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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 붙은 동 대표 사진과 프로필 ...
게시판에 붙은 동 대표 사진과 프로필... ⓒ 정현순


"동 대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당일(28일)은 105동 동 대표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있을 예정이오니 한분도 빠짐없이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장소는 관리실 2층입니다."

 

관리실에서 '동 대표 선거를 빨리 하라'는 내용의 방송이 또 나오고 있었다. 그 전날인 27일 저녁 8시쯤에도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 동 대표로 나온 105동에 사는 아무개입니다."

"동 대표 선거는 끝나지 않았나요?"

"네, 그것이 9명을 뽑는 건데 우리 동에서는 한 명이 덜 뽑혔어요. 지난번에 동점으로 나와서 이번 돌아오는 일요일(28일)에 다시 하게 되었어요. 투표율이 너무 저조하니깐 꼭 투표해주세요."

 

참내, 동 대표가 무엇이기에 재선거까지. 9월초, 아파트 전동에서 동 대표를 뽑기 전 그들의 선거운동은 참으로 대단했다. 무슨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는 것 이상으로 경쟁률이 치열했다. 경쟁률이 치열한 만큼 선거운동 또한 화려했다. 아파트 각동 입구에는 후보자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붙어 있었다.

 

또 개인적으로 명함과 본인의 프로필을 만들어 돌리기도 하고 길에서 만나면 "이번에 동 대표 선거 하실 거지요? 꼭 하세요. 잘 부탁합니다"하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잠을 자기 위해 준비하는 밤 10시경에도 집으로 찾아와 '한 표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재건축된 아파트다. 그렇다보니 조합원과 일반 분양자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높은 벽이 있는 듯하다. 동 대표를 뽑는 당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선거의 투표율이 저조하다고 관리실에서 '투표하라'고 수차례 방송을 하는가 하면, 후보자로 나온 사람이 직접 방문을 해서 "투표마감 시간이 6시인데 앞으로 1시간 정도 남았으니 투표를 하지 않았으면 투표를 꼭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 때 역시 본인의 명함과 프로필을 알리기도 했었다. 그 때까지 우리집에서는 아무도 투표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결국 남편이 대표로 투표를 했다. 그것 말고 또 무슨 불상사가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차까지 와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었다. 그렇게까지 했건만 그날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두 사람의 투표수가 동점으로 나와 투표를 다시 해야 한단다.

 

방송을 들은 남편이 "지난번에 동 대표 선거 했잖아?"하고 묻는다. "그게 동점이라 다시 한 대요"라고 답했더니, "그래"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나에게 후보자가 누구 누구 나왔냐고 묻는다. 대충 이야기를 해주었다. 잠시 후 남편은 "시간이 다 되잖아"하면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비 오는데 어디 가려고?"

"동 대표 선거를 다시 한다면서. 내가 생각한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꼭 뽑혔으면 하니깐 투표를 해야지."

 

도대체 '동 대표'가 뭐기에 저리들도 난리인지. 21년째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번 같은 동 대표 선거는 처음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동대표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저렇게까지 과열된 선거 분위기가 좋은 것만도 아닌 듯하다. 동대표로 선출이 되면 수고비가 나온다고 한다. 그들이 그 수고비에 연연해서 동대표가 되려고 혈안이 된 것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동대표로 나온 것이라고 믿고 싶은 건 왜일까?

 

투표를 마치고 남편이 돌아왔다. 그런 남편에게 "분위기 지난번처럼 살벌하지 않았어?"라고 물었다. 남편은 "그렇지는 않은데 계단입구에서부터 인사를 어찌나 깍듯이 하던지…"라고 말했다.

 

그들의 그런 겸손한 마음이 변치 않고 주민의 불편한 것을 잘 알고, 주민의 입장에서, 주민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 줄 수 있는 그런 동대표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동대표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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