이 지켜본다.
 잔칫날에 빠질 수 없는 홍어 삼합, 싱싱하게 무쳐 낸 무채는 아삭하다. 모처럼 시끌벅적한 시골초등학교. 늘 그렇듯 이승복 상이 지켜본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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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쌰으쌰! 아 뭐혀, 뒤로 발랑 누우란 말여."
"나 죽는다. 끌려가네. 어어어, 아구구구!"

이곳저곳에서 흥겨운 잔치가 벌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막걸리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게다가 고향의 음식이 기다린다. 어느 것 하나 직접 재배하지 않은 재료가 없다고 한다. 의례적이지 않은 진정한 마을축제다.

어른들은 어깨춤이 절로 솟고 아이들은 모처럼 입이 즐겁다. 공기는 맑고 아이들은 바람개비로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눈과 입이 즐거운 시골초등학교의 운동회는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태그:#운동회, #법원리, #법원초등학교, #개고기, #동네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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